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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선대위원장의 격려 방문
 이낙연 선대위원장의 격려 방문
ⓒ 진선미 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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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진선미 의원을 알게 된 것은 그가 호주제 폐지를 주도했을 때였다. 물론 호주제 폐지를 위하여 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지만, 지금 봐도 흔치 않은 이름 석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선미'라니.

게다가 그는 여성이었다.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받을 것이고, 변호사로서 가지고 있을 휴머니즘이 곡해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을 걸었다. 현실과 타협하거나 피하지 않고 시대정신을 구현했다. 단지 그것이 옳은 길이기에, 아주 오래된 만큼 쉽게 건드릴 수 없는 호주제라는 구질서를 해체시키기 위해 자신을 걸었다. 그것은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비례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진선미 의원을 지척에서 보게 된 것은 그가 비례대표 이후 내가 살고 있는 강동갑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던 정치인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진선미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되다
 
 남편의 정중한 인사
 남편의 정중한 인사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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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강동갑은 명일동의 대형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 출신의 국회의원이 있던 지역으로, 예전부터 보수적인 동네로 소문난 곳이었지만 조금씩 변화의 기류도 보였다. 바로 그 전에 민주당 출신의 박원순 시장이 더 많은 득표를 했던 곳이고, 민주당 출신의 이해식 구청장이 당선된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진선미 의원은 열심히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로서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었으며, 또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만 지지했고, 진선미 의원은 당선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다시 선거의 계절은 다가왔고, 진선미 후보는 3선을 준비했고, 때마침 나는 자유의 몸이었다. 의도치 않게 1월부터 센터를 그만둔 무직이었고, 때문에 마음껏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타이틀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은 내가 선택하는 주제와 보도내용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나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뽑을 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굳이 진선미 후보 캠프에서 임명장을 받고, 페이스북 배경화면을 바꿨으며, 사람들에게 진선미를 이야기했다. 길거리에서 그를 위해 박수를 쳤고, 지하철 역사에서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독려하였다. 진심을 다해 진선미를 외쳤다.

누군가 물었다. 원래 진선미 후보를 좋아했냐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예전에는 아니지 않았냐고. 대답했다. 봉인이 풀렸으니 내가 좋아하는, 내가 신뢰하는 국회의원을 당선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그것은 현재의 내가 역사의 진보에 한몫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는 분명 나를 대표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강동갑의 여론조사
 
 기호1번과 기호2번의 플래카드
 기호1번과 기호2번의 플래카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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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초반 진 후보 캠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강동갑이 여전히 보수적인 지역이었지만 진선미 후보와 비교하여 미래통합당의 이수희 후보는 전략공천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너무 낮았으며, 갑자기 선출되는 바람에 지역기반도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언론도 딱히 강동갑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곳이 있다면 재개발이 끝나고 대규모 고가의 아파트가 들어온 고덕동 지역이었다. 해당 지역은 이전 데이터가 없는 만큼 그 동네 표심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만큼 캠프는 고덕동에 많은 공을 들였다.

또한 상대 후보는 지역의 현안 중 하나였던 지하철 9호선 개통과 관련 지역에서 퍼지는 헛소문으로 진 후보를 계속 공격했다. 걸리는 현수막마다 온통 지하철 이야기뿐이었다.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리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캠프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사람들 역시 진 후보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난했던 선거판의 분위기는 6일 이후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로이슈'라는 인터넷 매체가 데일리리서치에게 의뢰해 여론조사를 했고, 그 결과 진 후보가 41%, 이 후보가 47.5%를 기록했다고 밝힌 것이다. (해당 조사는 로이슈가 데일리리서치에 의뢰해 4월 4일부터 5일까지 서울특별시 강동구(갑)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남녀 726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방법은 무선 ARS 54% 유선 ARS 46% 비율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6%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수희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지역을 찾은 가로세로연구소와 개탈 선거운동원
 이수희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지역을 찾은 가로세로연구소와 개탈 선거운동원
ⓒ 가로세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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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를 밝히지 않는 그들
 정체를 밝히지 않는 그들
ⓒ 진선미 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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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해당 여론조사의 유선비율이 46%에 이르는 만큼 믿을 수 없다고 서로 웃고 넘기는 듯했지만,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여론조사를 의뢰한 이들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지지자로서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이후 혹자는 진 후보가 상대 후보에 비해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또 어떤 이는 상대편 후보의 세몰이가 장난이 아니라며 걱정했다. 지지자들은 며칠 뒤 강동갑을 찾아온 <가로세로연구소>를, 지역 곳곳에 출몰해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있는 개의 탈을 뒤집어 쓴 사람을, 그리고 이수희를 연호하며 거리행진도 마다않는 어르신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 모든 게 우연일까? 미래통합당은 강동갑을 해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답은 없었다.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더 열심히 진선미 후보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진선미 후보가 이번에는 위험한 거 아니냐고 질문을 했지만, 그때마다 잘못된 여론조사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꼭 투표하라고 독려했다. 선거기간 동안 투표독려 피켓을 들고 지하철 역사에 나가 서 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하고 지나쳤다.
 
 잊지말고 투표하자
 잊지말고 투표하자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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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시작, 사전투표의 힘

드디어 선거 당일인 15일, 다른 때 같았으며 어디서 치맥을 하며 어떤 언론의 선거개표방송을 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캠프의 요청으로 오후 5시부터 강동구 선거 개표참관을 했다. 이번에는 비례정당 수개표 때문에 시간이 길어질 것이니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선거개표소로 향했다. 학교 강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투표함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6시 15분. 첫 번째 투표함이 열렸고, 사람들은 배운 대로 일사분란하게 자신의 역할을 했다.

투표용지를 지역구와 비례정당으로 나누고, 지역구는 다시 기계를 통해 1번과 2번, 7번으로 나누고, 다시 3명의 사람이 그 나눠진 용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 심사 담당자가 무효표가 된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분류했다. 나의 역할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되, 특히 무효표가 제대로 분류되는지 지켜보는 일이었다. 
 
 제대로 개표하는지 참관 중
 제대로 개표하는지 참관 중
ⓒ 류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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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과 강일동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진선미 후보가 상대 후보보다 열세였다. 투표함 당 적어도 100표에서 크게는 700표 차이까지 났다. 특히 재개발이 끝나고 들어온 고덕동 고가 아파트 지역에서는 이수희 후보가 진선미 후보를 크게 앞섰다. 불안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불안함도 잠시. 오후 10시쯤 사전투표함이 열리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강동의 경우 사전투표율이 27%가 넘었는데, 모든 지역 사전투표함에서 진 후보가 이 후보를 크게 앞섰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승리였다.

최종 투표 결과는 진선미 51.5% 대 이수희 47.7%.

민주당 참관인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개표를 지켜보던 미래통합당 참관인이 자포자기하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차명진 후보 막말 때부터 끝났다며, 아쉬워했다. 비록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주 마주치는 동네 이웃으로서 진심어린 위로를 보냈다. 결과가 어쨌든 우리 모두 늦은 시간까지 수고하지 않았던가. 선거는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당선의 기쁨
 당선의 기쁨
ⓒ 진선미 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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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개표소를 걸어 나오는데 휴대폰으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진 후보를 걱정하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아직 진 후보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이는 진 후보가 3000표로 앞선 관외 사전투표함이 무슨 영문인지 아직 합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장과 방송의 괴리. 이러니 지역구 담당자에게 전화하는 윈지코리아의 박시영 대표가 방송보다 빠를 수밖에.

어쨌든 강동갑의 국회의원은 다시 진선미다. 그는 우리를 대표하여 최선을 다해 국정에 참여할 것이고, 우리는 다시 깨어 있는 시민으로 돌아가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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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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