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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묘소의 김여정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 호치민 묘소의 김여정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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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재함이 밝혀지면서 사그라들게 됐지만, 이번에 김정은 위독설이 논란이 되는 과정에서 김여정을 둘러싼 후계자 문제가 거론됐다. '백두혈통'인 그가 김정은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다는 보도들도 나왔다.

김여정과 관련해 최근 거론된 '백두혈통'이라는 표현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남한 언론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백두혈통은 북한을 비판하기 위한 남한의 불순한 의도를 반영하는 용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름'은 불리는 쪽보다 부르는 쪽의 편의에 따라 지어지기 마련이다. 백두혈통이 '김일성 혈통'을 가리키는 쪽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된다면,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과도하게 저해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북에서 공식 사용되는 '주체 혈통'이 더 정확한 개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 용어 역시 한계를 띠고 있다. 주체 혈통은 혁명의 정통성을 누가 계승했는가를 설명할 때 적합할 뿐,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누가 계승해야 하는가를 말할 때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김정은의 건강 문제와 함께 김여정의 백두혈통이 거론되는 지금 상황은 서구식 민주주의에 익숙한 남한 사람들한테는 낯설기도 하고 전근대적으로 비쳐질 만도 하다. 사극 속의 왕실이나 뉴스 속의 재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민주적 절차를 규정한 북한의 법률제도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헌법 있는데 왜 김일성 혈통만 지도자가 될까

작년에 수정된 북한 헌법은 제100조에서 국무위원장을 '최고령도자'로 규정한 뒤, 제101조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한다"고 했고 제102조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임기는 최고인민회의의 임기와 같다"고 했다. 제90조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 임기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선거를 연기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상 5년이다.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되는 시스템은 1948년 북한정부 출범 때부터 작동했다. 지금의 국무위원장에 해당하는 내각 수상은 당시 헌법 제37조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 의해 선출됐다. 박정희 유신헌법과 비슷한 시점에 등장해 김일성 권력을 한층 강화한 1972년 헌법의 제76조는 최고인민회의가 국가 주석을 선출하도록 했다. 김일성 사후에 나온 1998년 헌법의 제91조에서는 최고인민회의가 국방위원장을 선출하도록 했다.

김일성 수상,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결같이 최고인민회의에 의해 선출된 데서 드러나듯이, 북한 최고지도자는 최고인민회의의 신임에 의존한다. 외부에서는 백두혈통 세습을 운운하지만, 적어도 북한 내에서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이 규범력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유독 김일성 혈통에서만 최고지도자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북한 시스템이 김일성 혈통을 중심으로 작동되도록 부추기는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라 소집된 최고인민회의가 김일성 혈통만을 추대하도록 만드는 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주도 하의 토지개혁이 북한 대중의 현실적 이익에 복무한 점, 김일성의 라이벌인 국내파가 1952년 숙청되고 또 다른 라이벌인 중국파(옌안파)·소련파가 1956년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소멸된 뒤 유력한 경쟁자 그룹이 더는 등장하지 않은 점, 김일성 혈통 주도 하의 자력갱생 경제건설이 지방 및 관청 단위로 정착한 데 힘입어 1950년 이후의 경제봉쇄 속에서도 북한 경제가 그럭저럭 작동해온 점. 그리고 이와 더불어, 김일성 혈통의 위상을 강화시켜준 결정적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북미관계다.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은 휴전협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래서 법적으로 따지면 이 전쟁은 무승부다. 하지만, 개전 주체의 원래 목표가 달성됐는가를 기준으로 승부를 판가름하는 전통적 관념에 입각하면, 김일성이 이 전쟁에서 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전 명분인 한반도 통합이 달성되지 않았고, 전쟁 도중에 북한 영역 대부분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이 패전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북한 밖에서도 그렇지만, 북한 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리어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통해 승자의 이미지를 부여받았다. 그렇게 된 것은 미군의 참전으로 김일성의 패배가 희석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발발할 때만 해도 남북 대결 양상을 띠었던 전쟁이 파이프 문 맥아더의 출현과 함께 북미 대결 양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김일성·이승만이 책임을 벗어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세계 최강과의 맞대결로 발전한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은 호치민처럼 미국을 확실히 누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미국에 밀리지는 않았다. 독일과 일본을 굴복시킨 미국과 싸워 대등하게 비기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김일성에게 승자 이미지를 부여하고, 나아가 그의 권력강화에 이바지했다. 전쟁 중인 1952년에 김일성이 최대 라이벌인 박헌영과 남로당을 숙청함으로써 국내파를 도태시킬 수 있었던 것은 대미 대결 과정에서 그의 위상이 강화된 결과였다. 바로 이 시점부터 북에서는 '수령의 교시를 실천하자'는 구호가 나오고 역사를 김일성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김일성 신성화의 초기 조짐이 북미 대결 와중에 싹을 띄웠던 것이다.

김일성 가문의 장기집권에 기여한 북미 대결?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서 마스크 쓴 참석자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마스크를 쓴 참석자들이 김 위원장 쪽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서 마스크 쓴 참석자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마스크를 쓴 참석자들이 김 위원장 쪽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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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결과적으로 김일성의 권력 강화를 도왔다는 점은 1960년대 후반 사례들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의 핵무기를 핵확산금지조약(NPT) 예외조항으로 합법화해준 미국은 이 시기에 미중관계 안정을 발판으로 대북 압박을 강화했다. 미국 군함 및 군용기의 북한 영역 침입으로 촉발된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및 1969년 EC-121기 격추 사건은 그런 압박정책의 결과로 빚어졌다.

두 사건 당시 미국은 당장에라도 전쟁을 벌일 것처럼 북한을 압박했지만, 베트남전쟁에 발이 묶인 그들은 위협만 줬을 뿐 행동에는 착수하지 못했다. 두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압박이 북한 내부의 긴장감을 가중시키는 상황에서, 미국이 약한 모습을 보이며 물러남에 따라 김일성의 위상은 한층 더 강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가 김일성의 권력을 한층 공고히 하던 상황에서 1971년부터 김정일의 등장이 암시되다가 1974년에 김정일의 후계자 지위가 인정됐다. 미국의 압박으로 인한 김일성의 위상 강화가 김일성 개인의 위상 강화에 그치지 않고 김일성 혈통의 위상 강화로 연결됐던 것이다. 북미 대결이 김일성 가문의 장기집권과 그 혈통의 신성화에 적지 않게 기여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일성·김정일 교체와 김정일·김정은 교체 역시 북미 대결 과정에서 벌어졌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승계한 1994년 7월은 전년도에 시작된 제1차 북·미 핵위기가 아직 진행 중일 때였다.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승계한 2011년 12월은 2002년에 개시된 제2차 북·미 핵위기로 인해 6자회담이 벌어졌지만 오래도록 성과가 나지 않아 북·미 긴장이 여전히 팽팽할 때였다. 

이 같은 김일성 혈통의 위상 강화가 지난 20년 동안 북한 법률제도에도 반영됐다.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에 의해 선출된다는 헌법 규정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김일성 혈통 밖에서 최고지도자가 배출되는 것을 저해하는 규정들이 북한 법률규범에 등장했다.

1998년 헌법에서는 김일성이 '조선의 시조', '영원한 주석'으로 격상됐다. 2010년 노동당 규약에서는 김일성이 '당의 영원한 수령'으로 승격됐다. 2012년 헌법 및 2012년 노동당 규약에서는 김정일이 '조선의 수호자'로 격상되고, 김일성·김정일이 '민족의 태양이며 영원한 수령'으로 선언됐다. 2012년 노동당 규약에서는 김정은도 '위대한 영도자'로 규정됐다. 최고인민회의가 김일성 혈통을 최고지도자로 선출하도록 유도하는 규정들이 지난 20년간 축적됐던 것이다.

그런데 최고인민회의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도록 하는 규정(A)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격상시키는 규정(B)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 체제의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주석·수령직을 김일성 혈통에 독점시키는 B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 속에 들어가 있는 '민주주의'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김일성 혈통의 입장에서는 민주적 요소를 담은 A와 자신들의 권력을 일치시키는 일에 항상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고지도자의 혈육을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추대한다는 헌법 규정이 나오지 않는 한, 김일성 혈통은 A와 B의 조화를 위해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백두혈통이란 것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법적 공고화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공인하는 법적 장치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김일성 혈통의 지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법적 상태가 아닌 사실상의 상태라 할 수 있다.

한편, 김일성 혈통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조건이 2018년부터 서서히 두드러지고 있다. 그 조건이란 것은 다름아닌 북미관계의 훈풍이다.

김일성의 권력 공고화와 김정일·김정은의 승계에서 나타났듯이, 이 혈통이 75년간 집권할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은 북미대결로 인한 외부 압력의 증가다. 이 압력이 여타 쟁점을 무력화시키는 상황 속에서 김일성 혈통은 최고지도자 지위를 독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8년부터 조성된 북·미 훈풍은 김일성 혈통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던 명분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금은 냉각 국면으로 돌아서 있지만, 북·미 양국이 2018년처럼 대화 모드로 진입하고 이것이 장기화되면 김일성 혈통의 존립 근거가 장기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권력은 개인 역량으로도 생겨나지만, 무엇보다도 상황에 의해 생겨난다. 권력은 상황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혈통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가문의 권력강화에 기여했던 요인이 사라지면 이 가문의 권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백두혈통의 유력자로 거론되는 김여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북미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는 상황에서 대외관계의 전면에 서고 이런 속에서 자기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향후 그가 대미 강경노선으로 자기 이미지를 바꿀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북·미 훈풍 속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구도는 지금 당장에는 그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유리할 수 있어도, 대미 대결의 선봉을 지도자로 받들어온 북한 사회에서는 반드시 유리한 요인일 수만은 없다.

이는 김일성 혈통이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자신들의 리더십을 새로운 조건에 맞게 신속히 조정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북미 대결이 아닌 북미 평화 속에서도 혈통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백악관과의 대화 테이블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김일성 혈통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북·미 평화국면 속에서 스스로 존재 의의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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