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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2016년 비정규 희망찾기 연극제 공연을 마친 이유리씨와 '직장인 연극반' 단원들. 앞줄 가운데가 이유리씨.
 2016년 비정규 희망찾기 연극제 공연을 마친 이유리씨와 "직장인 연극반" 단원들. 앞줄 가운데가 이유리씨.
ⓒ 일하는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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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알바를 못 구해요.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 자체가 거의 없어요."

극단 '작은곰'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이유리씨는 얼마 전까지 전단 알바를 하다가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중이다. 그는 20대 중반까지 한 번도 연극인을 꿈꾼 적이 없고,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원래는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부모님이 말렸죠. 사범대 들어가기도 어렵고, 몇 년씩 임용고시를 준비해도 붙기 힘들 테니, 취업 잘되는 학과로 진학하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현실적인 충고잖아요. 그래서 따랐죠."
 
2014년 언어치료학과를 졸업한 이유리씨는 대학병원에 취직했다. 2년 계약의 연구원 자리였다. 그는 출퇴근을 위해 수원에서 자취를 했다. 보증금 200에 월세 20만 원 하는 원룸은 햇빛도 잘 들지 않았다. 유리씨는 성실한 직원이었지만, 연구원 일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

2년간 집과 회사를 오가며 단조로운 삶을 반복하는 동안, 점점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답답함과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직장은 그에게 계약 연장의 조건으로 대학원 진학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학원까지 다니게 되면, 유리씨의 삶은 24시간 송두리째 직장에 묶일 터였다.

그런 고민을 하던 때 그는 우연히 연극을 한 편 봤다. 난생처음 연극을 접한 유리씨는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겼다. 그 뒤로 그는 틈날 때마다 공연을 보러 다녔다. 서울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SNS에서 '직장인 연극반' 공모 포스터를 봤다.

유리씨는 용기를 내어 응모했고, 연극반에 들어가 공연 연습을 시작했다. 공연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에 연구원 계약기간이 끝났고, 그는 자연스럽게 퇴사했다. 그때는 이미 배우가 되기로 진로를 정한 뒤였다.

퇴사하고 나서 한동안은 모아 둔 돈과 퇴직금이 있었기에 생활해 나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지인으로부터 한 풍물단체를 소개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무 보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풍물에도 관심이 생겼다.

북과 장구를 배웠는데, 풍물은 연극만큼이나 그를 사로잡았다. 심지어 '배우가 되지 말고 풍물 공연자로 살아갈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력이 늘어 공연도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연극에 대한 욕심이 살아났다. 연극과 달리 대사도 없고 감정 표현도 못 하는 '풍물 공연'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풍물 공연 중인 이유리씨(가운데)
 풍물 공연 중인 이유리씨(가운데)
ⓒ 이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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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그는 풍물단체를 나와 본격적으로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개인교습비는 30만 원으로 관행에 비해 싼 편이었지만, 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나마 방세가 30만 원 이하여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그럭저럭 버텼다. 그 해에 유리씨는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오전 9시 반부터 1시까지 최저시급을 받고 올리브영 스태프로 근무했고, 최저임금에 주휴수당도 없고 생각보다 일이 많았던 편의점 오후 알바도 했다. 쿠팡 물류 칸에서 물건을 가져와 포장대로 보내는 알바는 조건이 조금 나았지만, 대부분 1일 알바생을 고용했기 때문에 사람을 정말 함부로 대했다.

"돈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없다가도 생기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2018년 하반기부터는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하지만  6개월 배워서 남들이 몇 년 동안 전공한 것을 해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점점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오디션을 보러 다니니까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아르바이트도 단기로밖에 할 수 없었죠.

돈이 없으니 우울했어요. 무력감에 사로잡혀 나중엔 아무것도 안 하게 됐죠. 어느 순간 정신이 들었어요. 우선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2019년 1월에 삼성전자서비스 콜센터에 6개월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어요."


그가 일했던 삼성전자서비스는 '자회사'여서 대기업 삼성과는 매우 달랐다. 임금이나 복지 모두 열악했고, 대부분의 직원이 비정규 계약직이었다. 유리씨가 했던 일은 에어컨 구매 고객 상담이었다. 이곳 상담원들은 한두 달 정도만 교육받고 바로 실무에 투입됐다.

그러나 직접 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지식과 숙련이 필요해서 단기 계약직 직원들이 하기 힘든 일이었다. 고객들의 질문은 다양하고 복잡했고, 교육기간에 배운 적 없는 내용도 매우 많았다. 상담직원 선에서 대답하기 어려우니 자주 매니저나 교육 담당자에게 문의해야 했는데, 그들도 답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고객에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면, 상담직원이 고스란히 고객의 불만을 받아내야 했다. 

회사는 모든 책임을 상담 직원들에게 떠안기고 문책하기에 바빴다. 또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다 사용할 수는 없었다. 자리를 비우는 '이석'이 많으면, 그것도 문책 사항이었다. 계속 목을 쓰니 인후염에 걸리기도 했고, 고객이 화를 내거나 함부로 대해도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 했다.

한번은 어떤 고객이 유리씨에게 끈질기게 매니저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상담 지침에 매니저를 바꾸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고객의 요구에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는 항목도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고객의 전화를 매니저에게 바꾸어 줬고, 그 일로 또 심한 문책을 당했다.

타인의 시선을 넘어 '미지근하고 긴 열정'으로
 
 연극 공연 중인 이유리씨(앞줄 가운데)
 연극 공연 중인 이유리씨(앞줄 가운데)
ⓒ 일하는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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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6개월 동안 유리씨는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어렵게 돈을 모으고 그곳을 그만둔 뒤에는 한동안 탈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넉 달쯤 지난 뒤 그는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2019년 12월 극단 '작은곰'에 들어갔다.

"저는 연극을 늦게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열정이 덜한 것 같아요. 같이 연극을 하려는 다른 친구들보다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이 길을 걸은 친구들은 연기를 하면서 중간에 터닝 포인트를 겪는다고 하는데, 저는 이 길로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삶의 터닝 포인트가 왔으니까요.

뭔가 미리 너무 힘을 빼 버린 느낌이랄까요? 이미 사회생활을 하며 환멸을 겪고 많이 지친 상태에서 이 분야로 들어왔으니 말이죠. 그래서 결코 희망적으로 생각하지 않죠. 경제적으로는 정말 암울하다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그 경제적 암울함이 어떤 것인지도 너무나 생생하게 다 느껴봤으니까요.

연습비가 나오는 공연도 있지만, 대부분의 극단은 그런 것은 꿈도 못 꿀 정도로 돈이 없고, 배우들의 급여도 진짜 적어요. 큰 스케일의 상업 연극이 아닌 이상, 급여 자체를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죠. 이렇게 연극계 안에 양극화가 크니까 저는 유명배우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단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양극화 구조를 바꾸는 게 먼저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낙담을 안고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흔들리지 않고 배우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길게 보려고요. 남들처럼 뜨거운 열정은 없지만, 미지근하고 긴 열정이랄까요?"


한편에서는 이런 유리씨에게 '현실감각'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시선이 있다. 남들처럼 일찍 시작해도 될까 말까 한데, 뒤늦게 연극계에 뛰어든 그가 무모하다는 것이다. 또 성격이나 외모, 나이를 가지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예전의 유리씨는 자존감도 낮아지고, "내가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도 밀려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중심을 잡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다. '그냥 저 사람들은 저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2020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연극의 해'이지만, 코로나19로 연극계는 어느 때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극의 해' 사업비용으로 책정된 21억 원을 놓고 연극계와 정부는 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계의 입장은, 특정 사업을 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연극인들의 생계 위협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열정만으로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만들 수 없기에 국가적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함을, 코로나의 위기는 더욱 잘 보여준다. 안 그래도 어려웠던 연극계가 코로나 사태를 넘어 생존할 수 있다면, 온갖 어려움에도 연극의 의미와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이유리씨 같은 청년 연극인들이, 지속적으로 선배들의 뒤를 잇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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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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