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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의 작가 조정진. 그는 38년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60살에 퇴직하고 시급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의 작가 조정진. 그는 38년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60살에 퇴직하고 시급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 후마니타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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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을 시작할 때 선임자가 해준 첫 번째 충고는 주민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투면 항상 졌다. 내가 옳으면 주민은 항상 더 옳았다." - <임계장 이야기> 69쪽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쓴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63)씨는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의 죽음을 접하고 엉엉 울었다. 조 작가 또한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VIP 부인의 차량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화단에 호스가 아닌 양동이로 물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적이 있다. 법은 멀고 주민 항의로부터 이어지는 해고는 가까웠다. 여기에는 '고다자'(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인 아파트 경비원의 취약한 노동 구조가 있었다.

"나도 한 아파트 주민이 수돗물을 낭비했다면서 무릎 꿇고 빌라고 시킬 때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최희석씨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조정진 작가는 1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절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주민의 갑질에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희석씨를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저 억울해요" 극단 선택 경비원에 아파트 주민 애도 물결)

"20일 동안 아무도 그를 구하지 못했다"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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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희석씨를 향한 애도 이후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처우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주민의 갑질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구조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조정진 작가는 "'아파트 권력'이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 작가는 "절반 넘는 국민이 아파트에 살고 특히 힘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경우 대부분 아파트에 산다, 정치 권력이 아파트를 쉽게 건드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결백을 밝혀달라'는 최희석씨의 유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최희석씨가 사회를 향해 던진 메시지"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사회가 이 유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폭력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갑질에 대해 무관심하고 관용적인 사회적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희석씨는 20일 동안 죽음에 노출됐다. 주민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았던 사람인데 20일 동안 고통을 당했음에도 아무도 그를 구하지 못했다. 이건 사회적 타살이 맞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면 가해자는 벌금 정도를 물겠지만 이 사람은 직장을 못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누가 손해인가."

"경비원=감시·단속적 근로자라는 규정 변해야"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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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작가는 "경비원에게 사회적·법적 안전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주택관리법에 갑질 금지를 하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위반해도 처벌 조항이 없으니 훈시규정 밖에 되지 않는다"며 유명무실한 법을 먼저 짚었다.

이어 "경비업법에 의하면 경비원은 시설 잡무를 시키면 안 된다"라며 "그런데 막상 이를 단속하려고 아파트에 가보면 어마어마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경비원 잡무를 단속하는 순간 아파트는 모든 일들이 정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일 경비원에게 잡무를 금지한다면 관리비를 더 많이 들여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채용해야 한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경비업법을 적용할 경우 당장 나이 든 경비원의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는 지금 당장 경비원의 잡무를 금하게 하는 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조 작가는 "그보다는 경비원을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간주하는 해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란, 근로가 간헐적으로 이뤄져 대기 시간이 많은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이르는 말이다. 감시·단속적 근로자가 되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휴게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조 작가는 아파트 경비원을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아파트 경비원 숫자를 줄여서 경비원들은 눈코뜰새가 없다, 당장 내가 일했던 아파트도 7명이 하던 일을 1명이 하게 됐다"며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가 아파트 경비원을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간주하는 제한을 풀면 경비원들은 근로기준법 안에서 주휴수당과 야간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답해야 할 것"

조 작가는 "선량한 사람들은 내 책을 볼 필요가 없는데 책을 읽고 반성하겠다고 말한다,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내 책을 보지 않는다"면서 "정치인들이 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조 작가는 "김부겸 의원이 책을 제대로 읽어줬더라"라면서 "21대 국회에서 일할 사람들 몇몇에게 책을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다, 언론에서 최희석씨 보도를 해주니까 이제 그 사람들이 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책 <임계장 이야기> 앞표지
 책 <임계장 이야기> 앞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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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조정진 (지은이), 후마니타스(2020)


태그:#임계장이야기, #아파트경비원, #조정진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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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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