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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최배근 상임선대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참석자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자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자제시키고 있다.
▲ 박수치는 민주당, 자제시키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최배근 상임선대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참석자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자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자제시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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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밤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여당의 역대급 압승이라는 결과도 아니고, 이번 선거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도 아니다. 거물급 정치인을 꺾은 신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과거 지역 대결 구도로 회귀했다는 지적도 물론 아니다.

당선이 확실시 됐을 때 이낙연 전 총리가 주위 사람들의 환호를 제지한 행동이 그것이다. 그는 여당의 선대위 상임위원장으로서 이번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동시에 '정치 1번지'라는 종로에서 출마해 야당 대표를 큰 표 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손사래는 최종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 바로 세월호 참사 6주기임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유가족을 비롯해 그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이들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표한 것이다. 
      
오늘로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지만, 사회적으로 추모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물론 코로나19의 확산에다 총선까지 겹쳐 관심에서 밀려난 탓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뜬금없는 손사래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잊고 지나칠 뻔했다는 이도 있다.
   
학교 교육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예년 같았으면 학생회실 문턱이 닳을 정도로 분주했을 요즘이다. 해마다 4월이면 학생회 주도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 행사를 진행해왔다. 참사가 일어난 뒤 2015년부터는 학사력에 4월 16일 즈음을 추모 주간으로 못 박아둔 학교가 대부분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의 교복과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린다. 준비가 안 된 친구들을 위해 학생회에서 방과 후나 야간자율학습 시간 등을 이용해 삼삼오오 모여 리본을 만들기도 한다. 적어도 4월만큼은 노란 리본이 명찰을 대신하고 있다.
  
작년 5주기 때는 재작년 4주기 때와는 또 달라야 한다며 조금은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해마다 해오던 리본 만들기와 노란 종이배 접기 외에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이다. 이름하여 '세월호 리본 플래시몹.'
 
작년 세월호 참사 5주기에 맞춰 교정에서 진행한 '노란 리본 플래시몹' 장면
 작년 세월호 참사 5주기에 맞춰 교정에서 진행한 "노란 리본 플래시몹" 장면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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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아이들이 각자 추모와 다짐의 글귀를 적은 노란 종이를 들고 나와 리본 모양을 만든 뒤 해산한다는 복안이었다. 교실에서 나와 리본을 만들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데 허용된 시간은 3분여. 추모곡인 <천 개의 바람이 되어>의 길이에 맞췄다.

노래가 나오는 동안, 건물 밖에서는 일사불란하게 리본 모양을 만들었고, 교실 안에서는 창 밖으로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동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뭉클한 5주기를 보냈고,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얼마 전 교육청으로부터 세월호 추모 행사에 관한 한 장의 공문이 내려왔다. 등교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학교의 상황에 맞게 온라인을 활용하여 계기 교육을 실시하라는 취지다. 올 초 미리 세워둔 계획이 어그러진 상태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무슨 세월호 추모냐며 힐난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코로나가 선거판까지 통째로 집어삼킨 데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이 지속되고 있는 마당이니, 적어도 올해만큼은 건너뛰자는 의견이 다수다. 당장 함께할 아이들도 없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거다.
  
해마다 4월이면 초중고 교문마다 내걸렸던 노란 추모 현수막을 유독 올해는 보기가 힘들다. 출근길 초등학교 세 곳과 중학교 두 곳, 고등학교 한 곳을 지나는데, 안타깝게도 걸려 있는 학교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신에 코로나 확산 예방 현수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년과 달리 모든 언론이 종일 코로나와 선거만 다룬 탓이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 교육에선 세월호 참사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교사들 대부분이 우리의 학교 교육은 세월호 참사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단언할 정도로 그 영향이 크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됐다. 학교에 '안전' 담당 행정 부서가 생겨났고, 사고 예방을 위한 매뉴얼이 꼼꼼하게 정비됐다. 교사들이 '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 안전법)'에 경각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형식적이었던 교육 방식부터 달라졌다. 생활안전, 교통안전, 성폭력 신변안전, 약물중독 사이버안전, 재난안전, 직업안전, 응급처치 등 이른바 '7대 안전교육'을 의무화했다. 별도의 계기교육을 실시하거나, 외부 전문가들이 학교를 직접 방문해 교육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 방역에 나름 성공한 것도,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함께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는 우리 사회가 6년 전 세월호 참사로부터 얻은 교훈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추모와 기억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다.

온라인 추모방식을 기획하다
  
아침 출근길 거리에서 만난 세월호 6주기 추모 캠페인 모습
 아침 출근길 거리에서 만난 세월호 6주기 추모 캠페인 모습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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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의 공문을 받아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당장 문자와 가정통신문을 보내 아이들에게 내일이 세월호 참사 6주기라는 사실부터 알렸다. 공교롭게도 총선 다음 날이라, 선거 결과를 두고 어른들끼리 갑론을박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까맣게 잊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 교무실 캐비닛에는 노란 리본과 종이가 수북이 쌓여 있다. 올해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 건넬 요량으로 보관해온 것이다. 해마다 4월 16일 아침에 교문에서 선배들이 등교하는 후배들의 가방에 노란 리본을 걸어주며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의식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휴업으로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대면 추모 행사는 불가능하다. 아직도 온라인 개학과 원격수업이 어색하기만 한데, 단순한 안내 외에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저 교육청에 제출할 실적 보고용이 아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동료교사들과 함께 모색했다.

우선 영화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지난 아카데미영화제에 출품한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을 가정에서 함께 시청하도록 안내했다. 러닝타임이 29분으로 짧은데다 현재 유튜브 버전이 공개되어 있어 원격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접근하기도 수월하다.

일부 교과에서는 이 영화를 아예 계기 수업의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제목인 '부재(不在)'의 중의적 의미가 실시간 토론 수업의 주제로 제격이라는 추천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카데미영화제의 본상 후보에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주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계획했던 추모 행사를 온라인 방식에 대입해볼까도 싶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과 별이 된 세월호 아이들을 일대일로 맺어 기억하도록 하는 '마니또에게 편지쓰기'를 진행할 요량이었다.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수와 한 학년 재학생 수가 얼추 비슷해서다.

참사로 희생된 열두 분의 선생님들에게도 각각 동료교사들 중에 '마니또'가 배정된다. 자신의 이름과 '마니또'의 이름을 동시에 적은 간이 명찰을 만들어 세월호 추모 주간에 가슴에 패용하게 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았다. SNS를 통해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각자 '마니또'를 배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과목별 원격수업도 버거워하는 마당에, 편지를 써서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건 무리였다. 시작도 전에, 몇몇 아이들은 이를 숙제처럼 부담스러워했다.

출근 직후 몇몇 아이들에게 부러 전화를 걸어 오늘이 세월호 참사 6주기라는 말로 그들의 아침잠을 깨웠다. <부재의 기억>을 소개한 가정통신문을 받았는지 물었더니, 대뜸 총선 결과가 놀라웠다며 동문서답을 했다. 인터넷 포털 첫 화면에도 온통 선거 이야기뿐이었다.

오늘 아침 뭐라도 해야겠기에 교문에 노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고 오가는 이도 없어 봐줄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렇게라도 나타내고 싶었다. 4.15 총선 이튿날인 오늘은 세월호 참사 6주기가 되는 날이다.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학교의 교문에 노란 추모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학교의 교문에 노란 추모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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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참사 6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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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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