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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었다. 5·18 민주묘지에는 느리고 깊은 노래들이 퍼지고 있었다. 두세 가족이 묘지를 돌보고 있었고 사방은 깨끗하고 고요했다. 분향하는 곳 앞에서 어찌할까 잠시 주춤했다. 누구나 와서 향을 피우고 꽃을 올릴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고 분향 방법도 안내되어 있었다. 향을 세 번 나누어 올리고 고인들을 추모했다.

내가 생각하는 5·18은 거리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명동이나 광화문 광장에 가면 길 양쪽으로 사진이 죽 늘어서 있었다. 칼로 총으로 구둣발로 사람들을 찌르고 쏘고 차는 아수라장 같은 모습들이 사진 속에서 생생했다.

막연했던, 소문으로 듣던 현장의 모습이었다. 5·18이 일어나고 10년쯤 지날 무렵이었다. 게릴라전을 방불케 하며 전시되던 사진들, 누군가 사진을 보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두려운 군부독재의 그늘이었다.

다시 몇 해가 지나 1997년에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고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렸다. 사건이 일어나고 무려 17년이 지나서였다. 거리에서의 게릴라 사진전은 사라졌고 당시의 수많은 폭력과 잔혹한 사건들이 공론의 장으로 나왔고 역사의 증거가 되었다. 동시에 5.18의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했다.

그러고도 다시 10년이 지나 2008년 만화로 된  5·18을 처음 만났다. 당시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다. 그날이 되면 하루의 수업은 5·18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 현장에서 그 참혹한 일을 겪지도 보지도 못했으나 아는 바를 기억이라도, 기억하게라도 해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감이 있었고 얘기할 때마다 가슴에서 맺힌 무언가가 치미는 느낌을 매번 느끼곤 했다.

그리고 소설로 영화로 수많은 5·18을 만났다. 5·18의 현실은 정제되거나 희석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상황을 만날 때마다 매번 처음인 듯 격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내가 특별히 아픈 역사에 예민해서, 범죄의 단죄라는 것에 단호해서는 아니었다. 아직도 수많은 사건들이 묻혀 있고 그날의 일은 진행 중이며 피해자는 엄연한데 가해자는 없기에 자연히 그러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5.18민주묘지 입구
▲ 5.18민주묘지 5.18민주묘지 입구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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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그러했던 것에 비해 5·18 민주 묘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광주라는 도시를 친근한 듯 자주 입에 올렸지만 첫 방문이었다. 뭔가 거대하면서도 황량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쓸쓸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비해, 직접 본 느낌은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복잡하고 좁고 여기저기 개발의 바람을 타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내가 사는 곳과 다름없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였다.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 건물도 들어왔던 이름의 무게에 비하면 여느 도시의 것처럼 평범했다.

광주에서 돌아와 관련 기사를 기웃거리던 중, 마침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5·18과 관련된 만화를 기획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_ 만화가 기억한 5.18'이란 타이틀로 5월 18일~5월 24일 부천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린다. 
 
만화가 기억한 5.18 기획전시 포스터(부천시청 1층 로비)
▲ 만화가 기억한 5.18 만화가 기억한 5.18 기획전시 포스터(부천시청 1층 로비)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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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관으로 5·18의 의의를 다시 새기고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사실적으로 또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재현한 5편의 만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만화의 사회적 역할을 제고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5·18 이후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읽어보고자 하였다'고 주최 측은 말한다.

5·18을 다룬 만화 작품으로 내가 아는 건 강풀 작가의 <26년>이 전부였다.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것처럼 나에게는 5·18의 교과서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다른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5.18 기획전시 오세영 작가의 <쏴!쏴!쏴!쏴! 탕> 포스터
▲ 5.18 기획전시 포스터 5.18 기획전시 오세영 작가의 <쏴!쏴!쏴!쏴! 탕> 포스터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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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작가의 <쏴!쏴!쏴!쏴! 탕>, 박건웅 작가의 <바람이 불 때>, 김성재·변기현 작가의 <망월>, 그리고 수사반장의 <김철수 씨 이야기>가 같이 전시되는 작품들이다. 작품에서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무고한 국민들을 빨갱이라며 짓밟고 살상하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을, 권력은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는 실상을 이야기한다.

2018년 12월까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5·18은 사망자 268명, 부상·구금자는 5331명, 행방불명자는 84명이지만, 실종자나 암매장 또는 소각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망월>의 한승미, 윤태구처럼 가족을 찾지 못해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광주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분명히 기억해야 하오. 당신의 욕심이 어떤 아픔과 슬픔을 남겼는지…"(<26년> 3권 283쪽)

국가의 명령에 의해 군인이 양민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무고한 국민이 국가의 폭력 앞에서 쓰러져 가는 참혹한 비극 속에서 상처는 오롯이 사람들의 몫이 된다.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외면했던 사람은 사람대로, 그리고 그날의 거짓 명령 이행을 부끄러워하는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사람들을 그 잔인한 시대로 몰아넣어 통곡의 오월을 만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대중들은 이미 관련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죠.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5·18 항쟁이 언제부터인가 듣기 싫은 불편한 진실이 되고 말았어요.… 5·18을 달력에서만 기억하는 기념일로 만든 거예요"(<망월 하권> 49쪽)

1980년 5월 18일, 벌써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멈춰버린 시간들이다. "현실로부터의 해방, 과거와 미래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쏴!쏴!쏴!쏴! 탕>) 위해서는그들의 삶의 무게를 나누어 져야 한다.
 
5.18 기획전시 <망월> 포스터
▲ 5.18 기획전시 포스터 5.18 기획전시 <망월> 포스터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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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획전시 <김철수씨 이야기>
▲ 5.18 기획전시 포스터 5.18 기획전시 <김철수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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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획전시 <바람이 불 때>
▲ 5.18기획전시 포스터 5.18 기획전시 <바람이 불 때>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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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그날의 광주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는 광주의 일을 알지 못한다. 들어도 의미를 모르는 역사는 쉽게 지워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다리고 이용하는지도 모른다.

작가 한강은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수상 소감에서 "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존엄하기에 인간에게 가해진 그날의 참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만화라서 그 무게가 가볍다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만화가 때론 사진보다 생생하다. 잘 기획된 전시가 많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태그:#5.18기획전시, #5.18민주묘지, #5.18민주화운동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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