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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의 밑바닥을 깎아서 둥근 창틀로 만든 창, 그 둥근 창으로 마을이 보인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 북촌마을에 있는 안드레아의 집이다.
 맷돌의 밑바닥을 깎아서 둥근 창틀로 만든 창, 그 둥근 창으로 마을이 보인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 북촌마을에 있는 안드레아의 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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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작은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김상용의 시 '남(南)으로 창을 내겠소'의 앞부분이다.

시의 제목에 빗대 '맷돌로 창을 내겠소'다. 유럽풍의 건물에 둥근 창이 하나 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래전, 절구로 쓰던 맷돌이다. 맷돌의 아랫부분을 깎아 둥근 창틀로 만들었다. 기가 막힌 발상이다.

맷돌을 다듬어 거꾸로 지붕 위에 매달아두기도 했다.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종(鐘) 같다. 거친 파도와 함께 달려온 바닷바람이 종을 휘감으면, 둔탁한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직사각의 창으로 노두와 바다 건너편의 섬이 보인다. 돼지의 먹이를 담아주는 콘크리트 구유를 깎아서 창틀로 만들었다.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의 안드레아의 집 풍경이다.
 직사각의 창으로 노두와 바다 건너편의 섬이 보인다. 돼지의 먹이를 담아주는 콘크리트 구유를 깎아서 창틀로 만들었다.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의 안드레아의 집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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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과 구유로 창틀을 만든 안드레아의 집 풍경. 지붕은 양파 형상을, 그 밑에 맷돌로 만든 종이 걸려 있다. 고양이 조형물도 섬에서 많이 사는 동물을 형상화했다.
 맷돌과 구유로 창틀을 만든 안드레아의 집 풍경. 지붕은 양파 형상을, 그 밑에 맷돌로 만든 종이 걸려 있다. 고양이 조형물도 섬에서 많이 사는 동물을 형상화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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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의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도 매혹적이다. 창밖으로 바다 건너편의 섬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이 날 때 모습을 드러내는 노두도 사각의 창 안에 배치된다. 창틀이 범상치 않다. 겉모양이 아주 거칠다. 돼지의 먹이를 담아주는 콘크리트 구유를 깎아서 앉혔다.

출입문의 문양도 별나다. 해와 달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해와 달의 시간에 맞춰 사는 섬과 섬사람들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마을 풍경이 이쁘다. 건물의 지붕에는 양파 모양의 조형물이 올려져 있다. 고양이 조형물도 우뚝 서 있다.

창틀로 쓴 맷돌과 구유는 섬에서 쓰던 물건이다. 양파는 섬에서 많이 재배하는 농작물이다. 고양이는 주민들보다도 더 많이, 섬에서 살고 있다. 집과 조형물이 파도와 갯벌, 산, 논밭과 잘 어우러진다. 섬 풍경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축물이다.

'안드레아의 집(생각하는 집)'의 겉모습이다. 이원석 작가의 작품이다. 안드레아의 집은 예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작은 예배당 가운데 하나다. 병풍도와 노두로 연결되는, 북촌마을의 앞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북촌마을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에 속한다.
  
안드레아의 집 앞으로 펼쳐지는 대기점도의 북촌마을 풍경. 병풍도와 노두로 이어지는 북촌마을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에 속한다.
 안드레아의 집 앞으로 펼쳐지는 대기점도의 북촌마을 풍경. 병풍도와 노두로 이어지는 북촌마을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대기점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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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며 여행을 하고 있는 동호인들. 바닷물에 비치는 두 바퀴가 환상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닷물이 빠진 신안 기점소악도의 진섬과 딴섬 사이 풍경이다.
 섬의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며 여행을 하고 있는 동호인들. 바닷물에 비치는 두 바퀴가 환상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닷물이 빠진 신안 기점소악도의 진섬과 딴섬 사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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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점도는 북촌에서 병풍도, 남촌에서 소기점도와 연결된다. 바닷물이 빠지면 노두를 통해 하나가 된다. 바닷물이 들면 서로 떨어져 섬으로 남는다. 하루 두 번 되풀이된다. 노두는 주민들이 물때에 맞춰 건너다니던 길이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다. 사람은 물론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도 오간다.

노두를 통해 여러 개의 섬과 연결되는 대기점도는 수려한 경관을 지닌 섬이 아니다. 병풍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 외에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평범한 섬이었다. 전라남도가 섬의 노두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2018년 '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로 기점도와 소악도가 선정됐다.

작은 예배당은 이 사업으로 지어졌다.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딴, 12개의 예배당이다. 집짓기에는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했다. 작가들의 생각과 눈은 달랐다. 땅은 물론 갯벌과 호수에도 집을 지었다.
  
신안 기점소악도의 12개 작은 예배당 가운데 베드로의 집. 대기점도 선착장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기적의 순례길의 출발점이다.
 신안 기점소악도의 12개 작은 예배당 가운데 베드로의 집. 대기점도 선착장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기적의 순례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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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섬에 있는 12번째 예배당인 가롯유다의 집 풍경. 바닷물이 빠지면서 진섬과 연결됐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노두를 따라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만날 수 있어 기적의 순례길로 불린다.
 딴섬에 있는 12번째 예배당인 가롯유다의 집 풍경. 바닷물이 빠지면서 진섬과 연결됐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노두를 따라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만날 수 있어 기적의 순례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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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은 집이 노두로 연결되는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5개 섬 12㎞에 배치됐다.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려서 '기적'이다. 12개의 예배당을 차례로 만나니 '순례'다. 기적의 순례길이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노두를 따라 하나씩 만날 수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빗대 '섬티아고'로도 불린다.

작은 예배당은 특정 종교의 시설이 아니다. 개신교인들한테는 예배당, 천주교인들에게는 공소, 불자들에겐 암자일 수 있다. 여행자에게는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한 쉼터다. 섬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불편까지도 즐겁게 해준다.
  
대기점도의 남촌마을 풍경.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요한의 집이 이 마을에 있다.
 대기점도의 남촌마을 풍경.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요한의 집이 이 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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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마을에 사는 한 아낙네가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대기점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남촌마을에 사는 한 아낙네가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대기점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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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도 각별하다. 부모의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집도 있다. 남촌마을에 사는 오지남(84)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밭을 선뜻 내어줘 지은 '요한의 집(생명평화의 집)'이다.

위아래로 길게 난 창으로 4년 전 사별한 할머니의 묘가 보인다. 사람이 나고, 살다가 죽기까지의 과정을 할머니의 묘를 통해 담아냈다. 창의성이 돋보이는 박영균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구상을 위해 섬에 갔었는데, 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묘가 이쁘더라고요. 묘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연을 듣게 됐죠." 박 작가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작가의 마음을 송두리째 움직인 건 할아버지의 사연이었다. 할아버지는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할머니가 4년 전에 작고했다. 암이었다. 그럴싸한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혼자 남은 할아버지가 밭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할머니의 고충을 알게 됐다.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 어떻게 다 했을까?' 지난날이 절로 그려졌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할머니가) 병이나 죽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진즉 알지 못했을까' 회한도 밀려왔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속죄의 마음이 커졌다.

할아버지는 묘 주변에 풀꽃을 심었다. 죽어서라도 할머니를 꽃밭에 두고 싶었다. 틈틈이 묘지도 단장했다. 박 작가를 만난 게 그때였다. 자신의 밭 한 귀퉁이를 기꺼이 떼어줬다. 그렇게 지어진 집이 '요한의 집'이다.
  
하얀 원형의 외곽에다 지붕과 창의 색깔유리가 아름다운 요한의 집. 치마처럼 펼쳐진 계단과 염소 조각상도 눈길을 끈다. 요한의 집 뒤, 왼쪽 산자락에 할머니의 묘가 보인다.
 하얀 원형의 외곽에다 지붕과 창의 색깔유리가 아름다운 요한의 집. 치마처럼 펼쳐진 계단과 염소 조각상도 눈길을 끈다. 요한의 집 뒤, 왼쪽 산자락에 할머니의 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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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도와 소악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간척지를 중심으로 쌀과 보리를, 야트막한 구릉의 밭에는 콩과 고구마, 마늘과 양파를 심고 있다.
 기점도와 소악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간척지를 중심으로 쌀과 보리를, 야트막한 구릉의 밭에는 콩과 고구마, 마늘과 양파를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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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집은 하얀 원형의 외곽에다 지붕과 창의 색깔유리가 아름답다. 치마처럼 펼쳐진 계단과 염소 조각상도 눈길을 끈다.

할아버지는 집안일을 하다가도, 할머니가 생각나면 이 집을 찾는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으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할아버지에게 이 집은 온전히 할머니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요한의 집이 있는 남촌마을은 북풍을 피할 수 있는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기적의 순례길은 여기서 '필립의 집(행복의 집)'으로 이어진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가 있는 곳이다.

섬의 모양새가 기묘한 점을 닮았다고 이름 붙은 대기점도다. 섬의 북쪽에 북촌, 남쪽 해안에 남촌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은 70여 명 산다.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간척지를 중심으로 쌀과 보리를, 야트막한 구릉의 밭에는 콩과 고구마, 마늘과 양파를 심고 있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두 입구에서 만나는 필립의 집.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 형태를 띄고 있다. 12개 작은 예배당 가운데 하나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두 입구에서 만나는 필립의 집.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 형태를 띄고 있다. 12개 작은 예배당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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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요한의집, #안드레아의집, #기점소악도, #가고싶은섬, #작은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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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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