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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촬영한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2018년 11월 촬영한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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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 현장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떻게 이런 산골짜기에 이런 공장이 들어서 있나 하는 놀라움이고, 다른 하나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의 지독함이다.

환경오염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들른 외지인들이 강 건너에 철옹성처럼 지어진 석포제련소를 보며 잠시 서 있는데도 냄새가 심해서 코를 막을 정도인데 공장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마을 주민들은 어떨까? 악취를 내뿜는 제련소가 이런 산골짜기에서 50년 동안 가동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석포(石浦)의 옛 이름은 돌문이 열린다는 뜻의 석개(石開)였다. 돌이 많은 산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데 돌문이 열리면 1만 가구 이상 살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북동쪽을 흐르는 '석개천'과 석포에서 강원도 삼척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석개재'에서 옛 이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석포에는 돌이 많다. 어디를 가든 산과 계곡에 돌이 많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낙동강 최상류 험한 산악지대에 위치한 석포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유달리 많다. 바위는 태어난 곳에 머물면 풍경이 되지만 자리를 빼앗기면 불행이 닥치기도 한다.

금강송 말라 죽고 산 허물어지면서 일어난 열차 사고
     
2016년 7월 4일 아침, 석포역을 출발해 승부역을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석포제련소 1공장 맞은편에 있는 굴현터널로 진입하던 중 철로에 떨어진 낙석에 부딪혀 탈선했다. 사고 전 나흘간 비가 많이 내렸고, 사고 당일 아침에도 시간당 20.5㎜의 강한 비가 내렸다. 지름 1m 크기의 낙석 서너 개가 낙석방지용 펜스를 뚫고 철길 위에 떨어졌고, 기관사가 낙석을 발견해 급정차했지만 열차는 낙석과 충돌하여 궤도를 이탈한 채 터널 안에 멈췄다.

사고 나흘 뒤 8일 <중앙일보>가 사고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사고 현장 일대가 금강송 군락지인데 금강송이 말라 죽어 철로를 낀 산이 허물어지면서 낙석 사고 위험이 상존하던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금강송이 고사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터널 맞은편 낙동강 건너에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는데, 제련소가 뿜어내는 수증기와 연기가 주변 산으로 쉼 없이 흩어진다고 했다.

당시 현장을 확인한 이창석(한국생태학회장) 서울여대 교수는 "이산화황(아황산가스) 같은 대기오염 물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석포제련소 측은 "과거 발생한 산불이나 병해충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목 집단 고사하고 나뭇잎에서 중금속 검출
 
석포제련소 주변의 산림고사. 나무가 집단고사하고 활엽수 잎이 변색되어 말라가고 있다.
 석포제련소 주변의 산림고사. 나무가 집단고사하고 활엽수 잎이 변색되어 말라가고 있다.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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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제련소 주변의 산림 고사는 이전부터 제기되어 오던 문제이다. 2016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수목이 집단 고사하고 풀이 잘 자라지 못하며, 나뭇잎에서 카드뮴과 아연 같은 중금속 함량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소나무의 피해가 컸는데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대기오염에 대한 내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영풍의 주장처럼 산불의 흔적도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산불로 수목이 제거되면 하층으로 도달하는 햇빛의 양이 많아져서 하층 식생 발달이 촉진된다. 하지만 산불이 발생한 것은 2012년인데 4년이 지나도 초본이나 관목의 형성이 매우 미약하고 거의 회복이 되지 않아 산불을 산림훼손의 원인으로 보기 어려웠다.

산림훼손지의 토양이 심하게 산성화되어 있는 것도 확인되었다. 훼손지의 평균 산도(pH)가 3.85로 우리나라 산림토양 평균 산도인 5.5보다 낮았다. 대기오염물질이 비에 녹아 땅으로 스며들면서 토양이 산성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토양 생물과 식물체 뿌리는 물론 지하수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산림훼손과 토양 산성화는 제련소에서 배출되는 유독 가스와 중금속 분진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에서 조사한 대기확산 모델링에 따르면 입자형 물질은 제련소를 중심으로 반경 1.5~3km, 가스형 물질은 3~4km까지 영향을 미친다. 제련소 반경 1.5km 내에 있는 석포마을 전체를 포함해서 주변 농지와 임야의 상당 부분이 영향권에 포함되어 있다.

TSL 공정 도입 이후 바위마저 부서져 내려
 
석포제련소 1공장 부근 산.(2019.2) 산림이 훼손되면서 토양과 암석이 노출되어 유실되고 있다.
 석포제련소 1공장 부근 산.(2019.2) 산림이 훼손되면서 토양과 암석이 노출되어 유실되고 있다.
ⓒ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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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이 훼손되면서 토양과 암반이 드러나 유실되는 것도 확인되었다. 특히 1공장 부근의 산은 매우 심각하다. 바위가 부서져 흘러내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다. 비가 많이 내릴 경우 산사태와 같은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1970년 석포제련소 가동이 시작된 이후 시설 규모가 커지면서 주변의 산림 피해도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1공장 부근에서처럼 토양과 암석이 유실될 정도로 피해가 심해진 것은 2010년 전후부터다. 특히 아연 제련을 하고 남은 잔재를 처리하는 TSL(Top Submerged Lance) 공장이 가동에 들어간 2006년 이후 산림훼손이 심해진 것으로 확인된다.

석포제련소는 가동 초기 폐기물인 아연 잔재를 처리시설도 없이 공장 옆 빈터에 쌓아두다, 1970년대 말부터는 1공장 뒤편에 침전저류조(일명 폰드, pond)를 조성하여 불법적으로 저장하였다. 1996년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적발되어 2004년까지 치우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졌으나 그 뒤에도 침전저류조는 계속 유지되었다.

현재 카드뮴, 납 등의 중금속과 강산이 섞인 유독성 아연 잔재가 낙동강 바로 옆에 산더미처럼(수십만 톤 내지 100만 톤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됨) 쌓인 채 위험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산사태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 둑이 터질 경우 석포에서 안동호까지 엄청난 환경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석포제련소 1공장 뒤편에 있는 침전저류조.(2018.10.) 바로 옆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위험천만해 보인다.
 석포제련소 1공장 뒤편에 있는 침전저류조.(2018.10.) 바로 옆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위험천만해 보인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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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전저류조에 더 이상 아연 잔재를 쌓기가 어려워지면서 TSL 공정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TSL은 아연 잔재에서 금, 인듐, 은부산물, 동 등 희소금속들을 회수하고 나머지는 슬래그(제련 후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 공정이다. 2공장 부지에 TSL 1공장(2007)과 2공장(2009)이 차례로 준공되었고, 2015년에는 3공장 부지에 TSL 3공장이 준공되었다. 이 중 TSL 3공장은 불법적으로 건설되었다.

석포제련소는 2005년 3공장 부지에 특정대기유해물질배출 제4종(연간 8톤 이하 배출) 시설인 극판(전해조극판)공장을 짓는다고 허가를 받았으나, 제1종(연간 80톤 이상 배출) 시설인 TSL 3공장도 불법적으로 지었다. 주민반대운동이 있었으나 이행강제금 부과를 통해 양성화되었고 3공장은 2015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TSL 공장의 확대와 함께 인듐공장(2012), 전기동공장(2014), 귀금속공장(2017) 등도 차례로 준공되었다. 석포제련소는 폐기물로 취급되던 아연 잔재에서 유가금속을 추출해서 판매하고, 나머지는 슬래그로 만들어 시멘트 공장 등에 판매함으로써 매출과 이윤을 확대했다.

제련소 주변의 산림훼손은 점점 심해졌다. TSL 공정 도입 이전에는 1공장 부근 일부에서만 발견되던 산림훼손이 TSL 공정 도입 이후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2008년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경제부처 질의에서 김광림 의원(안동)은 제련소 인근 야산 고목들이 말라 죽자 제련소 측에서 매입하여 나무를 심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산림 고사가 더욱 심해지고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음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된다. 대기오염물질이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산 경사면과 산등성이에 있는 산림을 훼손시킨 것으로 보인다.
 
아연잔재를 처리하는 TSL 공장이 건설되기 전인 2004년 9월의 석포제련소. 1, 2공장 주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산림훼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연잔재를 처리하는 TSL 공장이 건설되기 전인 2004년 9월의 석포제련소. 1, 2공장 주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산림훼손이 눈에 띄지 않는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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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의 석포제련소. 1공장 옆, 2공장 맞은편에서 산림훼손이 매우 심각하며 훼손 지역이 주변으로 점차 확대되는 모양을 띠고 있다.
 2018년 10월의 석포제련소. 1공장 옆, 2공장 맞은편에서 산림훼손이 매우 심각하며 훼손 지역이 주변으로 점차 확대되는 모양을 띠고 있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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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상습적 조작
 

2019년 7월 영풍 석포제련소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가 상습적으로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환경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석포제련소는 실제 측정된 수치를 낮추거나 측정을 하지 않았음에도 측정을 한 것처럼 조작하는 방법으로 2016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 3년간 측정대행업체로부터 1868부의 대기측정기록부를 허위로 발급받았다.

먼지와 황산화물 농도값을 배출허용기준의 30% 미만으로 조작하기도 했고, 1급 발암물질이면서 특정대기유해물질인 비소(As) 항목의 실측값이 배출허용기준(2ppm)의 19배를 초과한 39.362ppm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405배나 낮은 0.028ppm으로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단속에 대비해 수시로 관련 자료를 파기했고, 수수료 지급을 미루는 등의 방법으로 측정대행업체를 길들이는 '갑질' 행위도 확인되었다.

이 사건으로 영풍 석포제련소의 임원 한 명이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1년 2월, 2심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선고를 내리면서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계획적으로 이루어져 법 위반의 정도가 중하고,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했다. "환경이 훼손되고 국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2심 선고가 있던 2020년 2월 14일 영풍 석포제련소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석포면민과 봉화군민께 깊은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공기뿐만 아니라 강물과 토지 모두 '오염제로(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오염방지 기술개발과 시설 투자, 과거 오염된 토양의 정화에 비용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영풍 석포제련소가 사건 관련 측정대행업체에 업무를 위탁하고 측정기록 조작을 요구한 것은 2006년 3월경이다. 대기환경보전법상 대기측정기록부의 의무보관기간이 3년이어서 2016년 8월부터 3년 치의 조작만 확인되었지만, 그전에도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영풍은 그동안 석포제련소 부근 산림이 고사하는 것을 버젓이 지켜보면서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상습적으로 조작했다. 법 제도가 미비한 1970년에 제련소 가동이 시작되었음을 고려해 보면 가동 초기부터 오염물질이 무단으로 배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불법이 제때 밝혀지고 법적 처벌이 내려졌더라면 석포제련소는 벌써 가동이 중단되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행정기관의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늘날 석포제련소 주변의 자연환경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훼손된 자연 복원하려면 오염원부터 차단해야

훼손된 산은 복원되어야 한다. 환경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식생의 쇠퇴는 다른 생물집단에 악영향을 미치고, 토양의 산성화는 전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차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훼손된 생태계가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

석포제련소 주변 산을 복원해서 본래 석포의 모습으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훼손된 산지를 정비하고 새로 나무를 심어야 하며, 산림이 형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해서 건강한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염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MBC <PD수첩> '책과 독, 영풍의 두 얼굴'(2019.6.11)에서 확인된 석포제련소는 녹슬고 비가 새는 등 매우 낡아 있었다. 부분적인 시설개선을 한다고 해도 50년 된 낡은 공장에서 오염이 근원적으로 차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석포는 애초에 아연제련소가 들어설 장소가 아니었다. 1960~70년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석포에 제련소가 들어서게 되었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생태계 위기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건강한 자연환경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며, 잘 보존해서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석포의 대부분은 산이다. 오랜 세월 나무와 바위가 생명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곳이다. 안타깝게도 석포제련소 주변 산은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한 자리에 서서 사람보다 오래 살 운명을 타고 난 나무들이 바람막이도 없이 버티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서 나무와 한 몸이 되었던 바위도 부서지고 있다. 나무가 사라지고 바위마저 스러지는 제련소 주변의 산, 이곳은 '석'포가 아니다. 석포의 생태계가 더 이상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석포 사람들 (1)
영풍 석포제련소가 가동된 50년 동안 제련소 노동자와 석포마을 주민들은 제련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해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제련소 측은 악취피해에 대해 탐문조사를 한 결과 민원 발생은 없었다고 한다. 2001년 석포중학교에 재직했던 조영옥 선생님은 석포 생활의 일면을 시로 표현했다.
 
석포 사람들 (1)
 
어느 저녁
그렁그렁한 별빛
주워 모을 듯 두 손 모아 쥐며
밤나들이를 한다
좁은 골목길 끝
국내 최대 영풍제련소
턱없이 낮은 굴뚝은
하얀 연기를
울큭울큭 토하고 있다
초라한 양철지붕
담 없는 홑집을
연기는 살아 움직이며 안개처럼 덮친다
그 그림자 아래
숨죽인 사람들
오늘 저녁 밥상을 위해
오순도순 둘러앉아
매큼한 연기쯤은
말없이
꿀떡 삼킨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연재 글은 ‘⑤ 끊이지 않는 금강소나무의 수난’입니다.


태그:#영풍 석포제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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