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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는 텃밭에서 젊은 호박부터 늙은 호박까지 무려 60여 개를 수확했다. 바로 친정엄마의 마술같은 손길 덕분이었다. 커다랗고 진주황색의 늙은 호박에서 나온 호박씨로 앙증맞은 호박 모종을 만들어주셨다. 어느 날 친정에 가보니 스티로폼 박스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양팔을 들고 있던 모종을 텃밭에 심었다.

지인이 내어준 텃밭과 인연을 맺은 지 삼 년째다. 반 백년이 넘은 인생에서 누군가를 매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져다준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바로 이 텃밭이다. 이 친구를 만나서 말 그대로 '뿌린대로 거두리라'를 체험했다. 정성스럽게 돌보고 다독이면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음도 알았다.

첫해 만난 텃밭의 모습은 회색빛, 삶의 고뇌가 가득한 크고 작은 돌멩이들의 천지였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희망을 보았다. 자양분이 되어줄, 수많은 땅속 벌레들 덕분이었다. 두렁, 고랑, 거름, 퇴비 등의 말도 모르고 파종기, 수확기의 일정도 몰랐던 나는 무려 네 두렁이나 차지했다. '희망텃밭'이란 울타리에 모인 10여 가구의 초보 농부들과 함께 작물키우기 레이스에 돌입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텃밭에게 조건부 사정을 얘기했다. "그대가 도와주면 올해도 연탄기금을 마련하는 바자회를 열 수 있다"고. 해마다 동절기 동안 지역의 독거노인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학생 봉사활동 지도를 하고 있었다. 항상 지인들의 기꺼운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텃밭을 만나는 순간 내가 진정으로 할 일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내 손으로 작물을 심고 거두어서 연탄기금을 위한 바자회를 여는 것이었다.

첫해는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상추 등의 잎채소류를 중심으로 10여 종을 심었다. 유기농을 지향하며 비료 사용 없이 길러낸 작물들을 수확이 될 때마다 주말장터를 세웠다. 학생들은 열심히 홍보하고 지인들은 기꺼이 사 주었다. 그해 연탄 900장, 수혜자는 독거노인 3가구였다.

두 번째 해는 두렁 수를 늘려 다섯 두렁을 일구었다. 호박과 참외, 옥수수, 고구마를 추가했다. 파종과 모종을 한 뒤 두 달여 만에 피어난 작물들을 보면 세상만사 시름이 다 사라졌다. 신기한 것은 전 해보다 수확량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연탄 1200장, 4가구에 연탄을 기부했다.

올해는 텃밭과의 세 번째 만남이다. 지난 3월, 지인들과 첫 삽을 떴다. 두렁 수를 여섯 두렁으로 늘렸다. 호박덩굴만을 위한 자리를 따로 두었으니 땅을 차지하려는 나의 욕심이 끝도 없어서 정말 놀랐다. 농사를 더 잘 지어서 연탄 수도 늘리고 수혜 가구 수도 늘려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3년차 텃밭 농사의 시작.
 3년차 텃밭 농사의 시작.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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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 작물은 감자였다. 잡초를 억제하고 습기를 보존한다고 해서 멀칭이라는 비닐작업도 했다. 강원도산 수미감자의 씨감자를 심었다. 심은 지 2주 만에 씨감자마다 쏙쏙 올라온 푸른 싹은 입안의 박하사탕이 주는 느낌으로, 시원달콤한 행복을 주었다. 길고 긴 여름 하지에 넝쿨째 올라올 감자를 생각하면, 그 옛날 보리고개를 넘으며 배고팠던 사람들에게 시간을 앞당겨 함께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하던 놀이가 있었다. '감자가 싹이나서 잎사귀에 감자 감자,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감자의 싹을 떠올린 동심의 세계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오늘도 그 리듬을 중얼거리며 싹이 난 감자를 만져보며 사진을 찍었다. 약속했다.

"감자야 감자야, 자주자주 올 테니 재밌게 얘기하자. 네 얘기도 듣고 내 얘기도 들려주마. 대신 풍성한 결실을 다오. 내가 줄 것은 오로지 감사한 마음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린 어느새 많은 신조어에 익숙해졌다. 당신 이름석자 정도만 한자어로 아시는 팔순의 친정엄마도 아신다. '사회적 거리', '온라인 수업', '자가격리', 심지어 '코비드19(COVID19)' 까지.
 
 내 손으로 작물을 심고 거두어서 연탄기금을 위한 바자회를 연다.
 내 손으로 작물을 심고 거두어서 연탄기금을 위한 바자회를 연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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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찌 사람을 멀리 할 수 있다냐. 조심은 해야지. 밭에 가서 이것저것 심으면서 멀찍이 앉아 얘기하면 되겄지. 안그냐?" 라며 함께 밭에 가셨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졌다고 슬퍼하지 말자. 그만큼 자연과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으니. 3월 봄은 꽃샘추위로, 4월 봄이면 황사로 늘 우리들의 마음은 추웠고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코로나19가 지배하는 요즘의 하늘은 유독 맑고 푸르다. 게다가 봄꽃 향연들의 잔치가 매일 열리는 사월이다. 하늘 아래서 자연이 베푸는 은혜로움을 즐기는 내가 진정 신선이다.

그리움으로 몸이 아픈 4월, 공감만이 치유책인 4월이라고 했던가. 그리움의 텃밭에서 소리없이 강단지게 피어나는 새싹들, 그리고 그들을 보듬고 안아줄 텃밭 농부들의 손길 속에서 공감의 소리를 듣는다. "그래! 사회적 거리를 채울 수 있는 지혜가 여기 텃밭에 있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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