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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6 사건 직후 박정희 정권에서 각종 비행을 일삼았던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씨(1912~1994)를 전방 군부대에 격리 조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전 전 대통령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자금 9억5천만원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며, 박 전 대통령이 이 돈 가운데 3억5천만원을 수사비에 보태달라며 돌려줬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사실은 30일 연합뉴스가 단독 입수한 『전두환 회고록』 3권 '황야에 서다'에서 밝혀졌다.

사진은 지난 1977년 3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경로병원 개원식에 참석한 최태민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당시 영애이던 박근혜 양.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6 사건 직후 박정희 정권에서 각종 비행을 일삼았던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씨(1912~1994)를 전방 군부대에 격리 조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전 전 대통령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자금 9억5천만원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며, 박 전 대통령이 이 돈 가운데 3억5천만원을 수사비에 보태달라며 돌려줬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사실은 30일 연합뉴스가 단독 입수한 『전두환 회고록』 3권 "황야에 서다"에서 밝혀졌다. 사진은 지난 1977년 3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경로병원 개원식에 참석한 최태민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당시 영애이던 박근혜 양.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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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집권 말기에 이르러 가족에 대한 통제력도 크게 상실하고 있었다.

김재규의 결단에 일조를 한 사건이 있었다. 딸 근혜에 대한 불미스런 얘기는 주변에 널리 알려졌다. 정보부가 취합한 내용을 김재규가 보고했으나 대통령은 오히려 딸을 감쌌다.

정에 흔들리는 박정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최태민(崔太敏)이라는 괴목사의 등장이다. 큰딸 근혜 양에게 접근한 최 목사는 순경출신으로 한때는 불가에 입문했다가 목사로 변신한 미스터리의 인물이었다. 그는 1975년 구국선교단ㆍ구국봉사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자신은 총재, 근혜 양은 명예총재로 앉혀 놓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말썽을 빚었다.

말썽이 끊이지 않자 1977년 9월에는 대통령이 최 목사의 비리를 수사해 온 김 정보부장과 최 목사를 직접 대면시켜 놓고 친국(임금이 직접 심문하는 일)까지 했으나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친국 며칠 후 박 대통령은 선우련 비서관에게 "근혜 곁에서 최 목사를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근혜 양이 최 목사를 옹호하고 나서자 선우 비서관은 다시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제서야 대통령은 심증을 털어놓았다.

"내가 특명을 내리고도……, 근혜가 엄마도 없는데 일까지 중단시켜서 가엾기도 하고 나도 마음이 아팠고……."

결국 그렇게 최 목사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10ㆍ26 이후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최씨를 강제로 강원도로 쫓아낼 때까지 그의 활동은 계속됐었다. (주석 12)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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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통령에서 탄핵 당할 때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이 바로 최태민의 딸이다. 박정희가 그때 최태민을 사법처리했으면 '딸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김재규는 박정희 가족의 비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진언하지 못한 것을 샅샅히 보고하였다. 아들 지만의 문제도 포함되었다. 항소심 선고가 있는 1980년 1월 28일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본인이 결행한 10ㆍ26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이나 유신 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 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최태민(오른쪽) 총재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최태민(오른쪽) 총재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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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한 큰 영애의 문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 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당시 서울 고검 검사로 정보부에 파견 근무를 했고, 후에 내무부장관을 지냄)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정본부에서 한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1977년 육사에 재학중이던 박지만 생도를 박 대통령 가족이 면회하던 날 기념사진.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정승화 장군(오른쪽), 경호실 작전차장보였던 전두환 장군(왼쪽에서 세 번째), 차지철 경호실장(박 대통령 오른쪽) 등이 눈길을 끈다
 1977년 육사에 재학중이던 박지만 생도를 박 대통령 가족이 면회하던 날 기념사진.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정승화 장군(오른쪽), 경호실 작전차장보였던 전두환 장군(왼쪽에서 세 번째), 차지철 경호실장(박 대통령 오른쪽) 등이 눈길을 끈다
ⓒ 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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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군의 문제

육군사관학교는 전통적으로 honor system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사에 입학한 지만 군은 2학년 때부터 서울 시내에 외출하여 여의도 반도호텔 등지에서 육사 생도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오입을 하고 다녔읍니다. 그래서 본인이 박 대통령에게 육사의 명예나 본인의 장래를 위하여 다른 학교에 전학시키거나 외국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간곡하게 건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건의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본인은 그의 강한 이기심과 집권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녀들의 문제이지만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매하게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이런 기회에서나마 밝혀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석 13)


주석
12> 앞의 책, 373~374쪽.
13> 앞의 책, 373~37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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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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