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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 멕시코 콜리마주립대 교수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리포트'를 전북대안언론 참소리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동시 연재합니다. ☞ 참소리 페이지에서 보기 http://cham-sori.net/opinion/44841[편집자말]
 
 2019년 1월 4일 한 여성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 사이의 국경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19년 1월 4일 한 여성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 사이의 국경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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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가 있다.

누구라도 걸어 두 도시 사이를 오고 갈 수 있을 만큼 서로 마주 닿아 있지만, 두 곳의 차이는 아마도 천국과 지옥 정도일 것이라고, 그 두 곳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흔히 말한다. 아무렴 서로 맞닿은 두 곳 중 한 곳이 천국이고 또 다른 한 곳이 지옥이라면, 그만한 사람들과 차량들의 왕래가 있을 리 만무하겠으나, 여러 정황상 그 차이는 충분히 천국과 지옥 사이라 이를 만하다.

천국이라 불리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라는 도시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라 하니, 가히 천국이라 불릴 만하겠다. 더욱이 장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아래 붙은 멕시코의 도시 띠후아나와 비교된다면, 그 누구라도 그곳이 천국이라는 사실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샌디에이고 바로 아래 붙은 띠후아나가 지옥으로 등극하는 것 또한 자동으로 정해진 수순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곳 사이의 왕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국경 도시들 중 가장 활발하다. 다만, 천국 사람들은 언제라도 잠시 지옥으로 내려가 그곳 나름의 즐길거리를 찾아 잠깐의 짜릿함을 충분히 향유하고 올 수 있는 반면, 지옥 쪽의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어쩌면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다.

천국에서 지옥 가기, 지옥에서 천국 가기 
 
 샌디에고와 띠후아나를 가르는 국경 바로 아랫쪽, 이주자와 추방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입구.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올라온 이주자들이 무료 급식을 위해 줄을 선 곳에 SAN DIEGO(샌 디에이고)라고 적힌 교통 표지판이 슬프고 아이러니하다.
 샌디에이고와 띠후아나를 가르는 국경 바로 아랫쪽, 이주자와 추방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입구.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올라온 이주자들이 무료 급식을 위해 줄을 선 곳에 SAN DIEGO(샌 디에이고)라고 적힌 교통 표지판이 슬프고 아이러니하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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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천국에서 지옥으로 살짝 내려오는 여정을 보자. 도시의 남쪽 끝에 이르러 별도의 출국 수속 없이 멕시코(Mexico)라 적힌 방향을 따라 긴 터널을 빠져나오다 보면, 멕시코 이민국에 닿게 된다.

아마도, 누구라도 처음 이곳에 닿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칙칙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낮에는 제대로 채광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물 구조 때문일 것이고, 해가 진 이후로는 충분치 못한 실내 조명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이민국 직원들의 카키색 제복과 이민국 사무소 안팎의 낡은 시설 또한 멕시코에서 첫인상으로 느끼는 그 칙칙함에 한 몫 할 것이다.

그나마 낮이라면 괜찮겠으나, 밤이라면 멕시코 이민국을 빠져나오면서 갑자기 마주하는 어두움에 사뭇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뒤에 두고 온 자신들의 도시에 비해 현저히 어둡다. 바로 옆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정도다. 그러니 혹 해가 진 이후로 멕시코 땅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면 그곳이 낯선 곳이라는 느낌보다도 매우 어두운 곳이라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더해지는 당혹감은 멕시코 입국 심사를 받고 이민국 건물을 나서는 순간, 저 위쪽 천국의 언어일 뿐 아니라, 이 세상 어디든 어지간하면 통하는 영어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돈, 천국의 달러도 당장 '페소'로 바꾸지 않는다면, 쓸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된다.

그 와중에 영어 간판을 단 환전소는 당최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이곳에 닿기 전 어지간한 마음의 준비가 없었더라면 상당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겨우 2~3분을 걸어 선 하나를 넘어왔을 뿐인데, 말과 글과 돈마저도 전혀 다른 코드로 전환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일단, 멕시코로 넘어오긴 하였으나 당장 어떤 안내를 기대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카오스와 같은 곳에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많은 택시기사들이 먼저 흥정을 하며 다가올 것이다. 물론 그들이 부르는 가격은, 멕시코인들에게 부를 수 있는 가격의 최소 서너 배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을 터이니 적당히 그들을 피해 걷다 보면, 그제서야 안내판이 나온다. 그들이 즐기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이 있는 다운타운에 이르는 안내다. 다만, 기대는 금물. 오직 '붉은 지역(Zona Roja)'이라고 적힌 표지판에 화살표 하나가 전부다.

그 화살표를 따라가면, 띠후아나 다운타운 '혁명의 거리'에 이르게 된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굳이 지옥의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저, 살짝 내려와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기고 다시 그들의 천국으로 돌아갈 뿐.

'천국'에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도시
 
 띠후아나 다운타운 입구 어느 약국의 선전판.  항생제, 비아그라, 발기부전 치료제에 대한 광고를 하고 있다.
 띠후아나 다운타운 입구 어느 약국의 선전판. 항생제, 비아그라, 발기부전 치료제에 대한 광고를 하고 있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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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선 하나를 넘어왔을 뿐인데, 그들이 사는 천국에서라면 불가능했을 일들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천국을 천국답게 유지하기 위해 금지된 행위들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어쩌면 그 시초는 20세기 초 미국에 금주법 시행과 함께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 캘리포니아 남쪽 지역 미국인들이 술을 찾아 이곳 띠후아나까지 내려왔던 데서 찾을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술과 매춘으로 대표되었던 띠후아나의 다운타운에서는 여전히 '관용의 구역(Zona de Tolerancia)'이 존재하고, 여전히 매춘이 허락된다.

그뿐이겠는가?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도, 이곳에서는 가벼운 쇼핑 정도로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 단연 으뜸은, 비아그라다.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유난히 많은 약국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더 선정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비아그라 광고판을 앞에 둔 채 고객들을 유인한다.

띠후아나 다운타운 메인스트리트인 '혁명의 거리(Av. Revolución)'에서 선정적 비아그라 광고는 절정에 달한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이곳에서도 통하는 모양인지, 다운타운 '관용의 구역' 혁명의 거리 양 옆으로 즐비한 식당에서도 어김없이 '비아그라 수프' 혹은 '비아그라 샐러드' 등과 같은 메뉴를 내놓고 북쪽에서 내려온 이들을 호객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의료 서비스와 값싼 외식 비용도 천국에 사는 그들이 잠시 이곳 띠후아나에 내려오는 이유다. 특히 달러 대비 페소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최근 몇 년 사이라면, 그들이 이곳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은 더욱 늘어나는 셈이기에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곳 띠후아나야말로 진정한 천국인지 모를 일이다.

천국인 미국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잠시 지옥인 멕시코로 내려오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반면, 그 반대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올라가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물론 합법적인 서류와 절차를 갖춘다면 그곳이 아무리 천당이라 할지라도 가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만, 문제는 서류와 절차를 합법적으로 갖추기가 많은 이들에게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차라리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에 더 가까운 일이다.

물론, 돈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코요테' 혹은 '닭장수'라 불리는 이주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미국의 어느 곳이라도 서류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닿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한다(관련기사: 100달러와 피임약, 오늘 나는 '죽음의 열차'를 탑니다).

다만, 불과 20여 년 전 1천~2천 불 수준이었던 월경 비용이 최근 최소 3만 불 그리고 상황에 따라 4만~5만 불까지 오른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이제는 이주 브로커를 통한 잠입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된 셈이다. 아마도 이주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할 그 정도의 돈이 있다면, 이들이 굳이 자신들이 나고 자란 터전을 두고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으로의 입국이 늘 지금과 같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분보다는, '이웃'이라는 구분이 적당했던 시절이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사실, 바로 지난 세기 후반까지도 오늘 날 천국과 지옥이라 불리는 샌디에이고와 띠후아나를 가르는 국경의 감시가 그리 촘촘하지 않았다. 은밀하게 그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물론 국경이 존재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아니었다.

코요테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합리적'일 만큼의 수준이었고 굳이 코요테를 고용하지 않는다 해도 운에 기대거나 혹은 신의 가호에 기대거나, 둘 중 하나가 제대로 작동해준다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존재했었다. 누구든 미국에 들어갈 계획으로 띠후아나까지 오게 된다면, 그들 계획의 성공이 바로 눈 앞에 보이던 시절이었다. 띠후아나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희망의 관문'이었던 시절이었다.

이주자를 환대하던 그 시절
 
 멕시코 띠후아나 해변가로 이어진 국경의 한 부분. 건너편에 미국측에서 비교적 최근 설치한 철조망이 보인다)
 멕시코 띠후아나 해변가로 이어진 국경의 한 부분. 건너편에 미국측에서 비교적 최근 설치한 철조망이 보인다)
ⓒ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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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서는 미국이 먼저 국경 아랫쪽 사람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자국 내 노동력 수급이 어려워지자 '브라세로(Bracero)'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멕시코에서 노동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20년 넘게 지속된 프로그램이었다.

더불어 냉전의 시기에는 그 시대의 논리에 따라 20세기 후반 지독한 내전을 겪던 중앙아메리카 국가 출신 이주자들에 대해 한없이 관대함을 베풀었다. 특히 쿠바로부터 바다를 건너오는 경우라면, 누구든 플로리다 해안에 발을 딛는 바로 그 다음 날 영주권이 부여될 정도의 환대가 일반적이었다.

설령 미국 정부로부터 러브콜을 받지 못하였거나 국적이 일치하지 않아 화려한 환대를 받지 못한 경우라도 서쪽 태평양으로부터 동쪽 대서양까지 장대하게 뻗은 국경에는 그들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구멍들이 존재했다. 일단 들어가면 미국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운이 좋다면, 혹은 코요테에게 조금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면, 도시에서 바로 도시로 연결되는 띠후아나-샌디에이고 구간에서도 은밀한 입국이 충분히 가능했다. 사막이나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이주자들 사이 가장 선호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 시절 띠후아나 도심 곳곳에는 미국 이민국 심사대와 똑같은 무대를 만들어 놓고 미국 이민국 심사관 복장을 한 강사를 모신 채 하루에 수십 번씩 이민국 심사관을 속일 수 있는 인터뷰 연습을 시켜주는 사설 학원이 공공연하게 성행할 정도였다. 아이들이라면, 대충 어른들이 탄 차량에 묻어 심사를 받지 않고 국경을 넘었고 어른들이라도 타인의 신분증을 차용하여 국경을 넘기가 그리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띠후아나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던 그 시절이 띠후아나에 닿았던 수많은 이주자들이 기억하는 호시절이었을 것이다.
 
저자 소개
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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