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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 선 김태규씨의 생전 모습.
 벚꽃 아래 선 김태규씨의 생전 모습.
ⓒ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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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죽인 원청사가 유망중소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태규한테 너무 미안하다."

지난해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참담하다"면서 8일 오후 서울 정동 인근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건넨 말이다.

김씨의 동생 김태규씨는 2019년 4월 10일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에 일을 나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출근 직후인 오전 8시께 건물 5층에서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폐자재를 운반하던 중 건물 벽과 엘리베이터 문 사이 틈새로 추락했다. 벽과 엘리베이터 사이에 43.5㎝의 틈새가 있었지만 태규씨는 틈을 발견하지 못했다. 20m 높이에서 추락한 태규씨는 숨을 거두었다. 일용직으로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사고 당일 태규씨는 안전화와 안전벨트를 받지 못했다. 자신의 오래된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작업하다 참변을 당했다. 태규씨가 추락한 틈에는 어떤 추락 방지 시설도 없었다. 

태규씨가 일한 원청인 '주식회사 에이씨엔(ACN)'은 태규씨 사고 이후 약 8개월 뒤 경기도로부터 '경기도 유망중소기업 인증서'를 받았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인증서에는 "귀 업체를 2019년도 경기도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하였기에 인증서를 교부한다"면서 "인증기간은 2019년 11월 8일부터 2024년 11월 7일"이라고 기재됐다.

업무상과실치사와 건축법, 승강기안전관리 위반 혐의 등을 받았던 원청 대표는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하청업체 대표와 현장소장 등 일부 관리직 정도만 기소 처분을 받은 상태다. 관련 재판은 지난 4월 1일에야 처음 시작됐다.

'삶'이 정지된 누나… '분노'로 움직인다

동생의 죽음 이후 누나 김도현씨의 삶은 정지됐다. 준비했던 일을 중단하고 동생 죽음에 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버티고 있다. 그러나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김씨는 "괜찮냐"라는 질문에 씁쓸하게 웃으며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안 괜찮다"라고 말했다.

"수면장애가 심해서 수면제를 먹고 있다. 그런데 악몽을 자꾸 꾸니까 자는 것도 힘든 상태다. 병원에서도 '악몽은 약으로도 조절할 수 없다'며 더는 약을 안 주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버티고 또 버티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분함"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동생이 그렇게 죽고 나서, 소리라도 질러야겠다는 생각으로, 피켓이라도 한번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틴 거다. 도대체 어떻게 죽은 건지 알고 싶어서 매일 경찰서와 고용노동부, 사건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때마다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추악한 민낯이 보이더라. 공무원들의 태도에 억장이 무너져 돌아버릴 것 같았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어떤 공무원은 태규 할아버지에게 '간 놈은 간 놈'이라는 말까지 하더라."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동생이 사망한 후 1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달려왔다. 8일 오후 인터뷰 후 그에게 거리에 서 줄 것을 부탁했다.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동생이 사망한 후 1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달려왔다. 8일 오후 인터뷰 후 그에게 거리에 서 줄 것을 부탁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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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철창에 들어가 반성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면서 "눈만 감으면 생각나고 잠도 잘 수 없는 상태인데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SNS에 와인과 바비큐 사진 찍어 놓고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아버지가 4년 전에 돌아가셔서 태규가 동생이지만 아빠처럼 챙겨줬다. 늦게 들어오면 항상 데리러 나오고…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동생에 대한 의리다. 아마 반대 상황이 됐어도, 태규는 나를 위해 똑같이 했을 거다."

1/265이 된 건설노동자 김태규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8일 '2019년 산재 사고 사망자 지난해에 비해 116명(△11.9%) 감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사고 사망자 통계가 시작(1999년)된 이후 가장 큰 감소 규모였다"면서 "사고 사망자가 처음으로 800명대로 하락했으며 건설업은 2018년 485명 대비 57명이 줄어든 428명이 사망했다"라고 강조됐다. 그러면서 '추락으로 인해 사망한 숫자가 290에서 265로 줄었다'라고 붉은색으로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산재 사고 사망자의 감소 이유에 대해 '선택과 집중' 방식의 사업장 관리·감독, '발로 뛰는' 현장 행정, 관계 기관과의 유기적 협업을 추진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김태규씨는 정부가 만든 통계자료 속 428명의 건설업 사망자, 그중에서도 추락사한 265명 중 1인이다.

누나 김도현씨는 "사실 나는 건설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섭다. 그런데 지날 때마다 보이는 건설현장에서는 안전망도 없고 안전모도 안 쓴 노동자들만 보이더라. 거의 의무감에 신고를 한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신고할 때마다 고용노동부에서 돌아오는 답변이 누나 김도현씨를 "아프게 만든다"고 한다.

"집 근처 공사현장에서 안전모도 안 쓰고 있길래 신고를 했다. 그랬더니 현장 사진부터 찍어서 보내라고 하더라. 사진 먼저 찍어 보내라는 말이 이해는 가지만 안에 들어가서 찍기가 어렵다. 그래서 와서 감독하면 될 것 아니냐 다시 물었더니 이런저런 핑계만 대며 확인할 생각조차 안 하더라. 매번 똑같다."

하늘에서 동갑내기 친구가 된 김용균과 김태규
 
김도현씨의 핸드폰. '다시는' 홀더와 동생 김태규씨의 사진이 있다.
 김도현씨의 핸드폰. "다시는" 홀더와 동생 김태규씨의 사진이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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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도현씨는 인터뷰 후 산업재해피해가족 네트워크인 '다시는' 모임에 참가했다.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은 김용균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산재 피해자 가족들이 아름다운재단의 '2019 공익활동가 네트워크 지원 사업'에 공모해 만든 단체다. 이들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 기업 경영자까지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과 현장실습생 제도 개선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뉴스를 보고 김도현씨에게 전화를 했고 이후 두 사람은 함께 활동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용균씨와 태규씨가 모두 1994년생 동갑내기라는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태규랑 용균이랑 하늘에서 만났을 거다. 용균이 어머니도 태규한테 가서 '하늘에서 두 사람이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도 (모란공원) 용균이 무덤에 가서 말했다. '태규가 술 좋아하고 담배도 좋아하지만 나쁜 건 배우지 말고 잘 지내라'라고."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한다. 만나서 함께 행동하고 공부하고 있다. 이날 '다시는'이 서울 정동에서 모인 것도 오후에 열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2018년 12월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태안화력에서 사망한 이후 '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하위 법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해·위험 업무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국회에서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에는 원래 '시공사(원청)가 건설기계에 관해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명시했지만 시행령에는 대상이 되는 기계를 건설기계 27종 가운데 4종인 타워크레인·건설용 리프트·항타기·항발기로만 한정했다. 사고가 특히 자주 발생하는 트럭·지게차·굴착기·고소작업대·크레인 등은 원청에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설기계·기구에서 빠졌다.

전체 공사 현장의 산업재해와 관련해서도 발주자가 사고 예방을 책임지도록 했지만 시행령은 총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발주 시에만 적용하도록 제한했다. 
 
지난 설날 명절에 김태규씨에게 올린 차례상
 지난 설날 명절에 김태규씨에게 올린 차례상
ⓒ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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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0일 김도현씨는 동생의 1주기를 맞아 제사상을 준비해 가족들과 함께 동생이 잠든 '수원추모의집'을 찾았다. 이날 도현씨는 동생 태규씨에게 올릴 전을 직접 부쳤다. 앞서 도현씨는 벚꽃 아래 찍은 동생의 사진과 함께 "20190410 태규야 미안해 그냥 누나를 원망해"라는 짧은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산업안전법과 승강기안전관리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된 하청업체 대표와 현장 관리인들에 대한 2차 공판은 다음달 15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태그:#수원, #김태규, #경기도, #산업안전법,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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