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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완전히 중독됐구나 싶었다.
 스마트폰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완전히 중독됐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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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시간 스마트폰 안 하기. 일명 '스마트폰 디톡스'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목표 기간은 66일, 습관이 바뀌는 평균 기간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다). 한 달이 약간 지난 지금, 왜 스마트폰 디톡스를 시작하게 됐으며 내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한번 정리해볼까 한다.

스마트폰 디톡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됐다. 스마트폰을 하면 할수록 스마트폰을 더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느낀 건, 몇 년 전 아마 스마트폰에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 과거의 그 날부터였을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자꾸 페이스북을 들락거리는 내가 얼마나 황당하던지. 이후 지금까지 페이스북 앱을 지웠다 깔았다,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활성해했다 별 난리를 다 쳤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자꾸 스마트폰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만 생각했지, 이런 행위 자체가 집중력을 빼앗아간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뭔가 조금 이상해졌다. 책을 예전처럼 길게 읽지 못했고, 책을 읽다가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만졌으며, 한 번 스마트폰을 만지면 하릴없이 그곳에 5분, 10분을 썼다(이때만 해도 유튜브 등의 동영상 서비스에 노출되기 전이라 '겨우' 10분에서 멈출 수 있었다). 

주의력이 저하된 것이었다. 책을 읽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인지했을 즈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슬로우>,<속도에서 깊이로>, 또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달콤한 로그아웃>, <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같은 책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는 주의력 저하가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엔 물론 인터넷(스마트폰)이 있었다.

내가 '스마트폰 중독'을 알아차린 순간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을 땐 글을 쓸 때처럼 자꾸 뇌가 내게 더 쉬운 길을 가라고 설득했다.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을 땐 글을 쓸 때처럼 자꾸 뇌가 내게 더 쉬운 길을 가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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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몇 권의 책에선 '인터넷 없는 삶 살아가기' 실험에 나선 사람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실험을 시작했다고 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주의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있다는 것, 주의력뿐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 인터넷에 취해 있느라 스스로를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킬 기회를 제거해버리고 있다는 것.

6개월간 인터넷을 끊고 산 그들 삶에 찾아온 변화를 읽는 일은 즐겁고 뭉클하고 신났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아, 어떻게 인터넷을 끊고 산단 말인가'와 '인터넷을 끊고 살 필요까지는 없겠다'였다.

먼저, 인터넷을 아예 끊고 살 용기가 안 났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6개월이나 어떻게 인터넷을 끊고 살 수 있을까. 다른 한편, 과연 몇 개월 인터넷을 끊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책에서 본 그들 역시 6개월 후엔 모두 인터넷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인터넷 통제였다. 인터넷을 끊을 수는 없지만 인터넷을 통제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타이머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내 주의력을 빼앗아갔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주의력을 붙들어두자는 의미였다. 주의력 저하에 가장 영향을 받을 때가 책을 읽을 때였으니, 책을 읽을 때면 타이머를 돌리기 시작했다. 20분씩. 20분을 다 돌면 또 타이머를 돌리고 돌리고. 이렇게 하루 두세 시간을 겨우 독서 시간으로 확보했다.

그후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간 내 스마트폰 배경화면엔 페이스북에 이어 인스타그램, 브런치, 밴드 등의 앱도 추가됐다. 당연히 내 주의력은 더 나빠졌다. 그래도 글을 쓸 땐 어느 정도의 주의력은 붙들어둘 수 있었는데, 이젠 글을 쓸 때마저 타이머가 필요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타이머를 돌려 20분만은 집중해서 쓰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날 보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자꾸 꼼수를 부렸고, 타이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글을 쓰면서, 내가 유독 언제 스마트폰에 손을 뻗나 관찰해보니, 하늘이 무심하게도 문장이 너무 써지지 않을 때였다. 5분, 10분 고민을 거듭해도 문장 하나를 써낼 수 없을 때, 앞으로 계속 앉아 있다고 해도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겠다 싶을 때, 내 뇌는 이 상황을 참기 힘들어했다. 인내가 필요하거나 깊은 사고를 요구할 때, 뇌는 내게 명령했다. 괜히 힘들게 글을 쓰지 말고, 그냥 얼른 스마트폰을 해.

글을 쓸 때도 이럴진대 책을 읽을 때야 말해 무엇할까. 가독성이 좋으면서 재미난 소설이나 에세이를3 읽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설득> 같은 고전 명작을 읽을 땐 '그만 읽고 자자'며 독서를 일부러 멈춰야 했으니까. 하지만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을 땐 글을 쓸 때처럼 자꾸 뇌가 내게 더 쉬운 길을 가라고 설득했다. 

이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요,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상황이 이어졌다. 책을 읽다가도 스마트폰을 하고, 글을 쓰다가도 스마트폰을 했다. 어렵사리 타이머를 통해 20분 독서나 글쓰기가 끝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20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정보,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들을 흡수하느라 바빴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가면서도, 병원 소파에 앉아서도 스마트폰을 했다. 5분 전에 스마트폰을 했는데 또 스마트폰을 했다.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또, 또 스마트폰을 하다 보니 나는 자주 짜증이 났고 이 상황이 불쾌해졌다. 스마트폰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완전히 중독됐구나 싶었다. 그래서 순간 결심했다. 내일부터 하루에 8시간은 스마트폰을 하지 않기로.

스마트폰은 우울함을 보상해주지 못한다

3월 17일 아침부터 스마트폰 디톡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알람을 진동으로 바꾸고 브런치나 인스타그램 알람을 껐다.

오전 8시. 이제 오후 4시까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예외는 두었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는 받고(어차피 문자나 전화가 자주 오지도 않고 오더라도 주로 일 관련이므로), 온라인 서점과 도서관 앱은 사용하기로 했다. 약속이 있을 경우 지도 앱을 켜거나, 역시나 약속이 있을 경우 지인이 카톡(카카오톡)으로 약속 확인을 해오는 등의 급한 용무 때만 카톡을 허용하기로 했다.

디톡스를 갑자기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을 다지기 위해 지금의 내게 도움이 될 책들을 읽었다. <시간 전쟁> 같이 시간 관리 전문가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느긋하게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빈도 차이였다."

나는 아무래도 중독이 된 것 같으니까 <크레이빙 마인드>를 읽으며 내가 중독이 된 원인을 찾으려 했다. 중독과 산만함에서 탈출하는 법을 소개한 이 책에서는 계기→행동→보상으로 이어지는 '보상에 의한 학습법' 때문에 우리가 중독에 빠진다고 말했다. '심심하다' 또는 '외롭다' 또는 '우울하다'(계기)→스마트폰을 한다(행동)→'재미있다' 또는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이 든다' 또는 '기분이 좋다'(보상)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서서히 스마트폰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이런 중독의 안타까운 점은, 보상에 의해 누리게 된 어떤 감정이나 기분이 사실상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몇 번은 우울할 때 스마트폰을 하면서 기분을 풀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스마트폰은 결코 우리의 우울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공허해질 뿐.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중독이 됐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면 또 으레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우리는 이거 저거 요거를 지금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뇌는 이거 저거 요거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겉핥기 식으로 급급하게 겨우 처리해나가고 있을 뿐.
 우리는 이거 저거 요거를 지금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뇌는 이거 저거 요거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겉핥기 식으로 급급하게 겨우 처리해나가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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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얘기하는 데 '멀티태스킹'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멀티태스킹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또 요거를 하는 등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이거 저거 요거를 정신없이 처리하는 것이다. 글 쓰다가 카톡 하고, 카톡 하다가 영상 보고, 영상 보다가 이메일 답장하고, 그러다 글 쓰고, 카톡, 영상, 이메일.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지금 내가 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할까.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없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 뇌는 멀티태스킹을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거 저거 요거를 지금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뇌는 이거 저거 요거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겉핥기 식으로 급급하게 겨우 처리해나가고 있을 뿐.

멀티태스킹은 전환 시간을 요구한다. A를 하다가 B를 하고, B를 하다가 C를 한다고 할 경우 A→B, B→C로 넘어갈 때마다 새로 집중하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읽은 어떤 책에서는 이 전환 시간을 15분이라고 말하는 책도 있었다. 그렇다면 A, B, C를 10분씩 끊어한다면?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보상에 의한 학습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멀티태스킹 자체에도 중독성이 있다. <다시, 책으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멀티태스킹을 하다 보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중독의 구멍으로 빠져든다. 이것은 뇌의 새것 중추가 반짝이는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고 보상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 다음 편에 계속)

시간 전쟁 - 많은 일을 하고도 여유로운 사람들의 비밀

로라 밴더캠 (지은이), 더퀘스트(2020)


크레이빙 마인드 - 중독과 산만함, 몰입과 회복력의 비밀

저드슨 브루어 (지은이), 안진이 (옮긴이), 어크로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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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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