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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교사에게 인성 지도를 맡기지 마세요'에서 이어집니다.)

여섯째, 시험중심 및 촘촘한 평가방식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학생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어려움에는 과부담이 되는 수행평가와 정기고사가 병행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행평가는 시기적으로 한꺼번에 몰리는 데다 객관식 교내시험까지 준비해야 하므로 학생들의 부담이 매우 크다.  

따라서 교사재량으로 수행평가만으로 중간, 기말고사를 대치할 수 있어야 한다. 시험을 본다면 간단하게 논술식을 추가하는 등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 또 수행평가의 양도 대폭 줄이기 위해 학생들이 과목별 수행과제를 한꺼번에 열람할 수 있게 하게 하면서 사전조율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사들에게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하다.

이어서 과도기적으로 대통령의 공약대로 수능을 전면 절대평가로 전환한 후에 여건을 갖추어 논술로 대치함으로써 고부담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는 방안도 좋다. 아울러 시험성적의 촘촘한 9등급제도 학생들에게는 잠재적으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정착해 사는 한국인 윤만식 전직교사는 최근에 미국 예일대 심리학 교수요 인지과학자이면서 행복실험실 팟캐스트이기도 한 로리 산토스(Laurie Santos) 여교수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2020년 5월 21일 자 '암췌어 전문가' 대담 프로그램)
 
"로리 산토스는 학생들의 외적동기가 강할수록 내적 동기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A~F등급제 대신 합격 불합격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군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한편 프랑스 고교의 성적표에는 평균점, 과목 최고점 및 최하점, 학생 개인의 점수가 소수점을 사용하여 매겨지고 등급은 없다.

예컨대 철학이면 평균점 3.6, 과목 최고점 4.2, 과목 최하점 2.9, 학생개인 점수 4.0 이런 식이다. 그리고 과목교사의 간단한 관찰기록이 있다. 일례로 "발표력이 좋아요", "제발 말 좀 하길 바랍니다" 등이다. 이제 한국도 학생들이 시험스트레스를 받아 심리적으로 왜곡되는 모습을 인지해야 할 것 같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적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학생들의 리좀적 사고 즉 내재적 동기에 의한 상상력의 결정적인 방해물이 아닐 수 없다. 시험에 매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교실혁명은 불가능하다.
  
한국도 산업현장의 안전한 환경에서 경력 기술자가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차근차근 전수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다.
 한국도 산업현장의 안전한 환경에서 경력 기술자가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차근차근 전수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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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직업교육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
직업계 고교와 전문대학을 육성하는 것은 사회부총리로서의 교육부장관이 그 직책에 어울리는 주요 과제 중의 하나다. 왜냐하면 직업교육은 임금차별, 학력차별 등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등 역할 범위가 크기 때문이다. 직업교육을 살리는 것은 직업차별을 시정함과 동시에 입시위주의 고질적 폐단을 시정하는 길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은 많이 못 미치고 있다. 직업계 학생들이 여전히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 및 일본 등에서 첨단 기술을 지닌 50~60대 기술자가 10~20대의 청년들에게 차근차근 기술을 전수하는 모습은 산업재해 속에서 희생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직업교육을 활성화하는데 단위학교 교사들에게 해당 기업체 기술자와 협업을 하면서 교육과정 구성, 강사진 교류, 안전한 실습환경을 만드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질 때 역시 교육력이 높아짐과 동시에 이를 아는 학생들은 교사들을 저절로 따를 것이다.

여덟째, 예컨대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예체능 활동을 현저히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국적으로 주 3회 학생 누구나 1가지씩 땀이 나게 1시간 운동하되 교사들이 함께 어우러져 함께 한다는 협약을 맺으면 어떨까?  

학생과 교사가 서로 몸을 부대끼며 땀을 씻어준다면 사제관계는 월등히 좋아질 것이다. 물론 교권위기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물론 학생 1인 1개 악기를 연주하는 것, 그림 그리기 등도 같은 결과를 낼 것이다.

당국은 정기적으로 감사를 하거나 제보를 받아 예체능 관련 운동을 하자는 합의를 어긴 학교를 찾아낸 후 페널티는 없어도 교육신문과 전산망에 띄워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알게 하는 것도 대안일 것이다. 지자체와 협조하여 학교운동장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체육 및 문화시설을 상시 개방하여 언제라도 활용할 수도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아홉째, 교사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20여 년 전 프랑스 고교생 10만여 명이 전국적으로 학급당 학생 수 25명이 너무 많아 20명 안쪽으로 줄여달라고 학교 밖으로 나가 시위를 했다. 당국이 시큰둥했다. 1년 후 다시 집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교사들 3만 명이 가세했다. 결국 관철했다. 여기서 교권추락을 염려할 필요는 없어진다.  

이렇게 교사의 표현의 자유보장 즉 헌법적 권리로서의 표현,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을 때 교사들이 힘을 실어주면서 학생들의 교육적인 효과는 배가된다. 또 집회를 넘어 교사들이 교육환경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장관, 교육감, 교장과 협상할 노동권 즉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면 학생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교사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과 교사들의 참정권이 제외될 수 없다. 학생들에게 교육선진국들과 같이 정당후원 혹은 가입해서 방과후에 활동하게 한다면 어떤가?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 말에 가장 충실하게 다가갈 것이다. 왜냐하면 삶 속에서 정치를 생생하게 체험할 때 교육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사회와 정치현실을 교실로 만들자는 것이다.
    
종로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가 4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집중유세를 하자 일부 지지자들이 18세 투표자들을 격려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종로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가 4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집중유세를 하자 일부 지지자들이 18세 투표자들을 격려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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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 선거권 허용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정치민주시민으로서 체험할 기회를 줘야 한다. 동시에 교사들에게 참정권 즉 선거 후보자, 정당 가입과 후원 등이 제약 없이 허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상 큰돈 들이지 않고 교육력을 배가시키는 방법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예컨대 사립학교 운영진이 학생들에게 써야 할 예산을 횡령했을 경우 이사진에 대해 유죄판결이 나고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때 공익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학교재단이 간여할 수 없게 하고, 공익이사가 3분의 2를 구성한다면 그 이사회는 공신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초중고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에 참여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창구가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이 주 1회 학급회의를 자습시간으로 보내게 만드는 주원인이다. 이는 민주적인 학교의 모습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학교당국에서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희망을 외면한 채 교사들로 하여금 교과서 내용전달과 시험점수 내는 데만 전념하게 한다면 학생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 눈감는 학교 및 교사들에 대해 은연중 그러나 분명하게 불신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교육력 향상과 교권을 저해할 것이 틀림없다.  

유치원 3법에 이은 사립학교법, 교장임용제를 비롯한 교육공무원법, 교원노조법, 대학공영제 관련 법규 등 주요 교육적 과제들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 입법활동은 필수적이며, 이 때 교사출신들이 대거 지방의원 및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사출신을 기대하기보다는 정당가입, 정당후원 조차도 불가능한 상태 아닌가? 프랑스는 국회의원 3~4명 중의 한 명이 교사일 정도로 교사에게 정치활동의 기회가 열려있다. 이는 프랑스 국민들이 교사들에게 보내는 신뢰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는 경이롭게 다가온다.

프랑스는 1981년 총선에서 전체의석 491석 중 교원출신이 167석, 1997년 총선에서 전체의석 577석 중 교원출신이 150명이었다. 한국은 2020년 총선에서 단 1명 뿐이다. (한국외대 전학선 교수의 논문, '프랑스 교육제도와 교원이 정치활동의 자유')

결국 한국의 초중등 교육의 위기는 교육모순을 해결하는 치밀함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요컨대 정부의 역량 부족이 교육력과 교권 위기의 최종 원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천광역시 교육청 학생생활 자문관입니다.


태그:#교육력, #학생인권,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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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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