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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정치는 2020년 21대 총선으로 사상 유래 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원내 과반을 차지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보수정치는 대체재가 존재했다. 유력한 대권주자가 둘이나 존재했고 쇄신을 외치는 젊은 정치인들도 존재했으며 자신들이 어떤 집단인지에 대한 정체성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한국 보수 정치 세력 맞이한 위기의 심각성은 보수정치가 내부적으로 대체재마저 부재한다는 지점에 있다. 보수정치가 어디서부터 쇄신해야 하는지 엄두조차 안 날 정도로 지금의 보수 정치는 몰락했다.

보수정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진보의 경우 복지라는 개념과 단어와 직결되는 점이 있지만 지금의 보수는 떠오르는 개념이 없다. 과거처럼 반공이나 성장 절대주의 그 생명력을 다했기에 이를 다시 소환할 수도 없다. 결국 한국 보수정치가 당장 답을 해야할 첫 질문은 가장 기초적인 질문, '보수란 무엇인가'이다.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러셀 커크, 2019, 지식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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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러셀 커크, 2019, 지식노마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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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시작에 도움을 줄 저서가 존재한다. 바로 러셀 커크의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가 그 책이다. 러셀 커크는 우리에게 <보수의 정신>의 저자로 익숙한 학자이다.

러셀 커크의 경우 에드먼드 버크라는 영국 정치철학자를 보수주의 이념의 정수로 재개념화 하면서 20세기 보수주의 정치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짧고 간명하게 보수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정립한다.

보수주의의 10가지 정수

저자는 근대 보수주의의 시작을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세력의 파괴적 행동을 비판한 세력을 그 시작으로 본다. 프랑스 혁명 세력이 인류가 보존해야 할 숭고한 가치들을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세력의 중심에는 에드먼드 버크가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버크의 사상 속에서 정치사회화 된 이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을 건설하였고 이들은 미국이라는 성공적인 국가를 만들었음을 주장한다. 보수주의적 가치를 유지해 왔기에 미국이라는 국가는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보수주의의 정수를 10가지로 소개한다.

I. 인간과 국가는 개별 인간을 넘어선 지혜, 달리 말하면 신의 정의에 의해 지배된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의 본성과 시민 질서를 제멋대로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

II. 사회적 다양성을 존중하여야 하며 절대적 평등과 획일화를 거부해야 한다.

III. 정의란 개인들의 능력과 성실성에 따르는 정당한 몫의 분배이다.

IV. 개인의 자유는 재산과 분리할 수 없다. 재산이 없다면 모든 개인은 정부의 호혜에만 매달리게 된다.

V. 권력 집중화는 사회적 퇴락이다. 권력은 견제되어야 하고 분권화 되어 있어야 한다.

VI. 인류는 이틀 전에 생겨나지 않았다. 과거의 지헤는 분명히 배울 점이 존재한다.

VII. 근대 사회는 획일화 되고, 권력이 집중된 집산주의가 아니라 공공성에 기반한 진정한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VIII. 각 정치 체제들은 각기 특성을 지니며 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IX.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다. 정치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허구이다.

X. 변화와 개혁은 같은 것이 아니다. 혁신은 파괴적일 수도 있다. 천천히 이루워지는 변화는 사회를 보존하는 수단이다. 인위적이고 허구인 변화를 강제로 추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보수주의의 정수는 냉전시대라는 당시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해야 한다.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주장 아래 중앙집권화와 개인의 자유, 재산권을 강탈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해 자본주의 진영도 비판을 하기 위한 이념적 토대가 필요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러셀 커크, 2019, 지식노마드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러셀 커크, 2019, 지식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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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의 각론. 도덕적 개인의 자유, 자발적 공동체, 영구불변한 가치

저자는 보수주의에 대한 편견과 허황된 비판을 반박하고 보수주의 개념을 재정립 하기 위해 종교, 양심, 개인의 독립성, 공동체, 공정한 정부, 사유재산, 권력, 교육, 영원불변과 변화, 공화국이라는 보수주의의 핵심 개념들에 대한 개념화를 시도한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개인들은 신의 의지 앞에서 완전해질 수 없으나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들은 개별자로서 존재하며 각기 탁월함을 가지고 있고,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자유로운 사회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신의 사유재산을 최대화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들은 가족의 전인격적 교육 속에서 성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위와 같은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했을 때 가장 훌륭한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를 강제하고, 중앙에 권력을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는 집산주의적 국가에 저항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보수주의는 이상적 세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전제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에 많은 결점이 있음을 알지만 긍정적인 시선으로 현재 사회가 주는 장점을 활용해야 함을 주장한다.
 
"보수주의자는 기존에 수립된 이해나 관례와 날카롭게 단절하는 변화라면 그 어떤 것이든 위험하다고 믿는다. 또한 그는 변화나 진정한 혜택을 달성하려면 주제넘은 중앙정부의 권위로 발동되는 칙령이 아닌, 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자발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147)

즉 저자는 현재의 사회는 영원불편하는 인간 본성이 쌓아온 역사 위에서 만들어진 구조이기에 이는 분명히 인류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신중하게 지켜야 하는 게 보수주의 국가의 핵심이며 이를 지켜줄 수 있는 정치체제를 소개한다.

자유롭고 신중한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국가, 즉 공화국이 그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번영 역시 공화국이라는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저자는 주장한다.

한국적 보수주의 정립의 필요성

저자는 토크빌이나 퍼트넘과 같은 정치철학자들이 이야기 한 미국에서 특화된 자발적 지역공동체를 강조한다. 이를 기반으로 저자는 미국 사회가 갖는 영원불멸한 가치와 이것이 만든 번영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인 저자는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지켜야할 가치있는 전통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미국적 특성이다. 이제는 한국 보수주의 세력도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적 보수주의는 어떤 한국적 전통을 제시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며, 이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이제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게 보수정치 재건의 첫 과제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 개인, 가족, 사회, 역사에 대한 보수의 철학

러셀 커크 (지은이), 이재학 (옮긴이), 지식노마드(2019)


태그:#러셀커크, #보수주의, #보수, #보수정치, #미래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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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사회복지학 학사 졸업. 사회학 석사 졸업. 사회학 박사 수료. 현직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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