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로나19 뉴스가 여전히 도배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진자 발생 추이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어 반갑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안심하려다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하필 이런 날 아이 둘 다 외출이다.

방학 내내 집에 머물러 그나마 걱정이 없었는데, 타고 가는 버스는 안전할지, 확진자랑 동선은 겹치지 않을지, 만나는 사람들 중에 혹시 증상자는 없을지, 모든 게 걱정이다. 하늘이 파랗고 공기도 깨끗해서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마음이 무겁다. 오늘의 내 감정 모드는 염려와 불안이다.

미국에 잠시 살 때 일이다. 영어나 배워볼까 하고 다니던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잠시 후에 핸드폰을 화장실에 놓고 온 걸 알게 되었다. 불안감에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하고, 머릿속 혈관들이 좁아지며 혈류가 급속하게 흐르는 게 느껴졌다. 바로 달려갔으나 핸드폰은 놓아둔 자리에 있지 않았다. 머리가 아득해진다. 정말로 비상 상황이다.

친절한 선생님의 안내로 메인 오피스(Main office)에 달려가 조금 전에 분실물로 신고되어 있던 내 핸드폰을 무사히 손에 쥐게 된 후에야 제정신이 돌아온다. 만약 핸드폰을 정말로 잃어버렸다 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는 일도 아니요, 누가 다친 일도 아니며, 경제적 손해랄 것도 크지 않은 일인데 왜 그 상황에서는 심하게 안달하는 걸까.

누구나 여러 이유로 힘든 때가 있다. 고통의 강도나 이유를 두고 "너는 뭘 그런 걸 가지고 힘들어 하니?"라고 거드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고통은 절대적이지 않고 사람마다 다 고통의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박육아로 몸은 고되었고 정신은 바짝 말라 갈라진 논바닥이었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찌 버텨냈을까 싶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라면 절대 절대 싫은... 그런 시절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참고 참아 짜증을 넘어 분노가 되어가는 듯한 마음이 더 이상 빈 틈이 없을 정도로 몸 안에 빼곡히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혹시 누군가 말을 걸려고 팔이라도 툭 쳤다면,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대놓고 분노의 욕들이 튀어나갈 판이었다. 욕하는 게 익숙지 않지만, 왠지 아는 모든 욕들에 꾹꾹 누른 화를 섞어 대차게 퍼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별 일없었지만,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나를 온통 점령했던 그 화와 분노의 감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그 시절처럼 격하게 자주는 아니지만 사는 동안 그런 불쾌한 감정들을 만나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지나고 보면 결국엔 별 일 아닌데, 왜 그 상황 가운데에서는 그리 쉽게 온 마음이 그 부정적 감정에 쉽게 삼키고 마는 걸까? 그것도 거의 매번.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어떻게 하면 갑작스럽게 부정적 감정 속으로 급격하게 빠져들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류시화 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좋은 팁을 얻었다.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겉표지.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겉표지.
ⓒ 더숲

관련사진보기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어서 와, 감정" 편에서 내가 고민하던 바의 도움 내용이 있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부정적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라는 것이다. 슬픈 감정이 오면, "슬픔, 너구나. 어서 와", 불안이 들어오면 "안녕, 불안", 두려움이 오면 "안녕, 두려움" 이렇게 말이다.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들과 나의 자각 사이에 여유 공간이 생겨 그것들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되고,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나는 잠시 슬플 뿐이지 슬픈 사람은 아닌 것이고, 잠시 불안할 뿐이지 불안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오늘처럼 불안과 걱정이 나를 삼키려고 또 내면에서 스멀스멀 일어나는 날, 이 방법을 연습해 보기 딱 좋겠다. 복잡한 감정과 사념이 밀려올 때 차 한 잔을 음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니 집에 있는 차 한 잔 앞에 놓고 염려와 불안의 이름을 불러가며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

부정적 감정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방법으로 좀 더 강인한 정신력을 갖도록 단련하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같은 책 '내 영혼, 안녕한가?' 편에서는 '명상, 독서, 여행, 예술 활동, 자연을 가까이 하는 일 등이 영혼을 돌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라고 소개한다. 건강한 음식, 만족스러운 대화, 감동을 주는 경험들은 영혼에 자양분을 주는 일이라 하니,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며 할 일이다.

하긴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은 안 되니, 명상과 독서, 가까운 곳 산책하며 건강하게 집 밥 만들어 먹고 가족과 즐거운 대화 하면서 한동안은 지내는 게 좋겠다. 그러다 가족들과의 애정이 돈독해져 혹시 감동적인 일화라도 생긴다면 코로나19가 나에게 꼭 부정적 감정만 주는 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평정심! 이번엔 놓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은이), 더숲(2019)


태그:#류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