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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영토, 민족, 문화 공동체의 경계로 작동한다. 개인에게 내면화된 외국어는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외국어를 터득해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아이템이자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하는 높은 지적 수준을 상징하는 장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모국어를 즉각적으로 통·번역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지금까지 지적 수준의 상징으로, 사회적 자본으로의 지위를 누려온 외국어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라틴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한국어에 능통한 저자 로버트 파우저는 <외국어 전파담>을 한국어로 집필했다. 서문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 세 개 언어로 되어 있다. 외국어를 듣고 말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쓰기인데, 우선 저자의 뛰어난 언어능력에 감탄과 경외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어 전파담>은 외국어 전파의 역사적 과정과 그 의미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부제에서 제시하듯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에 대한 물음, 이 책은 이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외국어 전파담> 언어 전파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데 유익하고, 언어의 사회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외국어 전파담> 언어 전파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데 유익하고, 언어의 사회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혜화1117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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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자유로운 창조의 과정이다. 규칙과 원칙이 고정되어 있지만 언어 생산을 위해 원칙을 사용하는 방법은 자유이며 무한하게 다양하다. 단어의 사용과 해석에는 자유로운 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 -276쪽
  
촘스키의 이 말은 인간이 지니는 언어능력의 탁월한 창조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불충분한 언어 재료를 조합하여 선보이는 놀라운 언어능력 자체는 인간의 순수한 창의성을 증명하지만, 그 앞에 놓이는 언어 재료는 결코 자유롭지도, 평화롭지도, 순수하지도 않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선택된 결과물이다.

강자의 언어가 약자의 언어 식탁에 강제로 놓이게 된다. 한반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려던 일본 제국주의가 시행한 조선어 금지, 창씨개명 등의 민족말살정책이나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영어 조기교육에 목을 매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국어와 외국어의 등장

근대국가 이전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언어권의 말이 아닌 문자를 익힌다는 의미였다. 즉 가장 오래된 문명어인 라틴어, 한자,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등을 학문적, 종교적 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문자를 익히는 수준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형성된 근대국가는 왕과 지배계층의 언어를 막강한 권력으로 하나의 통치의 언어로 지정, 보급했다. 그 과정에서 국어의 개념이 형성되고, 사전이 편찬되고, 문법체계가 정리되었다. 또 국제 질서에서 주도권을 갖는 국가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하나의 교양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부유계층에서 생겨났다. 즉 외국어가 자신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 간 교류가 증가하면서 글과 말을 함께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르네상스 후기 프랑스가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영국에서도 프랑스어 열풍이 불었고, 프랑스어는 점차 외교 공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이런 전통은 20세기까지 이어진다.
  
제국주의, 종교, 언어는 같은 배를 타고
  

대항해시대(15세기 초반~18세기 중반)가 막이 오르며 그 배에 제국주의와 종교 그리고 언어가 함께 올라탔다. 선진 무기로 무장한 이 무례한 방문은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폭력적이고 불평등했다.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대륙에 마음대로 지도에 줄을 긋고 국경을 나눴으며, 자국의 언어를 전파했다. 교역에서는 자국 언어를, 선교를 위해서는 식민지의 언어를 사용해 접근했다가 결국 어느 정도 선교에 성공하면 자국의 언어로 종교를 전파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강제하며, 언어를 지배의 도구로 활용했고, 피식민지의 언어를 억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소수 언어는 사라졌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이 독립하고 자국어를 다시 사용하려 할 때는 이미 자국어가 사라져 하는 수 없이 식민지 시대의 언어를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가 그렇고, 인도도 비슷한 처지다. 식민지의 언어에 저항했던 소수 언어 사용자들은 독립이 되고도 새로운 언어적 불평등 지배 구조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1946년 미군정에 의해 수립된 1차 교육과정에 영어는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후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사회적 자본의 지위를 누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언어의 민족주의적, 문화적 주체성 측면은 간과한 체 효율성의 경제 논리에 빠져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주장은 이제 그칠 때도 되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선두주자인 영국과 프랑스는 영어가 55개, 프랑스어가 29개국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영어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린 영국이 다져나온 기반 위에 20세기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의 후광으로 세계 공용어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언어는 곧 국가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의 흔적은 여전히 세계 도처에 '공용어 분포도'라는 선명한 무늬로 남아 있다.

인공지능 시대, 외국어의 의미
   

지구상에는 현재 약 6천여 종의 언어가 있는데, 100년 이내에 약 600여 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2주에 하나씩 소수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어떤 미래학자는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만 남고 모든 민족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한다.

그런 불안감에서일까. 아니면 소프트파워 형성에 중요한 요소인 언어 보급을 통해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한 전략일까. 세계 각국은 자국의 언어를 해외에 소개, 전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어 보급을 위해 세종학당이 전 세계적으로 180개소, 중국의 공자학원 550개소,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문화원 70여 개소, 포르투갈의 카몽이스 문화원 40여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외국어 습득의 전제 조건은 권력과 자본이다. 이때 자본은 꼭 돈을 의미하진 않는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의 유형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것으로 나눈다. 외국어는 바로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통해 외국어 하나는 마스터해야 전문가로 인식하는 풍조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자본의 구조일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 자본의 구조가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어가 더 이상 사회적 자본의 토대로서 기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취미나 소통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사람이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발달로 언어 장벽은 사라지고, 외국어를 배우는 어려움과 지루함에서 인간은 해방될 수 있을까. 저자 로버트 파우저는 이렇게 말한다.

"날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은 시간의 문제일 뿐 불가능의 영역이 없어 보인다. (중략) 자신의 모어로 이야기하는 즉시 인공지능을 통해 통역이 되어 상대방의 모어로 전달되면 굳이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모어와 상대방의 모어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당연히 외국어 구사 능력으로 획득했던 특권도 사라지고 언어와 사회적 자본의 상관 관계 역시 변화할 것이다. (중략) 이로써 외국어 학습 능력은 정보 기술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세계 공통어라는 영어의 위상 역시 무의미해질 수 있다." -336쪽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현재 막 시작된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의 언어가 모두 영어라는 점이다. 이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영어가 누릴 패권은 향후에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언어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국제질서, 신분사회에서 언어는 명확한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그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폭력적으로 소수언어의 생존을 빼앗고 군림한다.

인공지능의 언어가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닮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조선시대 왕과 대신들이 하는 우리말을 사관(史官)이 한자로 기록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 우리말의 운명이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인간들은 신의 진노를 산 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다시 같은 언어를 사용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인공지능이 과연 그 꿈을 실현시켜줄 것인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게 해줄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제 도구 너머의 다른 무엇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341쪽

<외국어 전파담>은 언어 권력이 지나간 물길을 탐사하고, 그 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언어 전파에 대한 세부지식을 염탐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언어 전파 사례의 지나친 나열과 글의 흐름을 끊는 외국어 학습법 소개 내용 등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정보는 독점될수록 권위가 강화된다.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 하는 기술력을 지닌 국가와 인공지능의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또 다른 패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그때까지 소수언어들은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또 자국의 언어가 인공지능에 탑재될 수 있도록 기술력과 외교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국제 질서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강자들의 너그러움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로버트 파우저 (지은이), 혜화11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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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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