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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재난을 마주했다. 일상의 회복을 향한 갖가지 노력과 정부대책이 세워졌으나,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고 있던 사회에서 재난을 마주한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에 처하고, 정당한 가치 인정 없이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돌봄노동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재난위기 대책이 논의 되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와 삶터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기획을 세워 총 13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해 여성의 현장 상황을 알리고자 한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우리는 먹고 노는 사람이 아니다"... 코로나19 위기 속 전업주부]

전라북도가 2차 추경 예산을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편성하면서 신속하게 코로나 19 대응에 나서고 있다. 고용피해 최소화를 위한 각종 지원은 물론이고 실직자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택시, 화물 업계, 예술인 등 특수형태 노동자를 위한 지원안도 편성했다. 또한 전주시는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최초로 전주 시내 5만여 명에게 1인당 52만7000원의 재난 기본소득 지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여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인권에서, 재난지원에서 소외된 가사노동자들이다.

'강제 휴업'에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해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전북지부 소속 가정관리사들 중에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조짐이 보이자마자 고객들에게 일방적으로 '일을 하러 오지 마라'는 통보를 받은 경우가 많다. 준비되지 않은 강제 휴업이었지만,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처럼 가정관리사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갑자기 어느 고객의 집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생계에 직접적인 문제가 생겼지만, 전라북도나 전주시에서 제공하는 각계각층을 위한 수많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2019년 제8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전북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이  <가사노동자 권리 선언 캠페인>을 진행했다. 노동자로서의 존중과 인정을 위해 역 앞에서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9년 제8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전북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이 <가사노동자 권리 선언 캠페인>을 진행했다. 노동자로서의 존중과 인정을 위해 역 앞에서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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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11조 하단에 '가사사용인에 대하여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현행법상 가사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이 제공되는 장소인 가정을 사업이나 사업장으로 볼 수 없고 가사노동의 수요자인 개인을 '사용자'로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인 개인 가정도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4대 보험의 가입의무도 없다.

가사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지원금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가정관리사들은 보통 1회 4시간 기준으로 주 8회 정도의 일을 한다. 청소, 빨래와 다림질, 음식 준비 등 전반적인 가사 일을 담당하는데 법적으로 정해진 급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시간당 1만 원 정도의 서비스 요금을 일당제로 받는다. 요금은 고객에 따라 현금으로 받기도 하고 계좌이체로 받기도 한다. 이번 특수고용노동자 지원대책 안에는 급여 통장 사본으로 소득 감소를 증빙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일당제인 가사노동자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금으로 서비스 요금을 지급 받는 경우, 소득 감소 증빙이 어려운 것이다.

늘어난 요구사항... "과한 처사 아닌가?"

가정관리사 중에는 외부 감염의 우려로 인한 고객의 일방적인 통보로 일을 쉬게 된 경우가 제일 많았지만, 일을 지속하는 경우에는 고객 집에서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사람 많은 곳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 다녀왔는지 말해 달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고객은 출근 1시간 전부터 전화해서 "몸 상태는 어떠냐? 열은 있느냐?"라고 사전 체크를 하여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출근하게 한다. 그러나 고객들도 가사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브라질의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정 관리사였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집 주인 여성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으나 이를 가정관리사에게 알리지 않고 계속 출근을 시켰던 것이다. 결국 코로나19에 감염된 가정관리사는 병원에서 숨졌다.

또한 균이 옮을까 봐 수도꼭지도 못 만지게 하는 고객 집도 있다고 한다. 일을 하러 도착하자마자 고객이 수도꼭지를 틀어주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인데, 집안의 위생을 위하는 것이니 이해는 하면서도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라는 씁쓸함이 든다고 한다.

가정관리사 스스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을 쉰 경우도 많다. 학교와 어린이집 개학이 늦어지면서 사회적 돌봄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옴에 따라 여성들이 돌봄 휴가를 내고 집안일을 스스로 하게 되어 일을 쉬게 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가정관리사 스스로 손주를 돌보기 위해 일을 쉬기도 하여 실질적인 급여가 많이 줄었다.

'가정관리사'는 왜 직업이 아닌가 

가사노동자들은 소득이 감소한 현재, 모아두었던 보험 계약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기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각종 지원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아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 최대한도로 아끼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 코로나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는 고정적인 일자리와 급여가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 저평가 하고 무시했던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던 그 폐해가 이번 코로나 재난으로 확실히 드러났다. 코로나 재난지원 상황에도 사각지대로서의 여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19년 서울에서 진행한 제8회 국제가사노동자의날 기념 <존중과 인정을 위한 가사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한 가정관리사가 자신의 차별적인 노동환경을 토로하고 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가사노동자는 노동자다", "가사노동자도 건강하게 일 할 권리가 있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가사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2019년 서울에서 진행한 제8회 국제가사노동자의날 기념 <존중과 인정을 위한 가사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한 가정관리사가 자신의 차별적인 노동환경을 토로하고 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가사노동자는 노동자다", "가사노동자도 건강하게 일 할 권리가 있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가사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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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노동기구인 ILO는 2012년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가사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한 차례, 20대 국회에서도 3차례나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다. 과거와 달리 맞벌이 가구의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 등의 사회적 변화로 가사노동은 서비스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 만큼 이제 21대 국회에서는 '가사노동자법' 제정이 우선적으로 논의되어 요양보호사처럼 국가에서 가정관리사를 직업으로 인정함으로써 법안의 테두리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겠다.

* [상담] 코로나19 관련 여성 노동상담 :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tel.1670-1611(전국공통) /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담전화 tel. 1644-1884(전국공통)
* [참여] '코로나19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 https://bit.ly/2020womenworker

 

태그:#코로나19와여성노동자, #가정관리사, #가사노동자, #코로나19, #임금차별타파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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