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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사용률이 증가하면서 기억력이 저하되고 각종 건망증 증세를 보이는 '디지털치매'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키보드보다 펜과 종이를 사용하는 것이 두뇌 활동에 더 좋다고, 다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대뇌를 자극하여 인지 능력과 기억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인터넷 서핑 중에 본 내용이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지금 당장 필사하라"라고 했고 시인 안도현은 "필사는 손가락 끝으로 고추장을 찍어 먹어 보는 맛"이라고 표현했다. 필사의 중요성이나 효과를 이야기해봐야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린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필사를 권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두고 후일을 기약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 안에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나와 아이들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무료한 아이들은 예전보다 나의 일상에 더 관심을 가진다. 내가 읽는 책에도 관심을 더 가지고 식사 준비를 할 때도 내가 요리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상을 차린다. 처음엔 심부름이라 생각하던 일을 이젠 당연하게 한다.
 
필사의 힘 - 어린 왕자 아이들이 선택한 첫 필사책입니다.
▲ 필사의 힘 - 어린 왕자 아이들이 선택한 첫 필사책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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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엔 강물이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필사하고 있는 책 <어린 왕자>를 펼친다. 나도 책 전체를 필사하는 건 처음이다. 며칠이 반복되자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다.

"너희들도 해볼래? 보기보다 재미있어."

당연히 아이들은 거절한다. 책 모임이나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는 sns를 이용해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책 추천을 하기도 한다. 한 선생님이 자신이 필사하고 있는 책을 추천했다. <필사의 힘 월드클래식 라이팅북 세트> 중 아이들이 선택한 책은 <어린 왕자>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책이라는 이유였다.
 
나의 첫 필사책 처음으로 책 전체를 필사해본 책과 노트입니다.
▲ 나의 첫 필사책 처음으로 책 전체를 필사해본 책과 노트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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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왼쪽 페이지는 보통의 책이고 오른쪽 페이지는 노트처럼 밑줄이 그어져있다. 표지도 양장으로 되어 있어 필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 책에는 이런 문구도 있었다.

'필사를 마치고 책장을 덮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책이 완성됩니다. 소장 가치 200%입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책을 보여주며, "엄마는 책을 노트에 필사하니까 힘든데, 이 책은 편리하겠다. 그치?" 이렇게 회유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책이 근사해보였나 보다. 내 권유가 받아들여졌다.

강물이와 마이산도 각자의 책에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행위를 즐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강물이는 삽화가 실려 있는 페이지를 적을 때 그림도 그린다. 반면 마이산은 삽화가 실려 있는 페이지는 글자 수가 적어서 그 페이지를 좋아한다.

내가 필사하는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효과는 맞춤법과 띄어쓰기이다. 적지 않은 책을 읽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맞춤법을 틀린다. 그러나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다른 효과가 나타났다.
 
강물이와 마이산의 필사책 아이들이 필사 중인 책, 보아뱀 그림이 있는 책이 강물이책, 글자만 적혀있는 책이 마이산책입니다.
▲ 강물이와 마이산의 필사책 아이들이 필사 중인 책, 보아뱀 그림이 있는 책이 강물이책, 글자만 적혀있는 책이 마이산책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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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 강물아, 이 책 재밌지?
강물 : 응, 난 제목하고 어린왕자 그림만 알고 있었어. 내용을 읽어보는 건 처음이야.
마이산 : 나도. 필사하면서 읽으니까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어. 너는 어때?
강물 : 나도 그래. 책을 만드는 거 같기도 하고, 책을 쓰는 거 같기도 해.
마이산 : 강물아, 책 필사 다 하면 우리 둘이 이 책으로 독서토론 해볼래?


방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를 거실에서 몰래 듣던 나는 흠칫 놀랐다. '독서토론'이라고 하면 거부감을 표현하던 아이들이었다. 영화보고 이야기를 나누듯이 책 이야기를 이끌어 오던 나는 이 효과에 어리둥절해질 만큼 기뻤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언제가 끝일지 기약이 없다. 할 수 없는 일에 불평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마음먹고 선택한 필사하기. 점점 집 안에 있는 시간을 답답해 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필사의 힘 : 생텍쥐페리처럼, 어린 왕자 따라쓰기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미르북컴퍼니(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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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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