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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 개발사업에서 생명의 땅으로.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평화의 갯벌로 되살아난 화성습지. 그래서 긴 여정에 나선 도요새의 마지막 낙원이 된 그곳에 다시 공군 전투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습지는 생명이다. 그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말]
 
수원 군공항 이전 논란과 관련 케이블채널 등에서 수원시가 의뢰한 '경기남부국제공항' 홍보 광고가 방영되고 있다.
 수원 군공항 이전 논란과 관련 케이블채널 등에서 수원시가 의뢰한 "경기남부국제공항" 홍보 광고가 방영되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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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경기남부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자막이 흐른다. 이어 "화옹지구에 국제공항이 생기면?"이라는 질문이 나타난다. '경기남부IT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화성의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라고 얘기한다. 화성국제테마파크, 궁평 관광지 등을 언급하면서 "세계적 친환경 관광명소로 발돋움하는 경기도"는 "경기남부국제공항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유혹한다.

최근 일부 케이블채널과 유튜브 등을 통해 방영되는 광고의 한 장면이다. 언뜻 보면 경기도나 화성시가 주관해서 만든 광고로 착각할 수 있다. 마지막에 뜬 '경기남부 통합국제공항 유치 시민연대'라는 자막 때문에 시민단체가 주도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광고총연합회에 따르면, 이 광고는 수원시의 의뢰로 지난달 10일부터 방영하고 있다.

'화옹지구'는 화성시 궁평리와 매향리를 연결하는 방조제로 생긴 화성호 내 간척지를 말한다. '경기남부국제공항'의 이전 버전은 수원 군 공항(제10 전투비행단)이다. 광고에서는 이 공항으로 화성시의 경제가 발전한다고 하지만, 정작 화성 시민 70% 이상은 반대하고 있다. 수원시는 왜 남의 지자체 일에 나서서 광고까지 내걸었을까?

수원시뿐만이 아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수원에서 출마한 여야 후보들은 일제히 경기남부국제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반면 화성지역 출마 여야 후보들은 이를 반대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됐다. 당론조차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작지만,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보다 못한 서철모 화성시장이 "경기남부국제공항? 버스 정류장도 아니고..."라고 꼬집었다. 화옹지구가 인천공항에서 직선으로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사실 수원 군 공항 이전은 수원시의 오랜 염원이지만, 화성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장기화하면서 주민들 간 갈등과 불신만 깊어졌다. 과연 해법은 무엇일까?

[관련기사 보기]
① "코로나19 창궐 이유? 철새 위한 습지 보호해야"
② 윤도현의 바람과 총선 후보의 '군 공항 이전' 공약

실체 없는 '경기남부국제공항'... 화성시 "자치권 침해" 수원시에 항의

수원 군 공항 화성 이전 논란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2월 국방부는 수원시의 군 공항 이전 건의를 수용해 화성시 화옹지구를 예비이전 후보지로 지정했다. 수원은 국방부의 결정을 환영했고, 화성은 격렬히 반발했다.
  
수원 군공항(수원비행장)에서 열린 '수원하늘사랑축제' (2012년)
 수원 군공항(수원비행장)에서 열린 "수원하늘사랑축제" (2012년)
ⓒ 수원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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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군 공항으로 인한 소음 피해는 수원과 화성 시민 모두 겪고 있다. 군 공항의 일부인 탄약고가 화성에 걸쳐 있다. 수원시민의 고통을 화성시민들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한다. 다만, 수원시민의 소음 피해가 크다고 해서 이를 화성시 전체로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군 공항 이전 사업은 '군 공항 이전 특별법'에 근거한다. 특별법은 예비이전 후보지로 지정된 지자체가 이전 후보지 신청을 해야만 후보지 선정 심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성시가 반대하면 군 공항 이전은 불가능하다. 수원 군 공항 이전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국방부도 이전 철회라는 공식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박찬선 화성시 군공항이전대응담당관은 "수원 군 공항 화성 이전 추진은 안보와 환경의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특정 지역(수원)의 개발을 위해 보호 가치가 높은 습지를 훼손하고, 화성시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여전히 군 공항 이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꺼져가는 군 공항 이전 논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경기남부국제공항'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군 공항에 민간공항을 결합하면 반대 여론을 약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민군통합공항으로 시작해 경기남부민간공항으로, 이제는 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홍보전이 한창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수원지역 총선 출마자들도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로 군 공항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장성근 군공항이전수원시민협의회장은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과 연계한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동북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서 화성과 수원의 발전은 물론,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발전을 위한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남부국제공항은 아직 실체가 없다. 2018년 4월 <세계일보>가 "경기 남부에 민간공항 건설 추진 점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2030년이 되면 국내 항공수요의 80%를 흡수하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국토부는 보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초과수요를 흡수할 제3의 민간공항 건설이 필요할 것으로 국토부는 내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화성시 곳곳에 '수원 군 공항'(경기남부국제공항) 이전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경기 화성시 곳곳에 "수원 군 공항"(경기남부국제공항) 이전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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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즉각 "경기 남부에 민간공항 건설을 검토한 바 없다"는 제목의 해명보도자료를 냈다. 제5차(2016~2020)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서 2030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여객 수용 능력이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예측한 바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특히 "증가하는 수요에 맞춰 적기에 공항시설을 확충해 나가고 있으며, 경기 남부에 민간공항 건설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국토부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경우 현재 연간 7,2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4단계 건설사업을 통해 2023년까지 연간 1억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후 항공수요 지속 증가 시 국제선 제3 터미널을 신설하면 연간 1억3천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김포공항도 현재 연간 4,0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국내선 제2 터미널 신설 등을 통해 연간 4,5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다.

인천공항의 성장세가 지속해 10년 후에 1억3천만 명을 넘어설지는 인구변동 추이, 일본의 사례 등을 고려해 차분히 분석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인천공항 이용객은 70% 정도 감소할 전망이다.
 
2018년 1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군공항 이전 특별법 개정 반대 결의대회’에서 서철모 화성시장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2018년 1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군공항 이전 특별법 개정 반대 결의대회’에서 서철모 화성시장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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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3의 민간공항 건설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 지역이 화성시 화옹지구가 타당하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화성시 관계자는 "화옹지구는 인천공항과 직선거리로 50km 이내, 시간상으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신공항 입지로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서철모 화성시장도 "수원 군 공항을 경기남부공항과 연계하자는 주장을 제대로 하려면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14개 지방공항 중 5개는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사용을 하지 않는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세워진 공항으로,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낭비"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인천을 제외한 14개 지방공항 중 10개 공항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홍진선 전투비행장 화성 이전 반대 범시민대책위원장은 "수원 전투비행장 주변에 아파트와 주택 건설을 허가해 소음 피해를 유발한 당사자는 수원시다. 국제공항으로 화성시민을 현혹해 비행기 소음과 만성 적자를 떠넘기겠다는 것은 양심도 없는 행위"라며 "국제공항이 그렇게 좋으면 지금이라도 수원 군 공항에 함께 지으면 될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수원시는 화성시 내에 군 공항 이전을 위한 홍보관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수원시는 최근 소셜미디어 유료광고와 도내 언론, 블로그 등을 통해 경기남부국제공항을 화성호(화옹지구)로 유치해야 한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다. 급기야 화성시는 수원시의 홍보가 도를 넘어 시의 자치권까지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지난달 말 수원시에 홍보 중단을 요청하는 항의 공문을 보냈다.

수원 전투비행단 용도 변경부터 폐쇄까지 다양한 논의 필요

사실 수원 군 공항 이전 논란의 출발점은 군 공항으로 인한 시민들의 소음 피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일각에서는 대안 없는 군 공항 이전 논의보다 수원 전투비행단의 용도 변경 등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가능성도 크다고 제안한다. 수원 군 공항에 무인기와 드론 등 첨단화된 무기체계를 구축하면 군 공항의 규모와 전투기로 인한 소음은 줄면서도 종합적인 전투력은 더 상승한다는 것이다.
  
박찬선 화성시 군공항이전대응담당관
 박찬선 화성시 군공항이전대응담당관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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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선 군공항이전대응담당관은 공군에서 30년 넘게 복무하고 지난해 전역했다. 그는 "수원시가 부동산 개발에 관한 관심을 접고 소음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현재도 방법은 있다"면서 "수원 군 공항을 지능정보기술을 접목한 첨단전력 중심으로 재편하면 소음은 줄고 공군 전체의 전력은 강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 세계 각국이 '무인전투기'(UCAV)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도 전쟁 승리의 요건인 제공권 장악을 위해서 관련 기술 확보와 상용화가 요구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0년 내 전투기의 30%를 무인기로 대체할 계획을 세웠다. 한미 연합 전력의 운용 측면에서도 한국형 무인기 개발이 필수적이다. 무인기는 휴전선과 근접한 수원 군 공항에서 감시·정찰 임무와 북한 방사포와 해안포 대응, 현대전에 부합한 정밀 타격 임무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수원 군 공항 이전의 대안으로 점진적인 폐쇄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한반도 안보 환경 변화와 밀접히 연관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지난해 관련 토론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완료되는 시점을 전제로 "(수원 군 공항 주력 전투기인) F-4와 F-5도 2025년에 가급적 전량 도태시키고 추가적인 전투기 증강 계획도 하향 조정함으로써 2025년 전투기 보유 수를 250~300대 정도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북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는 현시점에서는 현실화가 쉽지 않다.

수원 군 공항은 그대로 유지하되 전력을 종합적으로 재조정해 분산시킴으로써 유사시에만 사용하는 방안도 있다. 전직 공군 관계자는 "과거처럼 북한이 한 대 뜨면 우리도 한 대 뜨는 조건으로 대응하는 시대는 아니다"라면서 "북한 공군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 수원 전투비행장을 이용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화성시 화옹지구를 군 공항 예비이전 후보지로 지정한 지 3년이 흘렀다. 이전 사업은 지지부진하고 수원과 화성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 화성시 곳곳에는 군 공항 이전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TV에는 경기남부국제공항 광고가 흘러나온다. 수원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며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화성시는 그동안 논란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화성습지의 일원인 화성호와 화옹지구 간척지는 개발사업을 딛고 일어나 '생명의 보고'가 됐다. 천연기념물인 도요물떼새 등 멸종 위기 철새들의 중요한 서식지로 변모한 것이다. 50여 년 이상 미 공군 폭격장의 피해를 온몸으로 견뎌낸 매향리 갯벌도 생명의 습지로 되살아났다.

화성습지가 철새들의 안식처이자 2,500만 수도권 시민의 힐링(쉼) 공간으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수원 군 공항 이전 논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먹거리 생산을 위해 바다를 간척해 만든 드넓은 땅을 인간과 수많은 새떼, 야생 동식물이 공존하는 습지로 보호할 것인지, 하루 수십 대의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비행장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화성호에서 관찰한 최소 1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 (2018년 4월)
 화성호에서 관찰한 최소 1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 (2018년 4월)
ⓒ 화성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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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원군공항이전논란, #서철모화성시장, #화성습지, #경기남부국제공항, #4.15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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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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