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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자회견 기사를 보자마자 지갑 속을 뒤졌다. 어딘가 방치해둔 한 장의 카드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 지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찾아온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경기도민에게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준다고 3월 24일 발표했다.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으며, 지역화폐 등으로 지급한다는 게 기본 골자였다. 모든 도민이라면 경기 군포시에 사는 나 역시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지역화폐 방식이라면 그 카드가 필요할 것 같았다. 
 
 기자가 소지한 군포지역화폐카드 '군포애머니'
 군포지역화폐카드 "군포애머니"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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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도내 시·군 단위로 발행하는 대안화폐다. 지역마다 종류(카드형, 모바일형, 지류형)가 다른데, 군포시는 카드형이다. 이름은 '군포애머니'. 시 안에서만 쓸 수 있다. 선불카드처럼 미리 넣어둔 돈에서 사용할 때마다 차감되며, 충전금액의 6~10%를 인센티브로 줘서 그만큼의 할인 혜택이 있다(참고 : 경기지역화폐 홈페이지). 

내가 군포애머니를 발급받은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자주 지나는 길목에 현장 부스가 차려져 있었고, 마침 지역화폐카드 도입 기념으로 인센티브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가입 절차도 쉬워 냉큼 카드를 만들었다.

지역화폐카드는 소속된 시·군의 웬만한 곳에서 다 쓸 수 있다. 단,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안 된다. 그런데 이 제한이 내겐 꽤 높은 허들이었다.      

3인 가구인 우리 집은 살림에 필요한 물건 대부분을 대형마트에서 소비해왔다. 식재료는 물론이고 간식으로 먹을 빵과 아이스크림, 아이가 가지고 놀 색종이, 반려견의 사료, 렌즈 세척액까지, 전부 동네에 하나뿐인 대형마트에서 샀다. 주차장도 넓고 복잡한 이동 없이 한 번에 장을 볼 수 있어 편리했다. 그곳엔 거의 모든 것이 있으므로 뭔가 살 게 생기면 일단 대형마트로 갔다. 코로나19의 범유행 속에서도 방문객이 적은 시간대에 마스크를 쓰고 재빨리 다녀왔다.

대형마트에서 대체로 모든 걸 해결하니 지역화폐카드를 쓸 일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군포애머니는 지갑 한구석에 꽂힌 채 잊혔다. 그랬다가 겨울을 지나 봄과 함께 다시 내 앞에 돌아온 것이다.

재난기본소득을 쓰기 위한 예행연습

4월이 되자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의 구체적 지급계획이 나왔다.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기존에 보유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지역화폐카드로 빠르게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지역화폐카드를 택하기로 했다. 재난기본소득은 어떻게 지급받든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쓸 수 없는 건 똑같지만, 상인이 받는 혜택에는 차이가 있다. 경기지역화폐로 결제할 경우 신용카드 대비 수수료를 0.3%p 절감할 수 있다는 게 경기도 측의 설명이다. 가맹점이 내는 신용카드 최저(영세가맹점, 연 매출 3억 원 이하) 수수료율이 0.8%인 반면, 지역화폐카드의 수수료는 0.5%로 체크카드의 최저 수준과 동일하다. 

재난기본소득의 취지가 지역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 숨통을 틔우는 것이라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수단을 이용하고 싶었다.
 
 경기지역화폐 사용처(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경기지역화폐 사용처(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경기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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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과제는 하나, 우리 집의 소비 패턴이었다. 재난기본소득을 쓰려면 대형마트가 아닌 곳에서 장을 보고 물건을 사고 외식을 할 줄 알아야 했다. 도에서 수당이 들어오기 전에 지역화폐카드로 예행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마침 군포시에서 6월까지 충전금액의 10%를 인센티브로 지원한다고 하니 금상첨화였다.

3월 말 군포애머니에 40만 원을 충전하고 4만 원을 인센티브로 더 받았다. '장보기 비용과 동네에서 해결 가능한 생활비 지출은 무조건 지역화폐카드로 결제하기' 이렇게 규칙을 정하고 4월 첫째주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도전 첫날, 규모가 큰 동네 슈퍼에 갔다. 채소와 과일이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했지만 그 외에 물건은 종류가 다양하진 않아 보였다. 대형마트에 화려하게 진열돼 있을 각종 가공식품이나 조미료, 수입식품, 신제품들이 아른거렸다. 그냥 살던 대로 살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일주일만이라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일주일보다 더 길어져 지역화폐카드를 쓴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별다른 갈등 없이 군포애머니를 애용한다. 그리고 나의 도전은 소비 패턴의 변화를 넘어 가계 살림에 혁신을 불러왔다.    

결혼 생활 최초로 식비 예산을 남기다

첫째, '대형마트 일변도'에서 벗어났다. 평균 주 3회는 기본이었는데 4월에는 세제와 술, 아이 장난감을 사러 딱 세 번 갔다. 이제는 살 것이 있으면 대형마트부터 떠올리지 않는다. 감자와 당근 같은 채소와 우유는 아파트 상가 슈퍼에서, 사과 등의 과일은 시청 근처 상점에서, 빵은 사거리 제과점에서, 드립커피 원두는 도서관 인근 카페에서, 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져 있다.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전통시장이 있다. 왠지 현금만 될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카드가 되는 곳도 많았다. 가격은 대형마트보다 훨씬 싸다. 한번은 샤부샤부를 해 먹으려고 봄 주꾸미를 사러 시장 생선가게를 찾았다. 국물내기용으로 모시조개도 만 원어치 샀는데 한 바구니나 주셨다. 

이 많은 걸 어찌하나 고민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보관 방법을 검색했다. 블로거가 알려준 대로 해감하고 먹을 만큼 소분해 냉동시킨 다음,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오일 파스타를 만들 때 쓴다. 조개를 넣은 국물요리는 맛의 깊이가 다르다. 그 뒤로 시장 생선가게에서 매주 삼치나 오징어, 조개 같은 해산물을 사다가 냉동실에 보관해둔다. 사장님이 적당히 손질도 해주시니 덜 수고롭다. 덕분에 요리 실력과 살림 능력도 상승해간다. 
 
 시장에서 사온 모시조개로 만든 파스타
 시장에서 사온 모시조개로 만든 파스타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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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식비 지출이 줄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살 것만 메모해가도 시식 코너에서 맛본 냉동만두나 판촉행사 중인 김 세트를 충동구매 하는 바람에 계획한 예산을 초과하기 일쑤였다. '대형마트는 개미지옥'이라는 주부들의 하소연이 남 얘기가 아니었다. 

소비 패턴을 바꾼 4월에는 '일주일 식비 10만 원'이라는 목표치에 딱 맞게 썼다. 지난주에는 장 볼 걸 다 보고도 돈이 남았다. 결혼생활 6년 동안 식비 예산을 남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셋째, 삶의 반경이 입체적으로 넓어졌다. 군포시에 터를 잡았지만 군포시민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긴 어려웠다. 평일에는 집-회사, 주말에는 대형마트 아니면 옆 도시 쇼핑몰, 근교 명소로 놀러가기 바빴으니까. 집은 우리가 생활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잠만 자는 거처에 가까웠다. 

요즘엔 지역화폐카드 사용처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내가 사는 곳을 제대로 익히는 중이다. 집 근처에 이런 옷가게가 있었네, 동네에 이렇게 커피 맛이 좋은 카페가 있었네, 하며 발견할수록 군포시라는 지역에 애정과 애착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인구 27만여 명의 이 작은 행정도시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해가고 있다.

재난기본소득이 내게 던진 질문 하나

최근 남편이 군포시 안에 자리한 양조장에서 '수리산'이라는 지역 막걸리를 사 왔다. 애를 재우고 밤에 같이 한잔하며 지역화폐카드 사용 소감을 나눴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들은 남편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기도 달라진 게 있다고 했다.

"전에는 물건이랑 가격만 봤는데, 이제는 가게에 가면 사람들 얼굴을 봐." 

돌이켜보면 대형마트에서는 인파를 피해 쇼핑카트를 끌고 서둘러 계산하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반면에 자주 찾는 동네 가게들을 떠올리면 물건과 함께, 아담한 공간 안에 있는 주인이나 직원의 모습이나 표정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갈 때마다 단순히 물건을 산다기보다는 관계를 맺어가는 듯하다. 
 
 동네 화원에서 사온 동백나무
 동네 화원에서 사온 동백나무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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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집 앞 화원에서 꽃과 나무, 모종을 하나둘 사들였다. 화원 사장님은 장미와 동백도 구분 못하는 식물 문외한인 내게 원예 A~Z를 속성으로 가르쳐주셨다. 이후에도 가끔 들러 물 주는 주기나 해충 관리법 등을 여쭤본다. 때로는 "나무는 다음 해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는 자연의 진리도 알려주신다. 화원 사장님은 우리 집 식물 주치의이자 동네에서 만난 인생의 선배 같은 분이다.

5월에는 군포애머니로 들어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쓸 계획이다. 10만 원을 다 쓴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지역화폐카드를 적극 이용하고자 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전례 없는 경제위기를 보며, 높고 두루뭉술하게만 느껴졌던 '골목상권 보호' '상생' 같은 낱말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화원 사장님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나의 소비만으로 화원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 동네에 어떤 정치가 필요할까.

생애 첫 재난기본소득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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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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