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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눈도 천천히 뜨고 잠자리도 천천히 정리한다. 그래도 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게 되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가 있다. 주중에 아침을 먹던 시간이면 배속에서는 반응이 온다. 잠깐의 공복을 참고 즐긴다.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 즈음, 아침 겸 점심으로 우리만의 맛집으로 향한다.
 
생선구이 게장 정식
▲ 경기도 맛집 생선구이 게장 정식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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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재촉하는 속을 달래 가며 식당에 도착하면 10시 30분경. 손님들이 이미 몇 테이블 지나간 상태다. 빠르게 주문하고 나서 기다림은 느긋하게 먹는 것은 천천히 남김없이 식사를 마친다. 돌아오는 길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TV의 백색 소음과 함께 나른한 한낮의 오수를 즐기고 나면 저녁때가 가까워진다.

다음 주말도 변함없이 일주일 전의 시간표를 반복한다. 지난 주보다 집에서 가까운 식당이다. 처음 찾는 곳이지만 이른 시간에도 빈 테이블이 없다. 먹어 보지 않았지만 음식 맛에 확신을 갖는다. 직접 띄운 청국장을 끓여 비벼 먹을 수 있도록 식사가 준비된다. 달걀찜과 보쌈까지 나오는 이곳은 첫 방문이지만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는 곳이다. 마음속에 저장하고 시장과 마트를 들러 집에 돌아오면 지난주와 같이 맘껏 게으른 하루가 반복된다.
 
청국장 정식
▲ 경기도 맛집 청국장 정식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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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간 주말에 같은 생활 패턴을 반복했다. 늦은 하루를 시작하고 맛집에 다녀오다 장을 보고, 휴식 후 다시 저녁을 맞는 일상. 문득, "이렇게 사는 거 참 좋다!"는 감상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모르겠지만 밥상을 차리기 위해 사는 것 같았던 최근 몇 달이다. 삼식이를 거느린 주부의 자리로부터의 일탈은 낯설면서도 반가웠고 어색하면서도 계속 즐기고 싶은 것이었다.
 
한정식 한상
▲ 경기도 맛집 한정식 한상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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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콘전
▲ 강화도 맛집 야콘전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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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결혼해서 생애 처음으로 내 손으로 가족의 끼니를 마련했던 때가 생각났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기쁨이라고, 설렘이라고 하는 말에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장에 나가 자잘한 것들을 사 왔고, 화려한 밥상은 아니지만 가족의 고단함을 녹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수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움직여 밥상을 차렸고 맛있게 먹어주길 기대하며 마주 앉았다.

그때처럼 종일 수고하지도, 밥상 앞에서 과한 반응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몇 년간 두 아이들 모두 집을 나가 있어서 하루 한 끼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았고, 어쩌다 한 끼 열심히 부지런한 주부의 일상을 흉내내며 지나온 시간도 길었다.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 매일 밥상을 챙기다 보니, 결국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세끼를 먹자고 사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맞춰 세끼를 챙기고 나면 어김없이 하루 해가 저물었다. 모든 생활이 세끼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것이 거듭되니 구속처럼 힘들었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해묵은 가치가 나를 지배했다. 마음을 바꿔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나름의 지혜도 발휘했다. 그러던 중에 벗어난 주말의 일탈이었다. 다 큰 애들이 알아서 먹겠지, 생각하며 집을 나섰고 세 끼의 틀에서 벗어나니, 그 하루의 외출이 삶을 살만해지게 만들었다.

오래전, 엄마의 집에는 항상 밥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밥상은 원래 있어야 할 것처럼 차려져 있었고 밥상을 둘러싸고 가족들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당시의 밥상은 내게는 중요한 일상 사이에 걸치는 것이었다. 당연히 차리는 수고로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먹어야 할 때에는 언제나 밥상이 차려져 있었기에 밥상이 내게 오기까지의 내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땐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언젠가부터 밥상이 버거워지며 이전에 값없이 받았던 무수한 밥상과 그 수고를 떠올리게 되었다. 분명 엄마의 밥상도 눈물겹도록 힘들었을 텐데, 그땐 그 내력을 헤아리지 못했던 자식이었다.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내력을 모른 채 불행한 생장을 한 먹거리를 먹는 것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작업일 뿐, 먹는 행위에서 육체적 만족감과 더불어 영혼의 교감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 없다면 배부르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공선옥,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요즈음 맛집이든 아니든 주말의 행복한 한 끼를 위해 식당에 가면 이전에는 보지 않던 것을 본다. 손님을 받기 위해 넓은 식당의 테이블 세팅부터, 공수된 재료들이 그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무수한 손들이 거치는 과정, 양념들이 섞이고 맛을 조리하는 손길, 주방의 모든 상황을 만들어내는 수고, 긴 조리 시간을 견뎌내는 인내 등도 떠올린다.
 
잔치국수
▲ 경기도 맛집 잔치국수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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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
▲ 경기도 맛집 비빔국수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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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을 찾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맛집이 아니어도 만족스럽다. 잘 차린 밥상에 대한 기준도 바뀌었다. 뜨끈한 국물에 잘 삶아진 국수와 김치도 최고의 성찬이 된다. 반찬의 가짓수가 적어도 복잡하고 화려한 요리가 아니어도 족하다. 어느 곳엘 가도 나름의 만족이 있다.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을 위한 특별한 식당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 맛있게 먹으면 그곳이 특별한 나의 맛집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마다 새로운 맛집을 찾는다.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의 내력을 살피며 그 만족스러운 행복을 채운다. 코로나 시대에 행복한 일탈이 만들어 주는 완벽한 하루다.

태그:#동네맛집즐기기, #하루의일탈, #음식의 내력,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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