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7 08:43최종 업데이트 20.05.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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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혁신의 반대말은 뭘까? '지금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하는 것'이다. 또는 '원래도 하려고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혁신'이라는 말을 세 번 언급했고, 그 중 한 번은 국정 운영 기조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정부가 일 하는 방식에서 '혁신'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금 가능한 범위에서 하고, 원래도 하려던 것을 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이다. 취임 3주년 연설과 12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추진 의지를 밝혔으며 지난 21일에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올해 말까지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전국민 고용보험'은 이제 막 추진되는 정책 같다. 아직은 평가하기보다는 기대해야 할 시점 같기도 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추진돼 온 일이었고, 이대로라면 최근 정부가 보여준 의지대로 박차를 가한다 하더라도 '혁신'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그릇에는 그 본연의 가치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민 고용보험'이 화두가 된 이유

이 시점에 '전국민 고용보험'이 화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COVID-19) 사태로 인해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일 하는 사람(취업자)의 수는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47만명 이상 줄었다. 특히 임시직과 일용직 수가 줄었고 자영업자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중요한 점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상태가 계속될지, 또다시 경제가 멈추는 일이 언제 되풀이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어떤 일자리는 생겨나겠지만 그것이 어떤 분야, 어떤 형태일지도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오히려 분명한 것은 일자리 전반에 '불안정성'이 커지리라는 점이다. 언택트(untact·비대면) 흐름이 계속된다면 집합근무·지속고용의 특징을 가진 일자리들이 다시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그런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언제 불안정한 일자리로 넘어가게 될지 모른다.

'전국민 고용보험'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정부가 "전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면, 이는 "우리 국민 중 일 하는 사람 누구라도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을 때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제공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만하다.

현재는 일 하는 사람(취업자) 중에서 절반(51.9%, 2020년 4월 기준) 정도만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 가입된 절반은 비교적 규모도 크고 안정적인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이고, 가입되지 않은 절반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특수고용형태노동자(특고) 등 안정성이 낮은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영업자들이다. 불안정하게 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보장을 받지 못 하는 구조인 것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각 2019년 기준 ⓒ 황세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금까지도 있어왔다.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도 이뤄져왔다. 2004년부터는 일용직·시간제 노동자로 확대됐고 자영업자의 가입 자격도 완화돼 왔다. 지난 5월 20일에는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예술인을 포함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이 추진돼 온 특수고용 노동자 포함 방안은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누락됐지만, 정부는 이 중 산업재해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는 9개 직종(보험판매원·학습지 교사 등)에 대해 조만간 다시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렇게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가다보면 언젠가는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이상에 닿게 될까? 그렇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낡은 틀에 억지로 욱여넣는 개정안

첫째는, '일 하는 사람'에 대한 정부의 관점이 경직돼 있어서 현재의 실상과 일치하지 않는데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는 문제다. 단적인 예가 이번 고용보험 개정안에서 예술인은 포함시키고 특수고용 노동자는 배제시킨 일이다.

소득이 줄어서 어려운 예술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배달 노동이나 대리운전을 할 수도 있고 방과후교사, 가정방문 교사 등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바로 특수고용노동이다. 이런 일들로 소득 부족분을 메우면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오던 사람들이 "직장인들처럼 나도 힘들 때 정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한다면, 이럴 때 필요로 하는 도움은 어떤 형태일까? 

이번 개정안에서와 같이, 예술인이라는 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난 24개월 중에서 9개월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 고용주 또는 계약 상대방과 반반씩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이 소득이 자발적이지 않은 이유로 끊겼다는 것을 입증하면, 기존에 받던 금액의 60%를 3~9개월간 받을 수 있는 형태였을까? 과연 이 개정안에 따른 제도로 인해서 '정부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안정성을 체감하는 예술인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개문발차'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런 데 있지 않다. 여전히 '일 하는 사람'을 한 직장에서 집합근무, 장기근속 중인 사람으로 보는 틀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이 틀에 욱여넣을 수 있는 범위의 예술인에 대해서만 고용보호를 확대한 결과가 이번 개정안인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해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기존 틀에 어떻게든 끼워맞출 수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추려낼 것이고, 그 틀을 조금만 벗어나도 적용받을 수 없도록 제도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의 본질과 고용보호 체계의 의미

잠깐 생각해 보자.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소득을 벌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 지적 자원 등을 투입하는 것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일은 사회와의 연결, 인정, 성장 등의 의미도 갖지만 여기서는 일단 정부 관점에서 보자. 되도록 많은 국민들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각자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함 없이 공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제활동에 참여해서 소득을 벌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 많고, 생계 유지를 위해 정부 지원을 받는 사람이 적어야 정부 재정이 유지된다.

이렇게 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대기업 공기업 직원이건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이건 다를 바가 없다.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간 뒤에야 일하겠다면서 경제활동 참여를 유예하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일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 낫다. 물론 한 직장에 장기근속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가장 안정적이겠지만, 어차피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꾸더라도, 짧게 짧게 여러 가지 일을 하더라도, 생계는, 자녀의 양육과 삶의 질은 큰 흔들림이 없이 유지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고용보호 체계다. 즉, 고용보호 체계의 본질은 일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소득이 끊겼을 때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쳐 주는 것이다. 여기서 '고용'이라는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까? 그 보호체계에 들어올 사람의 범위가 '고용'된 사람이냐 아니냐를 따진다면 샛길로 빠지는 셈이다.

애초에 왜 '고용'을 중심으로 보호 체계가 짜였을까? 그냥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장 분명한 '일 하는' 형태가 공장에서의 임금노동이었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 사람들이 집합해서, 동시에 일을 시작하고 끝내며, 거의 비슷한 업무를 평생동안 지속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체계다. 이미 우리는 그런 시대를 벗어나서 다른 형태의 사회로 가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2일 실시한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의견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약 6명이 '도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오마이뉴스

 
'소득' 중심으로 사회보험 체계 개편해야

그렇다 해도 정부 관계자들은 "고용보험의 성격 상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관계를 특정할 수 있어야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정부의 태도가 바로 '지금 가능한 범위에서' 한다는 것이다. '전국민 고용보험'의 방향이 잘못된 두 번째 이유다. 

이미 노동 및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지금의 사회보험 체계를 크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모든 일 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파악하고, 여기서 일정 금액의 사회보험료를 징수하자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이럴 때 예상되는 문제 중 하나는 자영업자의 경우 매출 중에서 얼마를 소득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 해법은 이미 존재한다. 정부는 근로장려금 적용대상을 자영업자로 확대하면서 자영업자의 매출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업종별 조정소득' 체계를 만들고 이를 적용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그동안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지 못 해 생겼던 여러 문제들도 해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지역 의료보험료 산정 방식의 형평성 문제다. 즉, 고용보험만이 아니라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 전체를 모든 '일 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사회보험 체제 상, 고용자를 특정할 수 없는 문제가 남기는 한다. 이럴 때는 플랫폼의 존재가 유용할 수 있다. 플랫폼에는 일감을 중개한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자로 하여금 이 내역을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거나, 아예 일감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양쪽에게서 사회보험료 부분을 원천징수해서 납부하는 역할을 맡기는 방법도 있다.

또는 일의 형태에 따라서 고용주 부담분을 정부가 대신 내거나, 피고용자의 부담분을 추후에 환급해 주는 식으로 제도를 보완할 수도 있다. 이미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이 존재하므로 충분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련의 시스템이 잘 작동하려면 국세청이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과 같이 사회보험료 징수 주체가 나뉘어 있고 소득 파악의 권한이 없어서는 '전국민 고용보험'(또는 전국민 사회보험)이라고 할 만한 강력한 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앞에서 말한 '정부가 지금 가능한 범위에서만 일 하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국세청을 중심으로 사회보험 체계를 완전히 재편한다는 것은 어쩌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이뤄진 정부 부처 및 업무 개편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정도여야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겐 안전망이 있다'는 확신을 위해

이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나누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1월, 스웨덴 등에서 온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의 한 전통음식점에 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스웨덴 전문가 한 명의 신발이 사라지고 없었다. 음식점 직원들이 앞서 음식점을 나간 손님들을 수소문했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크게 낙담하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단언컨대(I promise you), 한국 경찰은  당신의 신발을 반드시 찾아줄 겁니다."

그는 내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다. 얼마 후 음식점 직원이 다른 손님이 신고 간 신발을 되찾아 오자 비로소 표정이 풀어졌다. 한국 경찰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 한 점은 좀 아쉬웠다.

이 일이 생각난 것은 사회보험, 보편적 안전망을 논할 때면 북유럽 시스템이 인용되곤 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만나본 북유럽 사람들에게서는 '우리에게는 일 하는 사람 누구나 위기에 빠지면 반드시 떠받쳐주는 안전망이 있다'는 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이 드는 날이 올 수 있다. "한국 경찰은 신고하면 반드시 찾아준다"는 확신(물론 그가 외국인 중에서도 백인이었기에 '단언컨대'라고 할 만큼 확신했던 것이기는 하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분실물을 경찰이 찾아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하는 어느 나라가 그 정도 확신이 드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경찰과 관련 기관을 뿌리부터 흔들 기세로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면, 그로 인한 문제들이 얼마나 더 생겨날지 예측하기도 어려울 정도라면, 우리도 그 정도 기세로 달려들어야 한다. 대기업 공기업 직원이 아니어도, 프리랜서건 임시일용직이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갑자기 줄어들면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는다는 안정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가 되려면 말이다. 대통령이 던진 꿈이라면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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