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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 사마에게 >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자말]
영화 <사마에게>를 보고 나오는데 몸이 덜덜 떨렸다. 너무 울어서. 바싹 탈수된 빨래가 된 기분이었는데, 이 기분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만들었다. 감독의 가족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영화가 미처 말해주지 못한 정보가 무엇일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보게끔 소개하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영화 < 사마에게, For Sama > (2019), 다큐멘터리, 96분, 영국
 영화 < 사마에게, For Sama > (2019), 다큐멘터리, 96분, 영국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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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영업 시작

<사마에게>는 감독 와드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그의 부모는 그를 두고 고집 세고 무모하다 말했다. 그는 '너'를 낳고 이를 실감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천진한 아기의 얼굴, '사마(Sama)'다. 사마의 사랑스러움에 미소 짓는 것도 잠시, 곧 폭격의 소음이 덮쳐온다.

"또 폭격기?", "아니, 탱크" 점심 메뉴를 묻고 답하는 것처럼 오가는 말투가 덤덤하다. 한데 모인 사람들은 위기가 해소되기를 기다린다. 포탄의 소음이 잦아들자 사람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 시작한다. 이것이 알레포의 일상이다. 일상이 전쟁인 곳. 이곳에서 '너'를 낳은 것에 대해 감독은 용서를 구한다.
  
사마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모든 것의 시작에는, 우리에게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민주화 투쟁이 있었다. 당시 알레포 대학의 학생이었던 와드도 여기 참여했다. 활동가이자 언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카메라를 들었다. 고문으로 훼손된 숱한 시체는 정부의 부패를 입증했고, 소셜미디어로 공유되며 분노는 번져갔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투쟁은 축제가 됐다. 아마 그때는 몰랐으리라. 자유를 위한 투쟁이 이토록 길고 험난할 것을.

투쟁이 장기화될 기색이 보이자 일부는 시리아를 떠나기로 한다. 의사 함자의 전 부인도 시리아를 떠났다. 함자는 남는다. 와드도 남았다. 이들의 이웃도 남았다. 남은 사람들은 장기화된 투쟁을 삶으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다(출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의사 함자와 결혼한 와드는 병원에서 생활하며 기록을 이어간다. 상황은 계속 심각해져 갔다. 매일 같이 떨어지는 미사일은 민가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병원마저 과녁으로 삼았다. 혁명을 꿈꾸며 알레포에 남은 사람들은 고립된다. 사라지는 친구들, 바닥나는 식료품, 불안한 일상과 꺼져가는 희망.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의 희생이다. 너무 많은 아이가 다치고 죽는다. 그 처절함에 고개 돌리고 싶을 때가 여러 번. 그러나 그때마다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들도 발견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 문단은 영화 보기 전에는 읽지 않기를 추천한다.) 폭격으로 다친 산모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술을 집도하고, 그렇게 꺼내진 숨결 없는 회백의 신생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사들. 와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촬영에 집중한다. 가망 없어 보이는 아기에게 계속되는 손길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지치고 괴로워 눈 돌리고 싶을 때쯤, 기적이 일어난다. 그때의 벅찬 감정을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이미지
 영화 <사마에게> 스틸이미지
ⓒ (주)엣나잇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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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으며 일상을 버텨가는 강인함도 감동적이다. 도시 봉쇄로 과일과 채소는 구경조차 어려운 상황. 이웃 가족의 남편은 아내를 위해 간신히 감 하나를 구해오고, 아내는 눈물 고일 정도로 행복해한다. 괜히 머쓱해진 남편은 "누가 보면 꽃이라도 준 줄 알겠"다며 농을 던져 모두를 웃긴다. 그것은 사랑.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기 위해 던지는 농담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런 이웃이 있었기에 전쟁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도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그러니까 혹시 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깨주시길. <사마에게>는 충격과 감동으로 가득한 다큐멘터리 영화고, 끊임없이 뇌를 자극한다.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든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교환하고 싶게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영화를 본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마침 '왓챠플레이'에서 4월 3주 차부터 <사마에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보고 오셨다고요?

이런 고민을 나누고 싶다. 나는 종종 '퓰리처 사진'으로 대표되는 비극적 기록사진이 껄끄러웠다. 내가 그 사진의 주인공이라면, 경황없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 몸과 얼굴이 타인에게 포획되어 세계인들에게 전시되고 역사에 남는 일이 싫을 것 같아서다. <사마에게>를 볼 때도 같은 결의 감정을 느꼈다. 이것은 창작자로서의 고민과도 닿아있다. 이렇게나 생생한 타인의 고통 앞에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밀어도 괜찮을까?

감독이 공동체의 내부자일 때는 윤리적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로운 걸까? 이와 같은 시선을 감독도 예상했는지 "지금 (이 상황에도) 촬영하는 것이냐"는 아이 잃은 엄마의 절규를 영화에 담으며 고민을 드러냈다. 놀라운 것은 그 절규 앞에서 카메라가 멈추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는 사실. 가려진 진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단단한 목적의식이 있기에 가능했을까?
  
두 번째 고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마'는 아랍어로 '하늘'을 뜻한다고 한다. 폭격기와 자욱한 연기가 없는, 평화롭게 맑은 하늘을 아이에게 선사해주고 싶어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시리아를 포함한 분쟁 지역 아동들에게는 아직도 허락되지 않은 현실이다. 이에 안타까움만 느끼고 끝나면 안 될 것 같아 소액이지만 유엔난민기구 시리아 긴급구호 캠페인에 일시후원 했다. 꼭 주머니를 털지 않아도, 열린 태도만으로도 도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까지 당도한 난민에게 좀 더 포용적 태도를 가진다면, 그로써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된다면.
  
물론 우리의 하늘도 지켜야겠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전쟁불사론을 쉽게 말한 언론인과 정치인에게 권력 한 톨 주지 않기. 독자들도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서윤 님은 <불만의 품격>을 쓰고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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