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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세종보 상류의 모래톱에서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 한 개의 흰목물떼새 알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세종보 상류의 모래톱에서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 한 개의 흰목물떼새 알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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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나올 것 같은데요."

지난 5일 세종보 상류의 모래톱에서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 한 개의 흰목물떼새 알을 본 순간 숨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함께 있던 금강유역환경회의 유진수 사무처장이 한 말입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려고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이 '줄'이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이 '탁'입니다. 내가 본 것은 '줄'입니다. 어미새는 나의 인기척을 느낀 뒤 강가쪽으로 가서 불안하게 서성거렸고, 몇 시간 안에 세상에 나올 녀석은 안쪽에서 연약한 부리로 연신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우선 자리를 뜹시다. 어미새가 와서 알을 쪼아주어야 하니까."

우린 곧바로 자리를 이동해 어미새가 와서 병아리를 도와주기를 먼 발치에서 숨죽이며 기다렸습니다.

지구상에 1천 마리에서 2만5천마리만 살아남은 흰목물떼새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빠로 보이는 흰목물떼새는 주변을 경계하며 연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빠로 보이는 흰목물떼새는 주변을 경계하며 연신 소리를 질렀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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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쓰는 이 글은 서적에 나온 내용이 아닌 1년에 340일 정도 강변을 나다니면서 현장에서 보고 확인한 것이기에 백과사전에 적힌 상식적인 상황과 약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밝혀드립니다. 제가 최근 금강에서 목격한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 이야기입니다.

우선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꼬마물떼새는 강변에 사는 여름철새들입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살다가 봄부터 우리나라에 온다고 알려졌지만, 금강에서 겨울을 나는 녀석들도 확인했습니다. 반면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는 지구상에 1천 마리에서 2만 5천 마리 정도의 개체 수가 있을 정도로 귀한 새입니다.

물떼새는 모래와 자갈이 깔린 강변에서 곤충을 잡아먹고 살아갑니다. 풀들이 없어 뻥 뚫리고 노출된 자갈밭에 동그랗게 얕은 둥지를 만듭니다. 좁쌀만 한 모래를 150~200여 개 물어와 바닥에 깔고 손톱만 한 마른 풀잎도 깔아놓은 후에 4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주변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2~3개의 알을 낳은 것도 보았습니다.

연약한 종으로 야생동물로부터 알을 보호하고 천적의 움직임을 쉽게 확인하기 위해 노출된 공간에 산란장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꽃뱀으로 불리는 유혈목과 물뱀으로 불리는 무자치가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 알을 덮쳐서 모두 먹어 치우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또 까치가 공격해 모두 먹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자연의 섭리에 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지만 지켜만 봤습니다. 이렇듯 물떼새들은 천적에 취약한 약한 종입니다.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을 때는 4대강 사업을 할 때였습니다.

불도저들이 무자비하게 강변을 다 밀어버리고 강 중앙에 하중도를 준설해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4대강 준공 이후에는 강변보다는 인근 공사장에 쌓아 놓은 자갈 더미, 비포장도로, 비포장 주차장에서 알을 낳고 살아가는 모습이 간혹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4대강 사업 이후 참혹했던 세종보 주변 
 
2017년 6월부터 세종보 수문이 개방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개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보 수문만 살짝 틀어진 상태였다.
 2017년 6월부터 세종보 수문이 개방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개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보 수문만 살짝 틀어진 상태였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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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종보 주변은 4대강 사업 이후 더욱더 참혹한 장소였습니다. 고운 모래톱과 여울이 잘 발달한 이곳은 공사로 인해 거대한 물그릇으로 변했습니다. 보를 준공하고 수문을 닫아 놓자 맑고 깨끗하던 강물에 녹조가 들끓었습니다. 시궁창 같은 강바닥에서는 연신 펄이 썩으면서 내는 이산화탄소가 공기 방울이 되어 솟구쳤습니다. 실지렁이, 붉은 깔따구만 살아가는 죽음의 강이었습니다.

세종보의 수문을 상시 개방한 뒤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아직도 펄이 완전히 씻겨 내려간 것은 아니지만 지난 4월 세종보 아래쪽 모래톱 자갈밭에 꼬마물떼새가 알을 4개 낳았습니다. 이곳은 모래톱이 10평도 안 될 정도로 좁은 공간이자 평소에도 낚시꾼들이 이따금 들락거려 늘 불안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을 때마다 혹시나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멀리서 지켜보며 돌아가던 곳입니다.

지난 5월 16일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뻤습니다. 그러나 18일 다시 찾았을 때 새끼 한 마리가 누군가의 발에 밟혀 죽어 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야생동물의 습격이라면 사체를 그냥 두지 않았겠지요. 그 때 작은 돌무덤을 만들어주고 그 후부터는 그곳을 찾지 않습니다.

지난 5월 10일쯤에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세종보 상류 강변 자갈밭에서 흰목물떼새가 알을 4개 낳아 놓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턱밑과 목 부위가 희고, 목과 가슴 사이 검은색 띠가 목덜미까지 연결된 흰목물떼새가 알을 낳고 부화할 때까지는 28~29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새와 아빠새는 비가 오나 해가 지면 지극 정성으로 품어서 알의 온도를 유지해줍니다. 물론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쬘 때는 가슴 깃털에 물을 묻혀 알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것도 막아줘야 합니다.

이곳으로 진입하는 곳에는 한국수자원공사 세종보 사업소에서 '조류산란기 출입금지' 현수막을 걸어놓아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조용히 드나들면서 알의 상태만 확인하고 누구에게도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일 SNS를 통해 장소를 빼고 흰목물떼새 알이 있다고 알렸습니다.

"어디에요. 나 아직도 흰목물떼새 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좀 보여줘요."

지난 3일 금강유역환경회의 유진수 사무처장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상황에서도 강변을 거의 하루도 비우지 않고 다녔는데 최근 공주 곰나루 모래톱에 자라는 풀을 뽑느라 무리했나 봅니다. 감기와 몸살로 드러누워 있어서 난감하기는 했지만 다음날 약속을 잡았습니다.

흰목물떼새, 마지막 남은 한 알 
   
유진수 사무처장과 함께 오후 3시경 세종보 상류로 향했습니다. 알이 있는 장소로 가는 도중에 강변을 걷고 있는 낯선 사람이 보였습니다. 혹시나 지난 번처럼 알을 밟히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요즘은 물떼새 산란기로 출입을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조용히 말씀드리고 돌아갈 것을 종용했습니다.

흰목물떼새알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알을 번갈아 품고 있던 암수가 평소보다도 더 유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3개의 알은 부화해서 새끼들이 엄마·아빠를 따라 이동한 상태였으며 마지막 막내만 알에서 깨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피해를 줄까 봐 서둘러 빠져나왔습니다. 주변 강 중앙 모래톱에 꼬마물떼새가 낳아놓은 곳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올려 여울을 건넜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투명하게 빛나고 맑았습니다. 여울 아래쪽에는 쌀알만 한 금빛 모래가 쌓였습니다. 이따금 물고기가 튀어오르며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확인한 알은 두 개입니다. 천적에게 잃었는지 모르지만 지난 번처럼 두 개의 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돌아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흰목물떼새알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동그란 쪽의 알 표면이 살짝 깨지고 속에서 작은 솜털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위대한 부화의 순간이었습니다.

"알에서 깨어 나올 것 같은데요."
"그럼 보고 가야죠."


초소형 고정카메라는 설치하고 50m 뒤쪽 자갈밭으로 후퇴했습니다. 망을 보는 한 마리는 알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연신 소리를 질렀습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느리게, 빠르게 걸으면서 조용히 다가가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움직임에도 알을 품던 아이는 쏜살같이 뛰어나갔습니다. 매우 민감한 상태라 꼼짝달싹 못 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자갈밭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습니다. 등줄기부터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오후 5시가 넘으면서 알은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알 속에서 새끼의 움직임도 빨라졌습니다. "가볼까요", "아니 더 기다려야 해요"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이라 알의 확인도 어려운 상태에서 그렇다고 무작정 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1시간 이내에 둥지를 떠나는 경우도 종종 봤기 때문입니다.

두근거리며 한 발씩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깨어났습니다. 삵의 배설물 또는 작은 짚이 뭉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카메라를 드리우자 솜털 같은 가슴이 느리게 뛰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잠시 뒤로 물러났던 어미가 나가라고 자꾸만 소리를 지릅니다.

혹시나 어린 새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서둘러 돌아 나왔습니다. 3시간 가까이 생명의 탄생을 지켜봤다는 게 감격스러웠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1만 마리 안팎의 희귀 텃새라 더 의미가 컸습니다.

수백만 마리의 흰목물떼새를 기다리며 
 
지난 2018년 1월 세종보 수문이 전면 개방되면서 강바닥에 쌓인 진흙 펄층이 씻기고 7월에 상류에 생겨난 모래톱이다. 이곳 모래톱에 물떼새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 2018년 1월 세종보 수문이 전면 개방되면서 강바닥에 쌓인 진흙 펄층이 씻기고 7월에 상류에 생겨난 모래톱이다. 이곳 모래톱에 물떼새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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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하나를 열고 닫는 게 사람으로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의 생명체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문을 연 뒤 세종보와 공주보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인 물고기 흰수마자가 돌아왔습니다. 녹조 물만 가득했던 공간에 모래톱이 드러나자 수많은 철새들이 이곳에 와서 생활터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게 강입니다. 생명체들이 떠나간 강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강변에 자전거 길과 조깅 코스를 만든다고 해도 수문이 닫혀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면 인간도 강을 등지게 됩니다. 이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줄탁동시. 금강에 있는 3개 보의 수문은 모두 열렸지만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의 수문은 대부분 굳게 닫혀 있습니다. 하루 빨리 수문을 모두 열어서 강을 살려야 인간을 포함한 자연 생태계로 볼 때 '탁'입니다. 그리하면 금강의 흰목물떼새 병아리처럼 뭇생명체들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겠지요.

흰목물떼새의 위대한 탄생을 몇 시간동안 숨죽이며 지켜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수십, 수백마리의 흰목물떼새가 우리의 4대강 모래톱에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태그:#흰목물떼새, #세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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