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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이
 아빠와 아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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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이 우리집에 모였다. 엄마는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나와 남편은 6개월 된 아이를, 동생과 동생 남편은 돌이 지난 아이를 돌본다. 아빠는 조카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만, 조카는 자신에게 서툴게 다가오는 할아버지를 무서워한다. 시간이 지나 낯이 익고 다른 식구들과는 스스럼이 없는데 아빠에게만은 곁을 주지 않는다.

평소 조카가 어눌하게 단어를 말하는 동영상을 여러 번 재생해보던 아빠였는데, 좋아하는 마음만 앞서고 다가갈수록 역효과만 난다. 아기 둘 덕분에 집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데 아기를 대하는 것이 서툰 아빠는 혼자 어색하게 웃고 있다.

어린 시절의 아빠를 잊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돌이 되었을 무렵, 사우디에 일하러 갔다고 한다. 2년 정도 일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제법 커 있었다. 내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아빠는 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회복을 해야 했다. 아빠는 나와 동생의 갓난아기 시절을 함께 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다들 그랬듯이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지 않아 아기를 대하는 법을 모른다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돈을 벌러 사우디에 가서 일하느라, 투병하느라 아빠 혼자서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늘 엄마가 장사하면서 딸 둘 키우느라 고생한 것만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도 일하면서 우리를 다정하게 돌봤다. 사는 게 힘들어 늘 화가 나 있었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화 내는 일이 잘 없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아침에 내 머리를 묶어주다 잘 안 된다고 화를 내고 가버리면, 아빠가 와서 머리를 부드럽게 빗어주고 묶어줬다. 초,중,고 내내 차로 학교에 거의 매일 데려다 준 것도 아빠였다. 실이 엉켰다든지, 물건이 작동이 안 된다든지, 손에 가시가 박혔다든지 이런 혼자서 절대 안 되던 일들이 아빠에게 가져가면 마법같이 금방 해결됐다.

당연한 줄 알았다

아빠한테는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잘 나와 장학금을 받았을 때, 고맙다고 장학금 덕분에 가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대학에 가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서류를 떼야 했을 때, 대출 받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집에서 가족 모임을 하고 나면 쌀이 많이 줄지 않았냐면서 매번 고맙다고 한다. 전화 잘 안 하는 내가 어쩌다 한번 전화하면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아빠한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 본 기억이 안 나는데 아빠는 작은 것에도 꼭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표현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평생 열심히 일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것, 버릇없는 내 말에도 화를 내지 않는 것, 늘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 아빠한테 받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건 모두 당연하다 생각하고 다른 것은 왜 없냐고 불만이었다.

아빠의 살아온 사회와 나의 사회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탓했고, 세련되지 않아 투박한 아빠의 애정 표현을 거부했다. 나는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왜 아빠 고단함과 외로움을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을까?

아빠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손을 꽉 잡는 것
 손을 꽉 잡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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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내 손을 세게 꽉 잡고 흔들 때가 있다.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왜 그러냐며 손을 금방 빼고 싫어했는데 아이를 낳고 내가 똑같이 하고 있어 놀랐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 아이 손을 잡고 살짝 흔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의 손을 세게 잡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빠가 내 손을 잡을 때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데 왜 나는 애써 모른 척 했을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됐는데, 아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항상 엄마편만 드는 딸들을 보면서, 커서도 엄마한테만 고생 많았다고 말하는 딸들을 보면서 아빠는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아빠가 이제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 만나면 아빠에게 아기 대하는 법을 가르쳐 드려서 조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나도 아빠한테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아빠, 어릴 때도, 지금도 늘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빠,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아빠가 내 아빠라서 고마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아빠, #고마워,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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