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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의료현장 실태에 대한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 토론회에서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제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어머니 이지연씨.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의료현장 실태에 대한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 토론회에서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제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어머니 이지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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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무렵, 정유엽(17·경북 경산)군의 사망 보도가 쏟아졌다. 높은 발열 및 폐렴 증세를 보였던 정군의 사망원인을 코로나19와 연결하는 추측도 잇따랐다.

최종적으로 그는 코로나19와 무관한 환자였다. 하지만 결과가 너무 늦었다. 판정은 총 10번의 코로나19 검사 후에야 나왔다. 그동안 정군은 생존과 직결된 치료 골든타임을 놓쳤다. 기저질환 하나 없고 코로나19 환자도 아니었던 정군은 끝내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셈이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우리 아들과 같은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정군의 부모 정성제·이지연씨가 직접 목소리를 냈다. 21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긴급 토론회 '2차 확산대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참석한 이들은 아들의 사망 과정을 힘겹게 설명했다. "기저질환도 없고 단순 감기로 시작된 고열과 폐렴으로 젊은 학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모든 곳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말로 어렵게 입을 뗐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뭐냐니까 (코로나19 검사가 안 나와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대요. 저희는 뭘 해야 하냐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대요."

정군의 발열이 시작된 것은 3월 11일이다. 감기 증세를 시작으로 고열이 일었다. 12일에도 고열이 내려가지 않자, 가족들은 곧장 경산중앙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하지만 운영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치료 하나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정군 부모에 따르면 당시 경산 지역 누적 확진자는 500여 명이 넘어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선별진료소는 오후 7시 30분 마감이었다. 대구 청도 지역은 24시간 운영이 됐다. 똑같은 특별재난구역이었지만, 경산만 24시간 운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 13일, 가족들은 다시 경산중앙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날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검사, 독감 검사, 폐 X선 촬영을 했지만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치료가 제한됐다. 당시 의사는 해열제와 수액을 맞힌 뒤, "조금 더 강한 약을 처방해주겠다"면서 가족들을 귀가시켰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들은 아들의 말 '엄마, 나 아파...'
 
"'엄마, 나 아파...' 이게 마지막으로 들은 아들의 말이었어요. 유엽이를 카트에 눕혀서 지퍼백 닫고 병원 안으로 들여보낸 게 저희가 (병원 밖에서) 본 유엽이 마지막 모습이었고요."
 ""엄마, 나 아파..." 이게 마지막으로 들은 아들의 말이었어요. 유엽이를 카트에 눕혀서 지퍼백 닫고 병원 안으로 들여보낸 게 저희가 (병원 밖에서) 본 유엽이 마지막 모습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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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데 유엽이가 다시 구토, 고열에 호흡곤란이 오는 거예요. 너무 심해져서 1339에 연락했더니 경산보건소를 연결해줬어요. 그런데 보건소도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오히려 오전에 갔던 경산중앙병원과 상의해보라고. 그래서 다시 경산중앙병원에 연락했더니, 담당 의사가 사실 오전에 (상부 병원으로 보낼) 소견서를 써줄까 했다면서 바로 오라더라고요."

달려간 후에 들은 것은 "(유엽이가) 오늘 저녁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갑작스런 통보였다. 불과 아침만 해도 귀가 조치를 받은 부모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어 해당 병원은 상급병원인 영남대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위중한 상황이었지만 가족들은 응급차에 오를 수도 없었다. 정군의 엄마 이지연씨는 "(경산중앙병원) 원장에게 앰뷸런스라도 불러달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면서 "결국 자차로 이동했는데 하필 퇴근 시간과 겹쳤다. 꼬박 40~50분을 걸려서 차 뒷좌석에 반쯤 쓰러져있는 아들을 태우고 영대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엄마, 나 아파...' 이게 마지막으로 들은 아들의 말이었어요. 유엽이를 카트에 눕혀서 지퍼백 닫고 병원 안으로 들여보낸 게 저희가 (병원 밖에서) 본 유엽이 마지막 모습이었고요. 영대병원 갔을 때 그쪽 의사 선생님은 우리 아들이 코로나19라고 (확률이 높다고) 했어요."

하지만 3월 14일, 경상중앙병원은 정군의 두 차례 코로나19 검사 모두 음성이라 발표했다. 그럼에도 정군은 사망 직전까지 총 열 차례의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마지막 10번째 검사 때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방역 당국은 "모든 진단검사를 판단할 결과 최종 음성으로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정군은 코로나19와 무관한 환자였다.

"양성판정 통보를 받은 날(3월 18일), 유엽이 사망 통보도 그날 받았어요. 가족 모두 코로나19 검사, 자가격리 안내를 받아서 집에 가고 있는 와중에 전화로 사망 통보를 받았어요. 1차 사망진단서에는 코로나19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이라 적혀있었죠.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코로나19 음성이었어요. 저희 가족 모두도요.

나중에 아들 장례식을 치르러 시신을 데려왔어요. 그런데 경산의 일부 다른 병원에서는 아들의 간소한 장례조차도 코로나19로 의심해서 외면했어요. 또, 음압병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아들 시신도 비닐 팩에 겹겹이 싸여 밀봉돼있어요. 얼굴 확인도 제대로 못 했죠. 그렇게 옷 한 벌 입혀주지 못하고 화장터로 향해야 했어요. "


"코로나19 감염 여부 확정 전 진료 공백 발생"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 토론회에서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이 발표를 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 토론회에서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이 발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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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던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당시 지역사회 선별진료소는 24시간 운영을 하지 않았고, 지역사회 국민안심병원은 코로나 의심 환자를 병원 안에서 진료할 수 없어서 환자를 귀가시켰다"며 "고열을 동반한 비정형 폐렴 의심 환자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진료 공백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모든 게 늦어버렸다. (환자 진료의) 특정 시기를 넘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당시 (경산중앙병원은) X선 촬영 후 폐렴인 것을 확인했음에도 환자를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부분은 판단의 잘못뿐만 아니라, 어느 병원으로 환자를 전달해야 하는지가 정확하게 매뉴얼화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잇따라 진행된 코로나19 검사와 관련해서도 "코로나19라는 의심, 확증을 너무 빨리 내렸다. 그것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해야 했다"면서 "계속 음성 판정이 나왔다면 빨리 치료할 방침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군의 부모가 바라는 것은 아들의 사망 경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다. 정군 아버지 정성제씨는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음성으로 판정되었기에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 하고, 병원은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면서 어떠한 사과도 없이 책임을 회피한다. 경산시장과 시의회를 상대로 하소연했지만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외면했다. 오히려 유족에게 수 없는 상처를 줬다."

정군의 부모는 "저희는 국무총리에게 보내는 탄원서 서명운동을 지역에서 전개하고 있고, 중앙 측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관련법 제정을 통한 (의료 공백 사건) 재발 방지와 행정·제도적 대안 마련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당부했다.

경북 경산의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정군 사건과 관련해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권영국 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오늘(21일) 경산에서 대책위가 처음으로 소집됐다"면서 "지역 자체에서 요구를 분명히 해야 이 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태그:#코로나19, #확진자, #대구, #경북, #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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