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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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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그러나 마냥 기릴 수만은 없어 보인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우리 사회는 발포 명령자를 밝히고 적절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고, 전두환씨 등 가해자와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를 두고 진실공방이 오가는 등 여전히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진상규명 목소리가 높다는 점은 한 가닥 위안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진상규명위원회 활동에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고,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21대 국회에서 5.18 관련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의 노력도 칭찬해주고 싶다. 먼저 <뉴스타파>는 12일부터 18일까지 네 번에 걸쳐 일본 외무성 비밀문서에 담긴 전두환씨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이 비밀문서엔 전씨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아래 국보위) 설립 전에 이미 훈타(JUNTA), 즉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의장에 오르려고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5.18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에 있었던 이들을 '소환'했다(관련 기사 : 5.18 40주년 특집-이방인의 증언). 팀 원버그는 5.18 기간 내내 계엄군에게서 광주 시민을 지켜냈다. 폴 코트라이트는 광주 충장로에서 어느 할머니와 만난 뒤 역사의 증인이라는 역할을 짊어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할머니가 주었던 과제를 하지 못했고 40년이 지난 이제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는 코트라이트의 회고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 

가장 놀라웠던 이들은 스티븐 클라크 헌지커와 캐롤린 투르비필이었다. 두 사람은 1980년 7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티븐 클라크(Steven Clark)와 캐롤린 페리(Carolyn Perry)란 가명으로 AFP통신에 계엄군의 잔혹함을 폭로했다. 이들은 계엄군의 양민 살해 암매장, 성폭행, 헬기 사격 의혹 등을 제기했다. 이들이 폭로한 의혹들은 지금도 논란이 되는 것들이다. 

전략적 이익 지키려 평화봉사단 무시한 미국 정부 

두 사람의 폭로는 한미 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온 듯하다. 한국 외교 당국은 두 사람을 추적했고, 미국 쪽에도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한국 쪽에서 헌지커와 투르비필의 폭로를 불편하게 여긴 건 이해할 만하다. 놀라운 건 미국 정부 쪽 태도다. 

AFP 보도 이후 외무부 이계철 미주국장과 주한미대사관 블랙모어 참사관이 만나 두 사람을 거론했는데 이 국장과 블랙모어 참사관의 대화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국장이 블랙모어 참사관을 압박했다는 인상이 짙다. 

미국 쪽도 한국 정부의 압박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몬조 주한미대사 대리는 박동진 외무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본인도 평화봉사단원 행동이 매우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하며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라며 "(이는) 미국에 대해서도 크게 독을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단독] 5·18 필름 들고 스웨덴행, 전두환이 쫓던 '그들' 찾았다).

평화봉사단원의 증언은 미국 정부가 5.18을 묵인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평화봉사단원 돌린저는 광주에서 참상이 종료된 직후인 5월 30일 미 대사관을 찾았는데 대사와의 만남을 거절당했다고 증언했다. 계엄군의 진실을 폭로한 투르비필은 "연방수사국(FBI)이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미국에 있는 부모님 집에 찾아와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몰랐고 매우 무서워했다"고 증언하기까지 했다. 

<오마이뉴스>가 발굴한 평화봉사단원 증언 기록은 미국 책임론을 새롭게 제기할 유력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의 5.18 광주 개입 정도는 규명되어야 할 또 다른 진실이다. 물론 미국이 광주 상황을 예의 주시했고, 계엄군의 무력 사용을 묵인했음은 일정 수준 드러났다. 

집권 초기 도덕주의 외교를 내세운 지미 카터 행정부가 전두환 신군부의 학 살행위를 방조했다는 사실은 묘한 역설이다. 

카터는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 인질사건,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으로 위기에 몰렸다. 특히 이 두 사건은 미국 패권의 약화를 보여주는 징후로 보였다. 대선을 앞둔 카터로선 불가피하게 현실주의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은 카터 행정부의 노선 변화에 따른 첫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새로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은 전두환을 한껏 치켜 올렸다. 레이건은 인접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정상을 만나는 관례를 깨고 전두환을 가장 먼저 백악관에 불러 들였다.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에게 레이건의 환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제껏 미국 정부 책임론은 정치·외교적 수준에 머물러 왔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이 현장에서 참상을 목격한 평화봉사단원과 면담을 거부하고 이들의 보고까지 무시한 사실이 드러난 점은 새로운 차원을 열어줬다는 판단이다.

미국 정부는 세계 도처에서 개입을 서슴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선 군부를 사주해 민주정권도 무너뜨렸다. 1973년 칠레 군부쿠데타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우가 딱 여기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활동하던 자국민이 목격한 참상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전두환 신군부의 부상을 묵인, 방조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는 정치적 책임은 물론 도덕적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5.18 이후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은 한반도에서 자국의 정치적 이익만을 앞세우는 모습이다. 이러한 행태는 진정한 동맹의 모습이 아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한반도 분단 등 중요한 역사적 국면에서 미국은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광주 5.18도 그중 하나다. 한국인들 사이에 반미 감정이 싹튼 중요한 계기 중 하나로 5.18이 있다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한국에서 진상규명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미국 정부도 적극 협력하기 바란다. 그게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를 목격했던 자국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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