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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추리소설학교에서 알게 된 임근희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봄비가 내린 5월 15일 망원동 한 카페에서 임 작가를 만났습니다. 임 작가는 2009년 어린이동산 중편 동화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1년 푸른문학상 공모에서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습니다.

동화 <내 친구는 외계인>, <양심을 배달합니다!>, <무조건 내 말이 맞아!>, <내 짝꿍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등을 지었습니다. 얼마 전 <위로의 초짜>(2020년 3월, 좋은책어린이)란 책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또! 복병수>(2020년 4월, 책읽는곰)라는 신간이 출간되었습니다.

신간 소개 이외에도 임 작가와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제가 본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뭔지 모르겠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임 작가의 이야기가 꿈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임근희 작가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대학 진학 시 작사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들려주세요.
"이런 저런 꿈들을 바꿔가며 꾸다가 고등학교 때 이후론 작사가가 되고 싶더라고요. 작사도 글쓰기니까 그걸 가르쳐 주는 과에 가면 도움이 되겠지 단순하게 생각하고 문예창작과에 지원하게 됐어요. 제가 지원한 학교는 예술 대학이어서 거기서 작곡가랄지, 가수랄지 좋은 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고요.

대학에 입학해서는 작사가가 꿈이라는 제 얘길 듣고 선배들이 '예음회'라는 동아리를 추천해줬어요. 내로라하는 유명가수들도 여럿 거쳐 갔던 교내에서 유명한 동아리인데, 거기 들어갈 수 있었더라면 제 운명이 바뀌었을까요? 패기 있게 노래 오디션을 봤습니다만, 똑 떨어졌어요. 그 뒤론 대학 생활의 자유를 만끽하며 지내느라 작사가란 꿈은 잊고 살게 됐어요. 시나 소설을 공부하면서 그쪽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요." 
   
신간 또 복병수에 사인하고 있는 임근희 작가
 신간 또 복병수에 사인하고 있는 임근희 작가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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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가의 길을 뒤로하고 전공인 시와 소설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군요. 
"대학에 다니면서 처음 한 학기 동안은 시창작 교수님의 매력에 빠져 잠깐 시인을 꿈꾸기도 했어요. 역량이 안 되는 것 같아 금세 포기했고요. 이후엔 소설가가 돼볼까 하고 나름 습작도 하고 신춘문예에 한두 번 응모하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이 길도 내 길이 아닌가보다 했죠.

졸업하고 나선 드라마작가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창작이란 게 무척 외로운 작업이잖아요. 여럿이 같이 하면 그 외로움이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드라마는 문학보단 협업으로 이루어 내는 일이라 생각했고(나중에 알고 보니, 외로운 길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내 작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대중적으로 알려질 수 있다는 것도 문학보다 장점이라고 여겼어요.

여의도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들어가 드라마를 공부했습니다. 전문반까지 수료한 뒤, 운 좋게 KBS 드라마국 내 기획반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어요. 뱅크요원으로 일하며 드라마화 할 만한 소설 등을 검토했어요. 그러다 2년쯤 뒤엔 드라마인턴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행운을 또 얻게 됐어요. 인턴작가는 1년간 계약하고 그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편씩 단막 드라마를 써내서 피디들과 합평을 진행하는데요. 제 인생에서 가장 고단하고 아팠던 시간이었어요.

매달 작품을 써내는 거 자체도 힘들 뿐더러 계속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 옆에서 작품이 채택되어 방송으로 입봉(등단)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낙오자가 되는 느낌에 날마다 자괴감에 빠져 지냈죠. 그 고통스럽던 시간을 보내고 드라마작가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 드라마 작가에도 도전했군요. 세상에는 정말 만만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을 것 같습니다. 작사가가 되려고 대학에 진학했고, 드라마 작가로 목표를 바꿨다가 지금은 동화작가로 살아가고 있는데, 동화를 쓰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나요?
"성과는 없이 꿈꿨다 포기하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더 이상 새롭게 꿈꾸는 거 말고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딱 정해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티브이 화면 하단에 'MBC 창작동화 공모' 안내가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됐어요. 이미 10회가 넘도록 이어진 공모였는데 저는 그제야 처음 봤어요. 동화 공모가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고요. 동화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었던 거죠. 그 처음 보게 된 공고가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신의 계시 같은 느낌이었어요. 뭔가 번쩍했거든요.

그 뒤로 인터넷을 통해 동화에 관한 여러 정보를 검색해 보고 공모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라, 어디 기관에 나가 동화 작법을 배울 만한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인터넷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을 수소문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메일을 통해 선생님과 기초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도움이 될 만한 동화책들을 찾아 읽으며 동화에 대한 감을 읽혔고 습작도 해 나갔어요. 시간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아이가 밤에 잠들고 나서부터 동 틀 때까지 매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진짜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동화 공부를 시작한 지 10개월쯤 되었을 때 '어린이동산 중편동화 공모'에 처음 응모한 동화가 덜컥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한편, 그간의 이런저런 글쓰기 경험들이 다 누적되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새삼, 제 과거의 시간들에 감사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계속 동화를 쓰며 동화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 어떤 계기가 있을 때 하는 공부가 정말 의미 있는 공부라는 것에는 저도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그 때가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배우고 싶은 욕망과 뭔가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이 더해져서 강한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동화 작가가 되는 데에 가장 영향을 준 작품과 인물이 있나요?
"글쎄요. 어떤 한 작품을, 한 인물을 딱 꼽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여러모로 참 부족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제 감성을 믿기 때문이거든요. 그 감성을 키워오는데 영향을 준 건 제가 읽었던 책 전부, 제가 직간접으로 겪은 인물들 전부가 되겠죠.

저는 20대 때 책을 가장 많이 읽었는데 주로 한국현대소설들이었어요. 아마도 그때 읽은 작품들이 지금의 제 문장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고 그 시절 봤던 숱한 드라마 대본들이 대사나 캐릭터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동화 작가 중에 첨으로 제 맘에 들어온 분은 유은실 작가였어요. 유은실 작가의 초기 단편집들을 보고 '동화가 이런 거라면 나도 써보고 싶다!' 하고 결정적으로 결심하게 됐으니까요."
 
임근희 작가의 신간 또 복병수
 임근희 작가의 신간 또 복병수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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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읽어봤는데, 주로 생활 속 이야기를 소재로 쓰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또! 복병수>도 일상을 소재로 했죠? 보통 아이인 듯 보통 아이 같지 않은 복병수란 주인공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경쟁이란 환경을 초월한 복병수의 행동이 특히 좋았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더불어 신간 <또! 복병수>에 대해서도 독자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주로 읽어온 책들이 그렇고 좋아하는 성향도 그쪽이다 보니, 제가 쓰는 작품들은 거의 생활사실동화예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쓰는 작가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작가란 모름지기 그 모든 것을 다 구사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고민이 깊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잘할 수 있는 걸 더 잘할 수 있도록,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맘먹었어요.

생활사실동화를 주로 쓰는 작가이다 보니,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복병수에 대해선, '보통의 아이들이 복병수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담아 만들어 낸 작품이에요. "뭣이 중헌디?"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인데요. 한마디로 복병수를 통해 그 얘길 하고 싶었어요.

복병수는 보통 사람들이 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전복시키거든요. 복병수를 통해 우리가 매달리는 그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저는 늘 어른들도 동화를 많이 읽었음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어른 독자들께도 어린이 독자들께도 복병수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동화작가 임근희가 신간 동화 또 복병수를 들고 찍은 모습
 동화작가 임근희가 신간 동화 또 복병수를 들고 찍은 모습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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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가, 소설가, 드라마작가 그리고 동화작가. 글쓰기라는 큰 틀 안에서 목표가 바뀐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들이 최종적으로 동화를 쓰는 데에 도움이 된 것 같고요. 혹시 꿈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나요?
"자신에게 관심부터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 감정을 세심하게 잘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등 스스로를 잘 관찰하고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죠. 이게 습관이 되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도 영영 못하는 것인데, 지금부터라도 자기와의 대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고 그런 시간들을 반복적으로 가지면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떠오르지 않을까요? 대화하면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책망하진 말고요. 내 분신이다 생각하고 애정을 갖고 대화하시길요"

미리 정해진 삶이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꿈과 목표가 달라질 수도 있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요. 계획이나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이루지 못하면 실패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근희 작가를 보면 실패가 아닌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그 과정에서 불태운 열정과 쌓은 경험들이 동화 작가가 되는데 자양분이 되었으니까요. 이번에 나온 신간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태그:#임근희, #동화작가 임근희, #또 복병수, #임근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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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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