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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면서 대출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집마련의 꿈을 안고 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도 있고, 생활이 어려워 신용대출을 받는 사람도 있으며, 담보도 신용도 좋지 않아 불법대출인 줄 알면서도 법정이자를 초과한 사채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나 역시 개인 사정으로 빚을 지고 있는데, 최근 남편이 빚을 정리하자며 '햇살론'을 신청했다. 신용등급이나 소득이 낮아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정부지원 대출이다. 지난 3월 말 한도 승인을 받고 서류 쓸 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에게 제2금융권 금융사에서 전화가 왔다.  
 
통화 종료 후 보내 온 문자. 이율이 파격적으로 저렴해서 마음이 흔들렸다.
 통화 종료 후 보내 온 문자. 이율이 파격적으로 저렴해서 마음이 흔들렸다.
ⓒ 정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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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다급히 내게 문자 내용을 보내주며 한번 알아보라 했다. 한도나 이율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앱을 설치해 대출신청을 해달라'는 얘기와 함께 참고하라며 보내 온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보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발신전화 경로 전환, 전화번호 자동 연결'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예전에 보이스피싱 수법 중 하나로 앱 설치를 유도한다는 글을 본 게 생각났다. 남편에게 얘기해서 절대 앱 설치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담당자 연락처를 물어 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알고 내 남편에게 전화를 했냐 물었더니 담당자는 '정부지원대출 신청 내역이 있어서 더 좋은 조건으로 가능한 대출을 권하고자 연락을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빨리 앱 설치를 하고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출조건이 사라진다'고 재촉했다.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우선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차근차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해당 금융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금융권에서는 절대 개인전화로 대출신청 연락을 하지 않는다'며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 걸었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해 '사기 아니냐, 일반전화로 전화를 걸어달라' 따져물었다. 상대는 '대출신청이 되어야만 심사팀에서 대표번호로 연락을 준다'며 당당하게 나왔다. 잠시 나는 상대방을 너무 몰아세웠나 싶어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앱을 설치하는 순간 보이스피싱 측에서 모든 전화의 수발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걸 한참 후 알게 됐고, 뒤늦게 더 독하게 얘기하지 못한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범죄에 이용하는 보이스피싱범
 
설치하라며 보내준 어플리케이션. 파란색 동그라미 부분을 세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설치하라며 보내준 어플리케이션. 파란색 동그라미 부분을 세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 정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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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남편은 앱 설치를 하지 않았고, 피해를 본 것 또한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혹하는 마음에, 다급한 마음에 앱을 설치하고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하마터면 깜빡 속아넘어갈 뻔했다. 사람이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썩은 동아줄도 잡게 되니까.

특히 요즘처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럴 위험이 크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 접근해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속이고 돈을 빼앗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 긴급 자금지원책을 시행하자 이를 미끼로 경제난에 빠진 소시민의 심리를 건드리며 접근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금융감독원에서 지난 8일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범들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비대면대출을 위한 앱 설치를 요구하거나 정부지원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대출을 상황해야 한다며 금전을 요구한다고 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코로나19의 여파로 수입이 끊겨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까지 범죄에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 나 또한 이번 일을 겪으며 당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힘든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보이스피싱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  

금융사 측에서도 어떤 경로로 해킹이 되어 대출신청 고객들의 정보가 유출되는지 확실히 파악이 안 된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 지능적으로 발전하는 보이스피싱을 없애기 위한 더 강력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태그:#보이스피싱, #대출사기, #대출앱설치, #저금리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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