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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친구가 '시인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이라면서 <봄날은 간다>를 톡방에 올렸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 봄날은 간다 ----"

간드러진(?) 노랫가락이 금방 떠오른다. 가락은 귀에 익은데 막상 가사는 낯설다. '연분홍치마, 옷고름, 성황당--' 언제 쩍 노래더라! 검색해보니, 계간지 '시인세계(2004년 봄호)'가 현역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3편씩 써 달라'고 설문을 보내 종합한 결과다.

그러니까 16년 전 얘기였다. <봄날은 간다>는 압도적 1위로 선정된다. 작사가는 <비 내리는 호남선>, <물레방아 도는 내력>으로 유명한 손로원이고, 작곡가는 박시춘, 1950년 한국전쟁 때 백설희가 불렀으니 <봄날은 간다> 나이는 70세이다.

당시 60대 초반이던 시인 천양희(78)는 이런 소감을 올린다.

"귀동냥으로 배운, 태어나서 처음 부른 첫 유행가--, 친정집에 올 때마다 성황당에 들러 돌탑에 돌 몇 개 올리며 눈물을 보이던 언니가 좋아부르던 노래,--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이 대목만 부르고 나면 왠지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최근 광화문 글판에 올라간 천 시인의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감이다.

2위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2000년대 초반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랫말이다. 드라마작가 양인자가 작사를 하고 그의 부군인 김희갑이 곡을 붙여, 조용필이 노래한다.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첫 대목을 생각나게 하는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또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 대사들은 아직도 절절하게 가슴에 울린다.

대사가 너무 길어 노래방에서도 기계를 보지 않고서는 못 부른다. 작곡가 김희갑은 12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가왕 조용필도 처음 4년여 동안 가사를 못 외워 커다란 스크린을 보고서 불렀다'고 회상한다. 나로선 랩처럼 읽어 내리는 긴 대사가 노랫가락보다 더 좋았다. 그런데도 외우기는 힘들다. 어디서나 가사를 볼 수 있는 핸드폰 때문에 애써 외우지 않게 되나보다.

핸드폰 도움 없이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랫말은 몇 개나 될까? 좋아하는 노랫말은 많다. <고래사냥>, <푸르른 날>, <선운사>, <떠나가는 배>, <우리는>, <북한강에서>, <5.18>, <없는 노래> 등등. 그중 <푸르른 날>은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 단풍 드는데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미당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른 송창식은 '당초 클래식 가수에게 노래를 부탁하려 했으나 여의치 못해 직접 부르게 되었다. 내가 부르길 진짜 잘한 일'이라고 회상한다.

대중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잘 된 일 같다. 2016년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은 처음이다. '대중음악을 시로 승화시킨 공로'였다.

밥 딜런이 노랫가락 없이 시만 썼더라면 노벨상을 받았을까. 시에 가락이 붙으니 외우기 힘든 시가 술술 잘 외워진다. '푸른 길'을 걸으며 <푸르른 날>을 불러본다. 음유시인이 된 느낌이다. 푸른 힘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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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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