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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탄핵' 외친 전광훈 목사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 2차 투쟁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문재인 탄핵" 외친 전광훈 목사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2019년 10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 2차 투쟁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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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의 사회발전을 가장 집요하게 훼방하는 이들은 뜻밖에도 목사들이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 결집해 있는 목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 10월 3일 한기총의 광화문 집회 때다.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500만 애국시민들을 증인으로 해서 지금부터 국민재판의 회장을 선출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재판장으로 추대된 전광훈 목사는 "주사파 세력 50만이 지금 계속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데, 이제 홍위병으로 둔갑하여 촛불시위를 통해 내전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주사파를 찬양·고무·동조하는 행위는 처벌하기로 동의하십니까?"라고 한 뒤 "통과됐습니다"라면서 연단을 땅땅땅 내리쳤다.

그날 광화문광장에 모인 한기총 신자들이 500만이 아니듯이, 대한민국 주사파 역시 50만이 되지 않는다. 주사'파'라고 할 만큼의 세력도 형성돼 있지 않다. 50명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았던 가장 확실한 주사파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광훈과 한기총이 적대시하는 주사파는 추상적 존재다. '홍위병으로 둔갑한 주사파가 촛불시위를 통해 내전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들이 말하는 주사파는 촛불을 들고 적폐청산을 외치며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을 '국민의 대한민국'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의 주사파라면 50만이 아니라 5000만에도 근접할 것이다.

한기총의 태생적인 두가지 특색
 
10.3 광화문집회 주도하는 정광훈, 이재오 3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부터 광화문광장까지 한국교회기도연합 주최 '한국교회 기도의 날',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총괄대표 한기총 전광훈 목사. 총괄본부장 이재오 전 장관) 주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대회', 자유한국당 주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재오 전 장관과 전광훈 목사 모습이 대형모니터에 나오고 있다.
 3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부터 광화문광장까지 한국교회기도연합 주최 "한국교회 기도의 날",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총괄대표 한기총 전광훈 목사. 총괄본부장 이재오 전 장관) 주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대회", 자유한국당 주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재오 전 장관과 전광훈 목사 모습이 대형모니터에 나오고 있다. 2019.10.3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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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요한일서> 2장 22절은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육체를 갖고 이 땅에 왔다는 점과,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를 촉구하는 구절이다. 이어서 <요한이서> 1장 7절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전광훈과 한기총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지 않고, 전혀 엉뚱한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을 '국민의 대한민국'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적개심을 가질 것을 신도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과 싸우지 않고 이승만·박정희를 부인하는 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전광훈과 한기총을 바라보며 "목사님들이 왜 저럴까?", "기독교가 왜 저럴까?"라고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한기총은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를 응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려고 나온 단체가 아니라, 민주·진보 진영을 물리치고 이승만·박정희의 나라를 광복시키고자 나온 단체이기 때문이다. 외향은 종교단체지만 실제는 정치단체였다. 1989년 12월 창립 당시의 한기총은 그런 본질을 가진 보수단체였다.

8·15 해방으로 친일파와 보수파가 무력해지고 민주·진보 진영이 득세하자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이 구사한 전략 중 하나는, 이북 출신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 등을 앞세워 테러 활동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주 4·3과 여순 사건 같은 끔찍한 만행이 자행됐다.

6월항쟁으로 기가 꺾인 1987년 이후의 보수세력도 유사한 전략을 답습했다. 이들의 전략 중 하나는 이북 출신들을 앞세워 민주·진보 진영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으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한기총이었다.

6월항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나 노동운동뿐 아니라 통일운동도 한층 더 강해졌다. 세계적으로 탈냉전 열기가 뜨거워지던 이 시기에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녹이기 위한 노력이 가열차게 전개됐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으로 상징되듯이 당시의 기독교도 그런 흐름에 동참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1988년 2월 29일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통일선언)'도 그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었다.

KNCC의 통일선언은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던 기존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민간도 통일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사건이었다. 선언 다음날인 3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 '기독교회협 통일평화선언 채택'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통일선언은 통일을 향한 기독교 5대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인도주의, 민족구성원 전체의 참여를 제시했다.

또 남북 두 정부에 대한 주문 사항도 있었다. 이산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고, 남북회담이 안 될 때 민간이 나설 수 있도록 하고, 한반도 전역을 비핵화 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민족적 이익에 배치되는 외교적 협상과 조약을 수정·폐지하라는 것이었다. 대담하고도 획기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6월항쟁의 열기를 타고 한반도 냉전을 녹이려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보수세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정의당(민정당) 정권과 더불어 가장 크게 놀란 쪽은 기독교 내의 보수세력이었다.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보수파 목회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한경직은 평양 서쪽 해안 지방인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월남한 그는 그해 12월 2일 베다니전도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가 지금의 영락교회다.

그는 이북 출신치고는 꽤 신속하게 남한 사회에 정착했다. 1950년에는 기독교구국회 회장이 되고 1955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 됐다. 그의 영향력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지나 전두환 정권 때까지도 시들지 않았다. 전두환 때는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도 참석했다. 이 때문에 6월항쟁 이후 교계 진보세력에 의해 '비민주 목사'로 낙인찍히고 퇴진 압력을 받았다.

한경직은 '통일선언'에 대한 대응을 모색했다. 그의 대응 방식 중 하나는 자신과 조향록 목사 등을 포함한 19명 명의로 1988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 7면에 '1천만 기독교 신도들과 성직자 및 국민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광고 형식으로 싣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 한경직과 동조자들은 "통일운동의 당위성에만 급급한 나머지 안이한 대화와 무절제한 접촉으로 인하여 국민 자유와 국가의 주권에 큰 침해를 당하게 되는 비극은 절대로 다시 없도록 주의해주기 바란다"고 통일운동 세력에게 경고를 날렸다. 온 민족이 염원하는 남북교류가 그들에게는 그저 '무절제한 접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한경직이 이끄는 그 흐름에 대해 이북 출신의 반공주의 목사들이 동조했다. 이들의 세력이 결집한 결과가 이듬해 12월 28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창립으로 귀결됐다. 기독교 신문인 <예장뉴스>의 2017년 1월 29일자 기사 '한교총이 한국 교회의 대표가 되려면'에서 설명된 것처럼, '이북 출신+반공주의'라는 한기총의 특색은 2005년에 제11대 대표회장으로 최성규 목사가 선출되기 전까지 확고히 유지됐다.

보수정권에 발맞춰온 한기총, 그러나...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꽃다발을 받고 밝게 웃고 있다.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꽃다발을 받고 밝게 웃고 있다.
 2007년 8월 21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꽃다발을 받고 밝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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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설립이 당시 정권의 지원 하에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이 운용한 '종교대책반'에 관해 보도한 2005년 5월 27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5공, 진보 종교계 와해공작 실체 드러나'는 한기총 창립과 안기부(현 국정원)의 역할에 관해 이렇게 보도했다.
 
 "5공 종교대책반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대별되는 보수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5공과 6공 정권 때 탄생한 보수단체들이 종교대책반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1980년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한경직·정진경 목사 등 당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기총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실도 이런 의혹을 확산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또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 오충일 목사는 지난 4월 인터넷언론인 포럼에서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 종교담당 요원이 한기총 창립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힌 바 있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기총 멤버들이 보수 정권과 긴밀했다는 점은, 1987년 대선 직후 노태우 당선자의 자문 그룹인 민주화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할 때 훗날의 한기총 목사들인 한경직과 조향록이 후보로 거론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988년 1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 '6공화국 정치 방향 정지(整地) 모색'에 이런 대목이 있다.
 
"종교계 인사의 경우는 교파 간의 문제 등을 고려, 철저하게 대표성을 인선 기준으로 잡았는데, 교파 갈래가 많은 기독교계로는 김관석 목사 외에 한경직 목사와 김용기 가나안농군학교장도 거론됐으나, 결국 그동안  여러 가지로 협조 관계에 있던 조향록 목사로 낙착."
 
한기총 목사들이 전두환·노태우 정권과 긴밀했을 뿐만 아니라 한기총 창립에 안기부가 개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기총이 종교단체가 아니라 실상은 정치단체나 다를 바 없음을 뜻한다. 한기총은 보수정권과 결합해 6월항쟁에 맞서 민주·진보 및 통일운동에 맞불을 놓을 목적으로 출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태생적 특성은 1989년 창립 뒤로 이 단체가 보여준 행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한기총은 사회발전의 고비 때마다 찬물을 끼얹은 일을 많이 했다. 일례로 2005년부터는 사립학교법 개혁을 반대하고, 2006년에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비상구국기도회를 열고, 2008년에는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북 출신'이라는 특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지만, '반공주의'라는 또 다른 특성은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공산주의를 반대하기 위해 반공주의를 내세운다기보다는 민주·진보 진영을 매도할 목적으로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한기총의 활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2016년 촛불혁명 이후에는 전광훈이라는 이색적 인물을 앞세워 광화문광장을 점거하고, 6월항쟁 이후에 그랬던 것처럼 촛불혁명 이후에도 사회발전에 재를 뿌리려 하고 있다. <요한서>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처럼 이들도 세상을 미혹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흐름을 볼 때 한기총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해방 직후의 서북청년단이 악명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군정과 이승만 집단의 지원 때문이었다. 6월항쟁 이후의 한기총이 기독교 진보운동과 통일운동에 맞서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정권의 지원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한기총은 미국은 물론 정권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보수파 기독교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녹록지 않은 때는 일찍이 없었다.

한기총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최근 10년간의 급격한 교세 위축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1년만 해도 한기총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체였다. 그러나 금권선거 및 이단 지정 문제로 회원단체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에 대표성을 내주고 말았다. 

급기야 2019년에 전광훈 체제가 등장해 물의를 일으킴에 따라 지금은 전체 기독교인의 3%밖에 대표하지 못하는 군소단체로 전락해 있다. 1989년 이후 30년간의 활동 결과가 그런 초라한 성적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주사파 50만 척결'을 선고하며 땅땅땅 내리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잘못을 눈물로 참회하고 땅을 땅땅땅 내리치며 생존의 길을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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