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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모두 잘 사용하고 계시나요? 코로나19 비상사태로 모두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그 돈은 누군가에게 절실했던 무엇을 선물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유지하는 숨통이 돼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밖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현금 지원의 한 형태입니다. 동시에 현금 지원은 가장 가난한 국가들을 돕는 혁신적인 인도적 지원 방법의 하나기도 합니다. 한 국제인도주의단체가 2006년에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극심한 기아를 겪는 취약계층을 살리기 위해 최초로 현금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전 국민이 인도적 지원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지금, 현금지원이 극빈 지역의 취약계층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시장에 식량이 있다? 그래도 식량보다 현금 지원 효과적인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 죽기 직전이지만 현지에 충분한 식량이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식량을 지원하면 현지 지역경제를 교란하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까지 식량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현지 시장을 통해 식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금을 지원하는 게 더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일단 현금 지원 시스템이 구축되면, 수천 명 사람들에게 시급한 자금을 바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수천 톤 식량을 실어 나르지 않으니 비용도 절약됩니다. 무엇보다도 현금 지원은 선택권을 높입니다. 현금이 있다면 각 가정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물품을 정확하게 살 수 있습니다.
 
현금지원 시스템이 구축된 덕분에 말라위는 2019년 사이클론 이다이 피해로부터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다.
 현금지원 시스템이 구축된 덕분에 말라위는 2019년 사이클론 이다이 피해로부터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다.
ⓒ 컨선월드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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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아래 컨선)에서는 2006년에 하나의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에 있는 말라위는 가뭄과 홍수로 세 차례나 작황이 부진해지자 옥수수 등 주요 작물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다음 추수 때까지 보릿고개 속에서 굶주림을 겪어야 할 인구가 당시 약 42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컨선은 식량 가격이 안정화될 때까지 취약계층 사람들이 5개월을 버틸 수 있도록 현금 지원을 실험적으로 설계했습니다.

세대주가 아니라 여성 가장을 지원한다... 왜?

한국은 정부 재정이 견실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최빈국은 그럴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선별해내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컨선은 재산 규모와 취약성을 기준으로 마을 커뮤니티 그룹과 협의해 수혜자를 엄격하게 선별했습니다. 그 결과로 말라위 중부에 위치한 도와(Dowa) 현에 거주하는 1만 1000가구를 선정해, 총 23만 파운드(말라위 통화 6688만3330 콰차, 한화 약 4억2370만원)를 지원했습니다.

특히 현금을 스마트카드 형태로, 남성이 아니라 여성 가장에게 지급했습니다. 집에서 가족의 음식과 건강을 챙기는 것은 엄마이자 아내인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접근이 가정 내 갈등을 야기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계획적인 지출과 저축 활동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명확했습니다.

지원하는 것이 현금이고 수혜자가 여성이라, 도난·사기 등 사건을 예방할 수 있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이에 매월 지급일에 수혜자들에 안전한 보관법, 현금 사용법, HIV/에이즈 예방정보, 가족계획, 겨울철 수확 등 정보를 함께 제공했습니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안전 사고나 사기 사건 등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식량 구매 비율이 60% 이상, 물가 낮추는 효과도

컨선월드와이드는 2006~2007년 말라위 현금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 영국의 서섹스대학교 개발학연구소(IDS)에 평가를 의뢰했습니다. 조사 결과, 프로젝트 기간인 5개월간 식량 구매 비율은 평균 60% 이상이었습니다. 위기 초기인 2월에는 식량 구매 비율이 80% 이상이었지만 추수가 임박한 4월에는 옥수수 가격이 내려가면서 31%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초기에 식량 물가를 높이며 시장을 교란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반대로, 현금 지원은 물가를 낮추기도 했습니다.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현금은 식량 구매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여성 가장에게 지급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현금은 식량 구매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여성 가장에게 지급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 컨선월드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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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흥미로운 점은 여성 가장에게 현금을 지원한 것이 다양한 식량 간극을 좁혔다는 점입니다. 조사 결과 현금 지원은 성별에 따른 남성과 여성 가장의 식량 소비 간격을 좁혀주었고, 어른과 아이의 식량 소비 간격도 함께 줄여주었다고 밝혔습니다. 서섹스대학은 연구를 통해 여성 가장 대상으로 지급하는 방법을 현금 지원의 일반기준으로 선택할 것 또한 권장했습니다.

이후 컨선월드와이드는 빈곤국에 대한 현금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했습니다. 2019년 기준, 전체 23개 사업국가 중 83%에서 현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수혜자는 약 108만8923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세계 인도적 지원 현장에서도 현금지원의 채택은 크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현금지원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성한 '세계 현금 현황보고서'(The State of the World's Cash Report)에 따르면, 전 세계 현금지원 규모는 2016년 기준으로 28억 달러(한화 3조 3740억원)에 달합니다. 이는 전체 인도적 지원 예산의 10.3%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그 중 72%는 유엔의 세계식량기구(WFP)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집행했습니다. 특히 세계식량기구 집행 추이는 2009년 1000만 달러(115억6000만원)에서 2016년에는 8억 8000만 달러(1조604억원)로 거의 9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는 현금지원이 현물지원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현지의 더 다양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윤석씨는 국제인도주의단체(NGO) 컨선월드와이드 커뮤니케이션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긴급재난지원금, #현금지원, #말라위, #컨선월드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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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NGO에서 커뮤니케이션 일을 해왔습니다. 만화를 좋아해서 잠시 에이코믹스에서 글을 썼습니다. 자유, 상상력, 이별 따위의 주제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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