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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처음 인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기는 지난해 2019년 8월, 인도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의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자말]
콜카타로 향하는 비행기, 한 인도인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콜카타로 향하는 비행기, 한 인도인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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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비행기에 탄 승객 중 한 명이 생일인 모양이었다. 이륙하기 직전,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하필 그때. 생일을 맞은 이는 일어나 감사함을 표했고, 사람들은 박수와 휘파람으로 그를 축하했다.

이미 한 차례 인도여행을 다녀왔던 나에겐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풍경, 이를 보고도 제지하지 않는 승무원들은 이미 해탈이라도 한 걸까. 그래 여긴 인도다. 비행기에 오르기에 앞서 몰려든 인파를 제쳐 새치기를 감행해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겠으나 '사소한' 정도라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해도 나 또한 그럴 수 있으니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그런 인도.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마치는 데까지 두 시간여가 걸렸다. 여기서 한 시간은 입국신청서를 쓰는 데 들었다. 영어가 조금 낯설어져 버린, 전역한 지 이제 보름을 갓 넘긴 이의 두뇌 싸움으로 시끄러웠다.

나머지 한 시간은 입국 심사관과의 싸움이었다. 중년의 점잖고 경력 2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알고 봤더니 갓 인수인계를 받는 중이었던 것. 어쩐지 이전에 해왔던 일과 앞으로의 꿈을 묻는 심사관의 질문이 이상하긴 했지만, 심사관의 권력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곧이곧대로 답하긴 했다.

짧은 머리까지 보여주며 이전에는 군인이었고, 앞으로는 작가가 될 거라고. 십 분쯤 지나자 사수로 보이는 심사관이 나타났고, 사수의 지시에 따라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 와중에 그는 여권에 기존에 받아야 할 도장이 아닌 다른 도장을 찍었고, 사수의 한 소리와 함께 조용히 '취소됨'이라고 적었다.
 
공항 앞에 대기 중인 택시 행렬
 공항 앞에 대기 중인 택시 행렬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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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여행자는 택시를 멀리해야 한다

공항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밝아있었다. 배낭을 끌어안고 앉은 자세로 어정쩡하게 잠을 청했음에도 개운하게 일어난 걸 보니 여행자로서의 감이 그리 녹슬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스무 살에 떠났던 세계 일주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 거기에 2년 가까운 공백으로 처음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모든 순간이 새롭고 적응 안 될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다행이었다.

인도의 모든 공항은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탓에 아침이 되고서야 바깥공기를 들이켤 수 있었다. 습기 가득한 꿉꿉함과 멀리서 연신 울려대는 차 경적 소리,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호객으로 진땀 빼게 만드는 택시기사. 그렇다. 어느 여행지가 되었든 택시기사와의 전쟁은 필연적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격을 깎는 여행자와 한 푼이라도 더 얹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기사와의 대치. 특히 공항에 갓 도착해 현지 물가에 대한 감각이 둔한 외국인이라면, 기존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제시해 바가지를 씌우려 하겠지.
  
오전 8시,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지하철역 티켓 창구 오전 8시,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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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는 길이 막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숙소가 자리한 시내 중심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출근 시간이 겹친 탓에 사람들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8월의 무더위는 아침부터 극성이고, 에어컨 따위는 있을 리 만무하고.

돌이켜보면 이곳의 택시는 한국에서의 것보다 훨씬 안 되는, 몇 천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적다면 적다고 볼 수 있는 금액을 아끼기 위해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수고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다르게 보면 오직 여행자만이 보게 될 시선이 아닌, 현지인의 삶과 생활방식을 멀리서나마라도 보고 싶다면 이만한 방법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콜카타 시내 한복판
 콜카타 시내 한복판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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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면 적당한 도시, 콜카타
 

콜카타는 마땅히 볼거리가 없는 도시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은행에 가 현금을 인출하고, 유심카드를 개통한 다음 내일 떠나는 기차표만 사면 되는, 여행지로서 큰 매력은 없는 대도시일 뿐이었다.

열아홉 살 첫 인도여행으로 콜카타에 왔을 때야 꿈에만 그리던 인도에 왔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새로웠겠지만, 지금이라고 그 마음가짐이 오롯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형식적인 일들은 이미 오전 안에 끝내버려 무료함만이 남았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여행자들이 그나마 많이 간다는 뉴 마켓으로 향했다. 이전에 와봤던 곳이어서 그런지 무언가 크게 할 건 없겠다 싶어 주변만 배회했다.

덕분인지 삐끼로 보이는 인도인 남자가 한 명 들러붙었고, 예상과도 같은 시나리오대로 어느 나라에서 왔냐, 무엇을 하고 싶냐, 무엇을 사고 싶냐 하는 질문으로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느 여행지나 그렇듯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접근해오는 이는 경계부터 하는 게 좋다. 괜히 이런 수작으로 돈 몇 푼 뜯어낼 심산이겠지. 혼자서 다니고 싶다, 그만 따라오라는 말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

이번엔 친구 왜 그러냐는 말과 함께 다시 따라붙을 테니까. '친구'라는 단어에서 오는 문화 차이에 따라 본 지 몇 분 채 되지도 않은, 서로 나이도 모르는 이도 친구가 될 수 있겠다만, 그렇다고 금전적인 목적으로 맺어질 관계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앞으로 그가 얼마나 많은 외국인 여행자에게 접근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자리를 떠난 후엔 곧바로 다른 여행자를 물색하러 갔겠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행자로부터 냉대를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계획에 곧이곧대로 빠질 이들도 있을 것이다.

태그:#인도여행, #콜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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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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