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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예술가,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상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고민을 엿보고 인간으로서의 좌절, 고통, 자부심, 고집을 조명해보면서 그림이 전달하는 의미와 그 너머 화가의 존재를 인식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증권거래인으로 일하다 주식시장 붕괴로 직장을 잃고 1883년 전업작가가 된 폴 고갱에게 예술은 평생에 걸친 고난의 길이었다. 이미 결혼해 다섯명의 아이가 있었던 고갱은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에게 예술은 현실이 아닌 꿈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현실 대신에 예술을 추구하기로 결심한 순간 그에게 현실의 모든 것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시골로, 급기야 덴마크에 있는 처가에 머물기도 했지만 전업작가로 작품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얽어매는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1885년 고갱은 결국 아들 클로비스만 데리고 파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들을 기숙학교에 넣고 1886년 시골마을 브르타뉴의 퐁타방(Pont-Aven)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림을 그렸고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을 이끌며 '종합주의(Synthetism)'을 추구했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느끼는 대로 빠르고 단순하게 그리고 색을 칠하는 방식은 고갱의 그림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시골마을로 옮겼지만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고갱의 방랑벽은 사실 영감을 위한 것이었다. 타히티 등 남태평양의 섬들로 떠나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던 1890년 고갱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열망을 드러냈다.

"남태평양 섬의 숲 속으로 떠나 황홀과 평화와 예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 날이 (아마도 곧) 올 것이오."

"예술은 추상이다"

고갱은 도대체 무엇을 찾아 떠돈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곳은 왜 남태평양의 섬이었을까. 고갱에게 예술에 대한 영감은 단순히 자연 그 자체 또는 어느 특정한 대상이 아니었다. "예술은 추상이다. 자연 앞에서 꿈을 꿈으로써 추상을 끌어내는 것이다." 즉, 고갱에게 있어 예술은 눈에 보이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를 통해 촉발되는 생각, 더 나아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나무와 강과 구름도 아니고, 햇빛이 빛나는 야외도 아니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오히려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없는 원주민, 특히 여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들은 언제나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 주변으로 온갖 상징적인 소품이나 조각, 풍경, 장치들이 나열되듯 펼쳐진다. 이를 통해 고갱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불 같은 열정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어쩔 수 없는 좌절과 자기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폭발하는 열정은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혔고, 인간적인 욕망은 그 뒤에 따르는 타락과 죄악이라는 굴레에 얽매이게 되었으며, 계속된 도전은 실패와 가난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그의 그림 속에 녹아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표현함에 있어 고갱은 종교적인 요소를 많이 차용했다. 물론 그의 초점은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인 잣대가 아니라 현실과 꿈의 대치, 욕망과 자유의 갈망 등 신비적인 영역에 가까웠다.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그린 'Tahitian Eve'(1892),를 보자.
 
타히티의 이브(1892) 폴 고갱 Source: Wikiart
▲ 타히티의 이브(1892) 폴 고갱 Source: Wikiart
ⓒ 그르노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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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섬의 여인들에게서 자신이 꿈꾸던 이국적이면서도 원시성을 띤 이브를 발견했다. 'Tahitian Eve' 속 낙원을 연상시키는 밝고 화려한 색의 자연을 배경으로 그녀의 몸은 반짝 빛을 발하는 듯하다. 화려한 꽃과 유혹의 말에 굴복해 그녀는 조심스레 팔을 뻗어 꽃을 꺾으려 하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함 속에 호기심과 욕망이 언뜻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고갱은 타락 이후의 이브도 함께 그렸다. 'Words of the Devil(Eve)'(1892) 속 이브는 부끄러움을 아는 모습이다. 음부를 왼손으로 가리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브의 뒤에는 타락한 이브를 언제나 따라 다니는 듯한 악마의 모습이 보인다. 욕망을 채우고 낙원에서 쫓겨난 이브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인가. 
 
이브(1892) 폴 고갱 Source: Wikimedia Commons
▲ 이브(1892) 폴 고갱 Source: Wikimedia Commons
ⓒ National Galle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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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고갱의 그림 속 타락한 이브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거나 자신의 욕망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설사 금지된 욕망이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안에 있는 욕망을 채우고 얻은 만족과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된 것에서 오는 기쁨이 그녀의 얼굴에서 배시시 흘러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은 악마의 속삭임에 속수무책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있다. 

고갱의 이브에게는 순수와 욕망과 생명력과 도전과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드러난다. 앞으로의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자신 안의 무한한 영역을 탐험하는 일은 어쩌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으리라는 용기를 뿜어내고 있다.

욕망과 자유, 비난과 부조리, 이상과 열망

고갱의 아이디어와 상징과 의미를 집대성한 작품인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1897)은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들을 모티브로 삼아 완성했다. 그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여인들, 상징적인 동물과 식물들, 신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나(1897) 폴 고갱 Source: Wikimedia Commons
▲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나(1897) 폴 고갱 Source: Wikimedia Commons
ⓒ Museum of Fin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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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철학적 작품'이라고 칭한 이 그림은 인간으로 태어나 겪게 되는 숙명을 다루고 있다. 언제나 반복적으로 나타난 주제인 욕망과 자유, 비난과 부조리, 이상과 열망이 여인의 일생으로 나타난다. 욕망에 눈을 뜬 이브와 이를 정죄하는 사회의 시선, 모든 것을 초월한 자유와 그에서 오는 자신감이 서로 얽히고 설켜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함 속에서 태어났지만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는 인간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와 전통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그들을 멍들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삶의 즐거움에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는 '태곳적 자연 속의 단순한 존재'가 되는 일이라고 고갱은 이야기하는 듯하다. 

고갱의 삶은 그 자체로 타오르는 용광로이자 억누를 수 없는 불길이었다.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떠난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그는 비로소 황홀경을 느끼고, 평화를 찾을 수 있었을까. 그 속에서 피어난 그의 예술만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증거로 남아있을 뿐이다.  

태그:#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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