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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자신이 누리는 문명의 혜택을 되돌아보게 된다. 문명의 혜택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 빛은 바이러스 감역을 신속히 진단해 그 처치에 몰입하는 과학적 의료기술의 힘이다.

이번에 확인된 것은 혁신적 의료기술과 더불어 의료의 공공화이다. 나라에 따라 코로나가 환란으로 많은 생명을 잃게 된 것은 한 나라의 공공의료서비스 수준과 밀접히 연관된다.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유독 희생자가 많았던 것은 그들이 선진 문명국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체제가 퍽 부실한 탓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환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소위 서구 선진국의 민낯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문명에 관한 한 선진이 후진이고 후진이 선진이라는 게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당대에 이런 문명의 변곡점을 확인하고 경험하게 된 것이 나로서는 전화위복이다. 해서 위기는 기회다. 지금 왜 문명의 변곡점을 말하게 되는가? 지구의 역사에 견줘 인류의 역사는 퍽 짧다.

우주력에서 명절을 지정한다면 12월 26일은 '어버이 날'이란다. 약 2억 년 전 그날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양육하는 포유류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12월 31일 저녁 7시쯤 인류가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진화의 길에서 갈라졌다. 같은 날 밤 11시 52분, 아프리카에 호모 사피엔스들이 돌아다닌다. 이들은 지구에서 이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벌인다. 그냥 먹고 살려는 것이 아닌 문명창조 행위를 시작한 게다. 마지막 30초, 약 1만2천 년 전 찾아온 간빙기는 인류에게 문명을 선사한다. 농업혁명이 시작되자 수렵 채집생활을 끝내고 공동체적 정주생활로 들어간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세'(Anthropocene)를 살아가는 현세 인간들은 지구시스템의 힘과 인간의 힘 간에 균열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해 졌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인간들은 지구의 생명체를 6번째 대멸종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해서 우리는 문명의 대전환을 말한다. 그것은 과학기술이 안겨준 물질문명에서 자연친화적인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갖 징조로 봐서, 앞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역병은 빈발할 것임이 틀림없다. …(중략) 현실이 이런데도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백신과 치료제를 찾느라고 허둥댈 것인가. 당장은 기술적 해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모두의 정신적․육체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이라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의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손 씻기도 아니다. 또, 장기적인 고립생활이 면역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한겨레> 2020.04.17)

그럼 정신적·육체적 면역력을 어떻게 키울 건가? 노자는 되돌아봄이 도의 움직임(반자 도지동 反者, 道之動)이랬다. 정신적 면역력을 위해 우리는 뭣보다도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를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 물질적 풍요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마구 버리는 문화가 지구를 쓰레기 더미로 몸살 앓게 한다. 옛날에는 가져가는 자가 도둑이었지만 지금은 버리는 자가 도둑이란다. 그만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일 터.

환경운동가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최병성 목사는 <일급경고: 쓰레기 대란이 온다>(2020)에서 "서울과 경기도 및 인천시가 사용 중인 수도권 매립지의 수명이 채 5년도 남지 않았다. 새로운 매립지를 조성하는 데에 7~10년이 걸린다. 제2의 쓰레기 대란이 예고되는 이유"라고 경고한다. 섬뜩하다. 2018년 4월 재활용품 수거 거부에 따른 쓰레기 대란에 이어 또 한 차례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을 거란다.

내가 사는 아파트만 해도 코로나19 와중에 재활용품 쓰레기 수거 거부로 당황한 적이 있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은 결국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서부터다. 기후위기를 완화하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소박하게 살면서 좀 더 불편하더라도 견뎌낼 용기가 필요하다. 몸의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걷기를 일상화하고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소한 버릇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포스트 코로나', 앞으로 바꿔야 할 것
 
<의자의 배신>은 편리함이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를 말해준다.
▲ <의자의 배신>(2020) 책 표지 <의자의 배신>은 편리함이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를 말해준다.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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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의자의 배신>(2020) 이라는 책을 읽고,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준 편리함이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몸은 오래전부터 자연선택에 적응해 오는 동안 먼 옛날부터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몸의 DNA는 이미 인류의 수렵채집 생활이래로 고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몸은 수렵과 채집처럼 실외활동을 갈망하고 있으나, 농업용 몸은 인간 버전 2.0으로 바뀌게 했다. 그 후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용 몸은 새로운 종류의 인간, 즉 인간 버전 3.0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의 지식정보사회에서 일하는 사무실 건물은 인간 버전 4.0을 선포하고 있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스마트폰 화면과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 하루에 수 킬로미터나 움직이지만 발은 일주일 동안 1킬로미터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의자의 배신>에서 저자 바이바 크레건리드(V. Cregan-Reid)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통 일주일에 약 70~100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실제로 이 시간은 우리의 수면 시간보다 길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는 시간보다도 길다. 일주일에 한 번, 고작 몇 분 동안 고관절 굴근 스트레칭을 포함한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근육 위축 속도를 늦추는 데에 거의 효과가 없다. 근육 위축 속도는 마치 북극에 떠다니는 빙산이 점차 빠르게 녹는 것처럼 더 빨라지기만 할 뿐이다. 우리 몸은 중년 초기의 어느 시점에서 이런 빙산의 상황에 부딪치기 마련이며, 대다수에게는 그 상황을 멈출 능력이 없다. (p.22)
 
꼭 나를 보고 꼬집어 지적하는 듯하다. 나는 젊어서부터 앉아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 탓에 이미 중년 초(30대 중반)에 허리통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디스크 수술 예약까지 해 놓았다가 노련한 정형외과 의사를 만난 덕분에 일상생활 동작과 자세교정을 통해 서서히 완화·조정할 수 있었다. 허리 요통을 앓고 나서는 조금만 피곤해도 요통에서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 훨씬 세월이 지나 요통은 사라졌으나 항문질환(치질) 때문에 한 동안 고생을 하였으나, 수술을 하지 않고 다행히 완치됐다.

하지만 회갑이 지나 정년 무렵(노년초기)이 되니 전립선 비대증이 나타나, 지금도 저녁에 약을 한 알씩 복용하고 있다. 더러 약을 빠트리기도 하지만 소변보는 데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고 운동부족으로 인해 나이 들면서 시리즈로 계속 이런저런 증상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수술을 하지 않고도 그냥 배겨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서 지금은 몸의 면역력을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 앉아 있는 시간을 가능하면 줄이고, 서 있거나 가볍게 걸어 다니는 시간을 가지려고 나름 노력한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는 것도 일어선 채로 보고 컴퓨터에 앉아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은 최대한 단시간에 집중해서 처리한다. 지금처럼 자판기에 앉아 글쓰기 작업을 하더라도 한꺼번에 한 시간 이상은 거의 지속하지 않는다. 자주 쉬고 끊으면 글쓰기도 편하다.

이 나이에 시간에 쫒길 일은 아예 맡지를 말아야 한다. 일도 버릇들이기에 달렸다. 저녁에 뉴스를 볼 때도 가능하면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왔다 갔다 하면서 보다가 잠자리에 들면 쉽게 잠들어 버린다. 몸이 약간 피곤하다 싶으면 자연히 숙면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네 삶의 양식을 바꾸는 일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소비를 줄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에너지 소비를 줄여가는 게 긴요하다. 어떤 형태든 소비는 쓰레기를 남긴다. 원천적으로 쓰레기를 줄여야 환경공해를 줄이고 그래야 기후위기를 완화하고 바이러스 재앙을 줄일 수 있다. 해서 우리에게 '포스트 코로나'의 삶은 곧 소박한 생태적 삶의 복원이어야 한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이 긴요하다.

의자의 배신 - 편리함은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

바이바 크레건리드 (지은이), 고현석 (옮긴이), 박한선 (해제), arte(아르테)(2020)


태그:#포스트 코로나, #의자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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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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