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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주차장에 마련된 안심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주차장에 마련된 안심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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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코로나19의 도전에 맞서 인류가 연대라는 문명적 도구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선 G20 특별 정상회의가 요청한 대로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가 약 한 달 만에 설립되었으며 세계 최빈국들의 부채 상환 의무 이행을 일시적으로 유예하기로 G20 국가들이 합의하는 등 전 세계적인 차원의 국제연대가 유례없이 신속하게 실현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유럽연합 등 지역 단위에서의 국제연대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며 한국, 독일 등에서는 의료 인프라 지원을 통한 국제연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연대뿐만이 아니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역으로 수많은 의료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해서 가는 모습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의료인 아닌 일반 자원봉사자들이 개인 혹은 집단 차원에서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자발적인 연대실천에 나서는 소식을 곳곳에서 전해 들을 수 있다.

총리가 시민들에게 연대의 실천을 감명 깊게 호소한 독일에서는 노인, 외국인, 일하는 엄마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한 일상적인 연대 실천의 물결이 여러 지역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에는 인터넷의 플랫폼이나 소셜 네트워크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 'nebenan.de,' 'lasshelfen.de,' 'coronaport.net' 같은 플랫폼과 'Wäller helfen,' 'unsere schöne Altenkirchen' 같은 페이스북 그룹이 작은 사례다. 이 중에서 coronaport.net는 한 명의 15세 학생이 베를린의 자원봉사자를 모으기 위해 거의 밤을 새우면서 만든 포털이라고 한다. 프랑크푸르트 지역 신문들은 'Alltagshelfer in der Nachbarschaft,' 'Frankfurt gegen Corona,' 'Solidarisch trotz Corona' 등 코로나19 도전에 맞서 시민들이 새로 만들어 활동하는 연대단체의 활동을 적극 소개한 바 있는데 Frankfurt gegen Corona는 의대생 3명이 함께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시민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연대실천이 범죄에 악용되거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경찰을 비롯한 지역 공공기관이 이를 규제하는 대신에 적절히 지원함으로 연대실천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확산되는 연대실천 가운데는 시민들을 통한 자발적인 형태도 있지만 국가와 기업을 통한 연대실천도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생계 및 경제활동이 어려운 자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사회·경제적 긴급대응책도 사실은 연대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사회복지 같은 사회·경제적 연대의 제도와 문화가 잘 정착된 사회에서는 이런 대응책이 신속하게 시행되어 소기의 성과를 얻기 쉽지만 그러지 않은 곳에서는 도입부터 쉽지 않다.

그런데 긴급대응책이 시행되는 경우에도 대부분 자국민만을 대상으로 하여 외국인을 그 혜택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의 도전은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취약층을 더욱 적극 공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 코로나의 도전 앞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대신에 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연대만이 적절한 전략이 된다. 그래서 포르투갈 정부는 이주자, 난민 같은 외국인에게 한시적인 시민권을 일괄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기업을 통한 연대실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제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되는 가운데 실업과 노동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 가운데 하나인 스페인에서는 협동조합들이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수입보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국내 언론에도 대표적인 협동조합인 축구 명문 FC바르셀로나의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

코로나의 도전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실업대란을 낳게 될 것으로 많은 경제 전문 기관들이 진단하고 있다. 20세기 말의 신자유주의는 경제활동에서 연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지만 2008년 세계경제 위기를 지나면서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번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도전은 경제영역에서도 연대성과 공공성의 가치를 확실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연대와 협력을 기본 가치로 삼는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에는 앞으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활성화할 사회적경제기본법 같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 워싱턴 대학이 진행하는 폴딩앳홈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의 유휴자원을 공유하여 역대급 성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코로나19 단백질의 구조분석과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이 진행하는 폴딩앳홈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의 유휴자원을 공유하여 역대급 성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코로나19 단백질의 구조분석과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하고 있다.
ⓒ 폴딩앳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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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도전이 야기한 가장 흥미로운 연대 형태는 전 세계 주요 컴퓨터의 연대 같은 과학기술의 연대다. 물론 컴퓨터나 다른 과학기술 자체는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대립이나 파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코로나 전쟁 중에 각국 사이에는 치료제나 바이러스의 신속한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도전은 인류에게 이러한 경쟁과 대결보다 연대와 협력을 훨씬 더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의 백신 개발, 빅데이터 분석 등을 지원하기 위한 세계적인 컴퓨터 연대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이 진행하는 폴딩앳홈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의 자원을 공유하여 역대급 성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코로나19 단백질의 구조분석과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하고 있다. 3월 말 기준으로 세계 각지의 컴퓨터 자원 CPU 460만 개가 연결되었으며 약 7억 명의 인원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폴딩앳홈 외에도 슈퍼컴퓨터(HPC) 컨소시엄, 로제타앳홈 같은 컴퓨터연대가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일하고 있다. 물론 컴퓨터 연대 외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생명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코로나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성공적인 방역, 치료제 개발, 백신 개발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선물

코로나19는 소중한 생명을 엄청나게 앗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여러 형태의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인류에게 값진 선물도 제공하고 있다. 그 선물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은 인간의 두 가지 본성, 즉 이기성과 이타성 가운데 이타성의 가치에 다시금 크게 주목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은 인류의 진보를 명분으로 이기성을 더욱 강조해왔다. 가까운 예로는 시장경쟁의 필요성을 배타적으로 강조한 현대 신자유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관한 윌슨이나 도킨스 같은 생물학자들의 저술이 1970년대 후반에 나와서 이후 한동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실인데, 이것은 이들이 198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을 뒷받침하는 논리로서 매우 큰 매력을 지녔다는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가시적이면서 직접적인 형태로 인간의 생명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류는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지구 어느 한 지역에 남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제 또 다시 변종을 일으켜 전 세계를 위협할지 모른다.

따라서 코로나의 도전은 기후변화처럼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분명히 일깨워준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대로 운명공동체로서의 세계위험사회인 것이다. 이번에 신속히 합의에 이르고 있는 여러 국제협력 과제들은 사실상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이미 제안된 바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는 기후변화 위기보다 훨씬 더 시급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국제연대에 이르게 하고 있다. 국제연대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회적 연대를 비난하던 극단적인 시장주의자들이나 이주민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던 극우세력들의 기운이 강력한 연대의 요구 앞에서 꺾인 형국이다.

인간은 이타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타성이 필요할 때 이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마다 시대마다 이타적인 문화의 자원이 풍부한 경우도 있고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를 퍼트넘, 콜먼 같은 학자들이 사회자본이라고 불렀다. 필자는 이것을 굳이 자본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이타적 문화의 핵심요소들인 소통·신뢰·연대·협력 등의 문화가 비교적 풍부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같은 사회라도 시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인류에게 연대와 협력을 위한 이타적 본성의 발휘가 강력히 요구되는 때인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의 도전은 인간의 이타적 본성과 연대문화의 가치에 다시금 크게 주목하게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수택은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경상대학교에서는 사회학이론, 사회사상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학술지 <사회와 이론>의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연대주의>, <씨알과 연대>, <연대하는 인간, 호모 솔리다리우스> 등의 저자이다.


태그:#코로나19, #연대, #협동조합, #인간본성,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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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연대주의』, 『환경과 연대』,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등의 저자. 다원화된 한국사회가 분열형 사회 대신에 북유럽국가들 같은 연대형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제 극복이 필수적이라는 관점에서 의원내각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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