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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아침 대구 모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이 졸린 눈을 비비며 컴퓨터를 켰다.

매일 강의가 열리는 시간은 8시 30분. 학교에서 지정한 출석 인정 시간이 9시인만큼, A군의 아침 기상시간은 규칙적이었다. 이날 8시 44분에 'EBS 온라인 클래스'에 접속한 A군은 "보통 이 시간대면 로그인 이후 로딩이 1분 이상 넘게 걸리는 편인데, 오늘은 금방 접속이 됐다"라고 말하며, 1교시 수업인 회전하는 드릴로 공작물을 절삭하는 가공법인 '밀링가공' 수업 탭에 접속했다.
  
 A학생이 ebs 온라인 클래스 수업을 듣는 모습이다.
 A학생이 ebs 온라인 클래스 수업을 듣는 모습이다.
ⓒ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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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작 버튼을 누르고 A군의 손은 곧장 휴대전화로 향했다. 1교시 29분34초짜리 강의 내내 A군은 한 번도 모니터를 쳐다보지 않았다. A군은 "특성화고 3학년들은 1, 2학년들과 달리 실습 위주의 수업만 들으면 된다"면서 "어차피 필기시험은 면제되고 실기시험만 보면 되는 의무검정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웹페이지 큐넷에 공지된 2020년도 국가기술자격검정 시행공고에 따르면 특성화고 재학생 및 산업수요맞춤형고교 학생들은 연 4회 운영되는 각종 기능사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는다.

하지만 A군은 "아직 3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진학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개학으로 학생과 교사의 소통이 단절돼 A군은 취업정보로부터 단절된 상황이다.
 
 개학 후 학생과 학교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창구인 ‘ebs 온라인 클래스’ 내의 ‘공지사항’이다. 온라인 개학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별다른 공지사항이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학 후 학생과 학교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창구인 ‘ebs 온라인 클래스’ 내의 ‘공지사항’이다. 온라인 개학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별다른 공지사항이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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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업은 EBS 온라인 강의로 대체됐지만 그 내용은 크게 새롭거나 심화된 내용이 아니었다. A군은 "하루 2, 3개씩 과제가 있지만 강의를 듣지 않아도 풀 수 있다"면서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온라인 수업에서 요구하는 과제를 모두 완성했다.

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 김석현 교사는 "인문계 학생이 듣는 과목은 콘텐츠가 많고 디지털화가 돼서 (학습 자료가) 공유가 많이 되는데, 실업계학생의 경우 교과서가 PDF로 된게 없는 등 (학습 환경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23일 수업에서도 수업내용을 제외한 '취업'과 '자격증'에 관한 구체적인 전달사항은 없었다. 이 날 수업내용은 '밀링가공'과 '사출금형제작' 과정이었다. 다른 날의 수업일정에서도 '취업'과 '자격증'에 관한 구체적인 전달사항은 마찬가지로 없었다.

8시 44분에 시작한 수업은 9시 40분이 돼서 끝났다. A군은 "길게 하면 2시간이지만, 보통 1시간 30분 내에서 끝난다"며 "오늘은 어제 저녁에 미리 수업 하나를 들어서 좀 더 일찍 끝났다"고 말하며 서둘러 컴퓨터를 종료했다.

오전 10시, 하루치 온라인 수업을 마친 A군은 "오늘은 친구를 만나지만, 그 외에는 할 게 없다. 처음에는 이렇게 학교를 가지 않는 게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졸업 이후 뭘 해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커져간다" 수업을 마치기엔 다소 이른 시간인 오전 10시, A군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부는 애초 실습수업이 많아 온라인 개학이 어려운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해 '기간집중이수'를 대책으로 내놨다. '기간집중이수'란, 온라인 개학 시기에 이론 부분과 원격 교육이 용이한 부분을 우선 학습하고, 등교가 가능해지면 실습수업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제도다. 문제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기간집중이수'라는 정부 정책이 '수업'에만 방점이 찍혀있을 뿐, 학생들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취업'과 '자격증'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는 점에 있다.

지난 3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재학 중인 고3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최초 청원자는 "상반기 채용 일정이 모두 취소되고 하반기에 몇몇 기업들만 채용을 진행하게 된다면 특성화 고등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를 위해 '수능 연기'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처럼,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취업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청원은 29일 오후 1시를 기준으로 2만 8750명의 동의를 받았다. "인터넷을 보면 고등학생을 위한 정책은 많은데, (취업을 원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A군의 고민은 대다수 특성화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인 셈이다.

김석현 교사는 "정책 결정자인 교육청에서 우선 (혼란을 막기 위해)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 안내 등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확정된 인문계고 학생들의 입시 일정처럼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일정 역시 구체적으로 확정지어 교육현장에서의 혼란을 우선적으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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