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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만 이해되던 일이 홀연 가슴으로 내려와 심장을 강타할 때가 있다. 남의 죽음, 또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죽음은 가슴에서 10%로 나머지 90% 정도는 머리에서 이해되다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남의 죽음도, 나와 직접적인 관계 속에 있는 죽음도 언젠가는 기억에서조자 사라지겠지만 사라지는 기간과 고통의 강도는 전혀 다르다.

며칠 전 3년 키운 우리 집 강아지 봄이가 죽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다른 강아지들이 사는 만큼만 살아도 족히 15년은 살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 잘못 만나 삶의 질이 떨어져서는 안 되기에 싫어하는 양치질도 하루 한 번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닦아줬다. 아마 내 이를 그렇게 닦았다면 지금쯤 인플란트, 브리지 하나 없는 건강한 치아로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그러니까 봄이가 내 눈앞에서 발작을 일으킨 날은 남편과 봄이 나 이렇게 셋이서 여행을 떠난 날이었다. 일 년 열두 달 별 휴일이 없는 직업인 관계로 어쩌다 찾아온 여행에 부풀었다.

유난히 아빠 빠방(봄이는 이렇게 해야 알아들었다)을 좋아했던 봄이는 아빠 빠방을 타기 위해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갈 때면 거의 광분의 경지에 이르곤 했다. 그날은 형들은 내버려두고 셋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다른 강아지들이 사는 만큼만 살아도 족히 15년은 살 거라고 생각했다(자료사진).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다른 강아지들이 사는 만큼만 살아도 족히 15년은 살 거라고 생각했다(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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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둘째 날, 봄이는 주검이 되어 아빠 빠방에 올랐다. 누가 예상했을까! 사건은 때로 전혀 예측 못한 곳에서 슬픔을 산처럼 이고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여행을 떠난 이튿날 아침, 봄이가 갑자기 내 앞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순간이었다. 바로 전까지 두 발로 내게 안아달라고 내 등 뒤에서 기어오르려고 했던 봄이었다. 몸을 돌려 "봄이야 가자" 했는데 봄이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방이라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검색해 보니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1시간 7분 거리에 동물병원이 있었다. 병원을 가는 1시간 7분 동안 봄이의 발작은 계속됐다.

1시간 넘게 봄이의 발작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발작은 하는 봄이의 고통이 내 고통에 비할까마는 운전을 하는 남편과 나, 그 시간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병원에 도착만 하면 봄이가 발작을 멈추고 건강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만 봄이가 죽지 않고 버텨주길 빌고 또 빌었다. 병원에 도착해 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었다.

그때 봄이는 내 몸에 오줌과 똥을 이미 싼 상태였다.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봄이의 상태는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아침 10시 도착해서 오후 5시까지 봄이는 병원에 머물렀고... 결국 안락사시켰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아이를 보내기 싫다고 계속 그 고통을 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알게 된 거지만, 봄이는 뇌뿐만 아니라 폐도 기형이었다. 소형 말티즈였던 봄이는 작고 참 예뻤다. 유난히 작고 예쁜 개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때문에 작게 더 작게 만들기 위해 근친교배를 시킨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강아지들에게 열성이 많이 나타나고 소형 말티즈에게는 뇌와 심장의 기형이 종종 발견된다는 것을 의사가 말해주었다. 그때서야 처음 봄이를 데려왔을 때의 궁금증들이 퍼즐 맞춰지듯 맞춰졌다.

몸이 아파,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집에 혼자 있는 나를 생각해 남편이 강아지를 권했다. 입양, 파양 유기견,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던 때였다. 강아지는 애견센터에서만 사는 줄 알았다. 봄이가 유독 작았고 눈에 띄게 예뻤다. 첫눈에 반해 봄이를 샀다. 애견센터 주인이 말했다.

"하루에 세 번 종이컵으로 1/4정도의 사료를 먹어요."

웬걸, 봄이는 하루에 한 번, 종이컵으로 1/5 정도의 사료를 먹었다. 두 달이 넘은 봄이의 몸이 왜 그렇게 작았는지를 봄이를 보내고 나서야 깨닫는다. 추측하건대, 봄이는 새끼만을 낳는 불법공장에서 태어나 몸집을 불리지 않기 위해 죽지 않을 만큼의 적은 사료만을 먹고 살았던 것 같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가 만들어낸 가여운 아이였다.

아직도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봄이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보고 싶은 마음, 인간의 욕심과 이기가 아이를 아프게 했다는 미안함, 아픔이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울게 만든다.

이제는 소형견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의 욕심, 욕망이 다른 종에게 끼치는 악을 내 눈앞에서 목도한 후부터.

태그:#강아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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