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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의 가사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운동은 무슨, 어차피 사는 게 운동 아냐?" - 데프콘 '힘내세요. 뚱!' 중

세상에, 누가 이렇게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챘나 싶어서 픽 웃음이 났다. 운동하곤 담을 쌓고 살던 때의 일이다. 이십 대엔 정말 저 노래 가사대로 사는 게 운동이지 별건가 싶었다. 운동을 안 할 핑계를 찾자고 들면 사실 한도 끝도 없었다.

일단 출퇴근하는 길에 집에서부터 지하철역까지 걷는 시간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가, 일하는 동안에 직장 안에서 부지런히 왔다 갔다 앉았다가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횟수도 세어보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퇴근 후 집에만 돌아오면 배 속이 요동치듯 꼬르륵거리는 것만 봐도 틀림없다. 육체가 고되므로 허기가 지는 것이고, 육체가 고되다는 것은 결국 오늘 내 하루의 일과가 운동과 다름없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니 '애써 시간을 내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가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서른 중반을 넘기고부터다. 일단 허리 디스크 초기 진단을 받았다. 거북목과 손목 터널 증후군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은 탓이었다. 처음 디스크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젊은 사람들에겐 약물이나 수술보다는 운동을 먼저 권한다고 얘기했다. "운동하세요." 그 한마디가 내게 내려진 처방이었다.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다
 
석 달을 꾹 참고 꼬박꼬박 집 앞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헬스라는 게 어쩐지 내게는 영 재미가 없었다.
 석 달을 꾹 참고 꼬박꼬박 집 앞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헬스라는 게 어쩐지 내게는 영 재미가 없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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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마음에 앞뒤 잴 것도 없이 덜컥 헬스장부터 등록했다. 그 뒤로 석 달을 꾹 참고 꼬박꼬박 집 앞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헬스라는 게 어쩐지 내게는 영 재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기계치인 나는 운동 기구를 잘 다룰 줄 몰랐고,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트레이너를 붙들고 때마다 사용법을 묻기가 쑥스러웠다. 그렇다고 개인 PT를 받으려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석 달을 신나게 러닝머신만 타다가 슬그머니 그만둬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요가를 시작했다.

40도 이상 고온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일명 '핫 요가'였다. 선생님의 구령의 맞추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게다가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의 몸매가 어찌나 늘씬하고 보기 좋던지 나도 조금만 더 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 개월을 열심히 다녔다. 디스크에 효과를 본 것도 요가였다. 만성적인 불면증에도 탁월했다. 요가를 한 날에는 세상 모르게 달게 잠을 잤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핫'이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요가를 하는 내내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그 명상음악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좀 에어컨 빵빵하니 시원한 데서 흥에 넘치는 최신 댄스 음악을 들으며 할 수 있는 운동이 뭐 없나, 고민하던 찰나에 친구 하나가 '뮤직 복싱'을 권했다.

뮤직 복싱은 일단 재미있었다. 관장님의 구령에 따라 잽 잽 원 투 어퍼컷 하면서 음악에 맞추어 콩콩 뛰며 열심히 팔을 뻗다 보니 시간도 금방 갔다. 게다가 그동안 다이어트는 생각도 안 했었는데 두 달 만에 사 킬로그램이 빠졌다. 그래 이거구나, 감탄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체육관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시간이 문제였다.

이미 인원이 꽉 차서 더는 수강생을 받을 수 없다는 시간대를 제하니,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은 아침 10시 것밖에 없었다. 그즈음 다시 도진 불면증 때문에 새벽까지 잠을 설치기 일쑤였던 나는 대략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가량 선잠을 자고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다.

덕분에 오후에 출근을 하면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았다. 거울을 보면 눈 밑이 퀭했다. 다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사람이 더 초췌해졌다. 넉 달이 지나자, 아무리 신나는 음악이 흘러도 더는 박자에 맞춰 팔을 뻗을 체력이 없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잽싸게 줄행랑을 쳤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이 '걷기'였다. 나는 노원구에 오래 살았는데, 집 근방에 있던 중랑천 산책로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여기저기 화사하게 핀 꽃 구경, 잔잔히 흐르는 물 구경, 시끌벅적한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나는 한동안 하루 한 시간씩 아주 열심히 걸었다.

지난해 중랑구로 이사하고 난 뒤에도 걷기 운동은 계속됐다. 그때는 동네 지리가 익숙해지기 전이라 나는 일부러 온 동네를 헤집듯 걸어 다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에 보기 좋게 근육이 잡히기 시작했다. 덤으로 허리 통증도 줄었다. 그러다가 최근 코로나19가 터졌다.

주 4일 1시간, 나의 홈 트레이닝 노하우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입니다. 외출을 자제해 주세요." 매스컴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밖에 나가기가 불안했다. 어차피 마스크를 끼고 오래 걷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십 분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면서 입 주변에 자꾸만 뾰루지가 올라왔다. 이참에 운동을 좀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전,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종 스낵류를 비롯한 군것질거리 판매율이 부쩍 올랐다는 기사를 읽었다. 전문가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이 간식을 찾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 기사를, 나 역시 집 앞 편의점에서 산 감자 칩을 아삭아삭 씹으면서 읽고 있었다. 뜨끔했다. 걷는 것을 그만둔 데다가 한동안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하루에 과자 한두 봉지쯤은 우습게 해치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장 체중계에 올라갔다. 혼잣말이 불쑥 나왔다. "이거 참 큰일이네." 대책이 필요했다.
 
스텝퍼 앞에 빨래 건조대가 있는 이유? 건조대 위에 핸드폰을 올려 놓으면 발로는 페달을 밟으면서도 두 손으로 자유롭게 핸드폰을 쓸 수 있으니까. 잔머리로 완성한 운동용 핸드폰 거치대다.
▲ 내가 쓰는 스텝퍼 스텝퍼 앞에 빨래 건조대가 있는 이유? 건조대 위에 핸드폰을 올려 놓으면 발로는 페달을 밟으면서도 두 손으로 자유롭게 핸드폰을 쓸 수 있으니까. 잔머리로 완성한 운동용 핸드폰 거치대다.
ⓒ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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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인터넷에서 스텝퍼를 구입했다. 스텝퍼는 말 그대로 '걷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홈 트레이닝 기구다. 시중에 다양하게 나와 있는 운동 기구 중에 하필 스텝퍼를 택한 이유는, 가격이 오만 원 안팎으로 저렴한 데다가 성인 여자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기구가 가볍고, 무엇보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4일, 한 시간씩 스텝퍼로 운동을 한다. 처음엔 이까짓게 운동이 되겠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제법 효과가 있다. 삼십 분쯤 열심히 페달을 밟다 보면 등줄기가 어느새 땀으로 끈적끈적해진다.

홈 트레이닝의 가장 좋은 점은 남들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잠옷 바지 차림도 상관이 없고, 음정 박자 무시해가며 노래를 부르거나, 고릴라처럼 양팔을 힘껏 휘저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게다가 운동이 끝나면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1분 안에 샤워실로 직행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처럼 타고난 '집순이'들을 위한 맞춤형 운동이나 다름없다.

너나 할 것 없이 평범했던 일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이다. 마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대로 쭉 동네를 좀 더 걷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아직은 좀 더 거리를 두고, 추이를 살피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집에 돌아와 스텝퍼 위에 섰다. 당분간은 이 녀석이 내 개인 트레이너다. 내가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이, 나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휘젓고 있는 이 못된 감염병도 하루빨리 사그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태그:#코로나19, #홈트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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