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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보면서 많은 것이 달라질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여 각계각층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수제화 장인으로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기 위해 내게는 두 가지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비대면 서비스와 환경이라는 단어다.

환경보호와 자원의 활용

먼저, 환경 문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자연이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일깨워주었던 부분이다. 점점 소비 위주로 삶이 치닫고, 환경 파괴가 계속되는 한 인간의 문명은 전지구적인 입장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이 살기 위해 바이러스인 인간을 제거하려고 코로나라는 백신을 보냈다'는 내용의 정진호 한동대 교수의 칼럼을 읽으며 씁쓸하면서도 반성이 됐다.

나름, 구두장이로 환경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면서 지속 가능하게 하려는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평소 미니멀리즘과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딸이 자동차 폐타이어와 베지터블 가죽으로 신발 만드는 것을 제안해서 등산화를 제작해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딸이 투자하고 도움을 주어서 제작하게 되었다.
 
폐타이어와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 등산화
 폐타이어와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 등산화
ⓒ 박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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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로 만든 등산화 창
 폐타이어로 만든 등산화 창
ⓒ 박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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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밑창은 무거운 자동차도 도로 위에서 달리게 한 타이어였으니 튼튼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을 가미하니 등산화의 밑창에 특색있는 무늬가 생겼다. 가죽 역시 구두 소재로 주로 사용되는 크롬 코팅이 된 가죽이 아닌 베지터블 공법으로 가공된 가죽으로 사용하면 독한 화학제품 사용을 줄일 수 있으니 자연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다.

가죽공예 트렌드도 거의 베지터블이 주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 화려한 크롬으로 가공되지 않은 가죽을 선호하는 이들이 수제화 시장에도 변화를 주고 있어서 그 두 가지를 결합한 등산화를 만들어 보았다. 주변 사람들과 딸도 흡족해하지만, 그저 아는 사람들에게만 알릴 뿐, 이를 상용화할 자본과 아이디어가 부족한 상태다. 개인의 소공인이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전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비대면 서비스, 스마트 슈즈의 필요성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꺼려지는 사회적, 물리적 거리두기 시기에도 비대면으로 스마트 슈즈를 제작해 신을 수 있다면 맞춤 구두인 수제화 서비스가 가능하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손님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구두 만드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또한, 물리적인 거리를 초월하기 때문에 도서 산간 지역을 비롯해 거리가 먼 곳에 있는 고객이나 고령의 나이로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장애로 인해 직접 올 수 없는 고객에게도 맞춤구두를 제작할 수 있으니 현재도 필요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필수적인 서비스라 할 수 있겠다.

현재에도 이러한 비대면 서비스가 제화산업의 주류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시행되고 있기는 하다. 앱을 통해서 발 치수와 모양을 취형하여 고객의 발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거나, 풋폼(발도장) 등을 통해서 고객의 발모양을 그대로 석고로 떠서 구두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어려운 점은 아무리 취형을 잘 한다고 해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그런 방식으로 취형을 한 뒤 제작했으나 발에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비대면 서비스가 가능해진 오늘날의 제화 산업
 비대면 서비스가 가능해진 오늘날의 제화 산업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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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마트슈즈는 취형에 이어서 잘 만들 수 있는 데이터에 대한 축적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것이 스마트 슈즈로의 진정한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스마트슈즈에 대한 연구는 신발을 잘 만드는 과학적 접근보다는 취형을 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고 있는데, 아쉽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노하우가 개개인의 수제화장인의 개인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데이터화 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스마트구두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결국, 잘 만들어야 고객의 선택을 지속해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고령화도 당면한 문제

사실 수제화 제조산업이 당면한 더 큰 문제는 수제화 장인들의 연령이 평균 64세로 고령화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즉, 제조할 전문인력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수제화 기술을 배워야 수제화 산업에도 미래가 있고 비대면 서비스와 환경을 보호하는 수제화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 사회적 책임을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거대 수제화 기업들일까? 아니면 개개인의 소공인 수제화 장인들일까? 정부나 지자체 일까? 사실은 서로가 화합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이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소멸되어 갈 것이고, 다른 나라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산업의 소멸에 대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가 점점 커질 것이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에 따르면 코로나가 가져다준 충격으로 인해 세계화, 도시화, 금융화, 환경에 대한 기존의 방식들이 무너진다고 한다. 한국 내부의 수제화 제조산업이 죽어가면, 여전히 다른 나라, 즉 세계화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주름진 내 손을 바라보며 이 산업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되면서도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는 어쩌면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스마트한 구두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추어 수제화 장인으로서 내가 노력하고 발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것이 우리 한국의 수제화산업을 이끌 수 있는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전해준 시가 자꾸 마음에 떠오르며 어깨가 무겁다.
 
누가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
 누가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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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  / 윌 앨런 드롬구울

도로를 혼자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
어두운 조수가 넘실거리는
크고 깊고 넓은 골짜기에
춥고 건조한 저녁에 왔네.

그 중년의 남자는 그 골짜기를 황혼의 빛 아래 건너는데,
어두운 물결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네.
안전한 장소로 넘어왔는데, 그는 몸을 돌리네
그리고 물살 위로 다리를 놓기 시작하네

"이보게나" 근처의 동료 나그네가 그를 부르네.
"자네는 이곳에 다리를 놓느라 기력을 소진하고 있네.
자네의 여정은 곧 죽음과 함께 끝날 걸세.
결코 이 길을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텐데...
깊고 넓은 골짜기를 이미 지나 온 자네가,
왜 이 늦은 저녁에 이곳에 다리를 놓는가?"

그 다리 놓는 사람은 그의 회색머리를 들고 말하길,
"이보게 친구여, 내가 이미 지나온 이 길을
오늘의 나처럼 지나올 이가 있네.
그 젊은이는 이 길을 지나올 수밖에 없지.

이 골짜기는 내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네만,
그 금발의 젊은이에게는 함정이 될 수도 있네.
그도 역시 황혼의 빛 아래 이 길을 건너와야 하네.
이보게, 좋은 친구여. 나는 그를 위해 이 다리를 놓는다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온'이라는 주주통신원들의 공간에도 올렸습니다.


태그:#포스트코로나, #제화, #비대면, #환경,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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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수제화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이 손때 묻은 직업이 사라지기 전에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다. 현재 '아빠는구두장이' 대표 수제화장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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