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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확진자 수를 표로 만들어 봤어요. 3월 중순 이후로 급격히 증가해서 이젠 하루에 100명 이상 나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확진자 수를 표로 만들어 봤어요. 3월 중순 이후로 급격히 증가해서 이젠 하루에 100명 이상 나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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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리센룽 총리가 지난 4월 3일 오후 코로나19와 관련된 긴급담화를 발표했습니다. 7일부터 4주 동안 싱가포르 대부분의 사업장은 문을 닫고, 학교도 재택수업으로 전환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이 조치로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생필품 구매를 위해 마트는 문을 열고, 집에서 식사를 잘 안하는 싱가포르 사람들을 위해 음식점은 문을 열었습니다. 다만 음식점 안에서 식사를 할 수는 없고 포장하고 배달하는 것만 허용이 됐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7일부터는 집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어떤 모임도 금지해버렸습니다. 정부의 방침에 따르자면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밖에서 따로 만나는 것도, 함께 운동하는 것도 다 불법입니다. 처음 적발되면 경고, 두 번째부터는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4월 5일 이후 하루 확진자 발생 수가 100명을 넘는 날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대응이 점점 더 세졌습니다.

이제는 병원이나 공공시설 같은 필수사업장에서 일하는 것, 음식이나 생필품을 사기 위해 외출하는 것, 공원에서 다른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며 혼자 운동하는 것 정도만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한국의 친구들은 그런 규제 속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집에 들어 올 때까지 제가 만나는 싱가포르의 모습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7일부터는 필수사업장을 제외하고는 4주간 모두 문을 닫았는데 제가 일하는 반도체 공장은 필수사업장으로 지정이 돼서 아직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 맥주 한 잔? 여기선 바로 벌금
 
집 앞 놀이터가 폐쇄 됐습니다. 아이들이 갈 데가 없습니다.
 집 앞 놀이터가 폐쇄 됐습니다. 아이들이 갈 데가 없습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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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아파트를 나서면 제일 먼저 놀이터를 만납니다. 지난주까지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가 테이프로 둘러져 있네요. 놀이터 옆 의자도 처음엔 한 사람만 앉아 있도록 테이프를 발라 놨는데 이젠 아예 앉지 못하게 해 버렸습니다. 배드민턴 코트도 막아 놨습니다.
 
싱가포르 지하철 내부. 앉을 수 있는 자리, 서 있어도 되는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싱가포르 지하철 내부. 앉을 수 있는 자리, 서 있어도 되는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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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러 내려왔습니다. 버스나 지하철 등 공공교통수단은 모두 정상 운행을 합니다. 승객이 없어서 문제죠. 플랫폼에 있는 의자에도 띄어 앉으라고 테이프를 발라 놨습니다. 지하철 객차 안에는 좌석에 한 칸씩 띄어 스티커를 붙여 놨습니다. 나란히 앉지 말라는 거죠.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도 따로 스티커로 표시를 해 놨어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평소 같으면 긴 줄이 있어야 할 출근시간 버스 터미널에 오늘은 저 말고 한 사람 더 있네요. 그건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사무실에 저 말고 한 사람 더 있네요. 사무실 전체로 봐도 출근한 사람은 열에 한두 명 정도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나머지 직원은 모두 재택근무를 합니다.
 
출근 시간인데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없습니다. 사무실도 마찬가지구요.
 출근 시간인데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없습니다. 사무실도 마찬가지구요.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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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던 사무실은 원래 여기가 아닌데 최근에 옮겼어요. 행여 같은 부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감염되면 회사 운영이 안 된다고 다른 건물에 있는 사무실로 옮긴 겁니다. 그래서 부서 사람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면 모두 화상통화를 하고, 회의도 마찬가지로 화상회의로 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표시된 곳에만 서 있어야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표시된 곳에만 서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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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합니다. 퇴근 후 한 잔, 이런 건 이제 상상도 못합니다. 한 잔 할 곳도 없을 뿐더러, 집에 방문해서 만나더라도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바로 집으로 가야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자리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1미터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거든요. 엘리베이터 안에도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따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쇼핑몰에도 거리두기는 필수입니다. 화장실 소변기까지 막아 버렸네요.
 쇼핑몰에도 거리두기는 필수입니다. 화장실 소변기까지 막아 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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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에 저녁 찬거리를 사려고 근처 쇼핑몰 안에 있는 마트에 들렀습니다. 쇼핑몰 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대부분의 문은 다 닫아 놓고 한 군데만 열어 놨네요. 바닥에 표시된 대로 따라서 들어가고 나와야 해요. 화장실에서는 소변기도 가운데 두 개는 막아 버렸어요. 고장난 게 아니라 1미터 이상 떨어져 볼일을 보라는 거죠.
 
포장 및 배달이 가능한 식당만 문을 열었습니다. 식탁과 의자는 모두 치웠구요. 그게 안 되는 식당은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포장 및 배달이 가능한 식당만 문을 열었습니다. 식탁과 의자는 모두 치웠구요. 그게 안 되는 식당은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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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상점은 다 문을 닫고 식당만 문을 열었네요. 그런데 앉을 수 있는 식탁은 모두 치워 버렸습니다. 토스트 가게도, 맥도널드도 건물 바깥의 푸드코트도 다 마찬가집니다. 음식 포장이나 배달이 어려운 한국식 고깃집은 아예 문을 닫아 버렸네요. 
 
마트에는 생필품을 사두려는 사람들로 줄이 깁니다. 바닥에 표시된 위치에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마트에는 생필품을 사두려는 사람들로 줄이 깁니다. 바닥에 표시된 위치에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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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들어 왔더니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 관련해서 매일 같이 강도 높은 정부 방침이 발표되자 사람들이 불안한 나머지 생필품을 많이 사고 있어요. 물건을 살 때도 바닥에 그어 놓은 선에 맞춰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그 때문에 줄이 더 길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매대에는 물건이 비어 있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 건지, 정부가 공급을 잘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호복 입은 간호사, 야외에 차려진 병원 접수대
 
동네의원에서는 바깥에서 체온을 재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동네의원에서는 바깥에서 체온을 재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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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데 작은 아이가 목이 아프다고 하네요.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일도 어쩐지 불안해서 동네 의원에 갔습니다. 문 밖에 접수대가 있고 벨을 누르면 보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나와서 체온을 먼저 잽니다. 순서가 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고요. 체온은 정상인데 다만 목이 건조해서 그런 거니까 물 많이 마시고 며칠 있다가 다시 보자고 합니다. 의사가 괜찮다고 하니까 그래도 안심이 되네요. 
 
강가를 따라 조성된 공원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운동하러 나옵니다. 여기서도 거리를 둬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잘 지켜지지는 않네요.
 강가를 따라 조성된 공원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운동하러 나옵니다. 여기서도 거리를 둬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잘 지켜지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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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운동을 하러 동네 공원에 나왔습니다. 다들 갈 데도 없고 답답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오히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상황이 더 나빠지면 공원에서 운동하는 것도 막을 텐데 걱정입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정부가 해변을 모두 폐쇄하고 운동하러도 못 들어가게 했다는 뉴스가 나오네요. 이젠 공원만 남았습니다).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북적이던 클라키가 텅 비어 버렸습니다.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북적이던 클라키가 텅 비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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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사람들이 주로 사는 곳은 그래도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다녔던 곳은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볼 일이 있어 싱가포르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인 클라키에 다녀왔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식당도 모두 문을 닫았고요. 지난 15년간 클라키에서 이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발생하는 확진자 중 다수가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인도, 중국, 미얀마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머무는 곳입니다. 그들은 주로 싱가포르 사람들이 꺼리는 일, 즉 청소나 잔디 손질, 식당 일, 건설현장 등의 일을 하지요. 집단 감염이 발생한 기숙사 수가 12일 기준으로 모두 일곱 군데로 모두 건물 통째로 격리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격리된 이주노동자 수만 2만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습니다. 거리두기가 전혀 안 되는 곳이라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습니다. 거리두기가 전혀 안 되는 곳이라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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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곱 군데 중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풍골 S11 기숙사에 가봤습니다. 건물은 철제구조로 되어 있는데 에어컨은 없고 한 방에 여섯 명에서 열 명까지 모여 살고 있습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는 방안에서 격리된다고 했는데 직접 가보니 문을 열고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이네요. 증세가 없고 필수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다른 임시 거처로 옮겨져서 일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정문에는 경찰이 배치되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다만 음식과 세탁물을 실은 차들만 드나드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사태 초기에는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던 싱가포르인데, 지금은 하루 100명 이상의 확진자가 계속 발생해서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도 일상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가며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보여 드린 것 중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한국에서 참조할 만한 것도 있고,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경우처럼 집단 거주 시설에 대한 대규모 발병은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한국만큼은 계속 방역모범국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그:#싱가포르,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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