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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의 국제 인터내셔널 프레스 프리덤 어워드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인도 독립언론인 네하 딕시트.
 2019년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의 국제 인터내셔널 프레스 프리덤 어워드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인도 독립언론인 네하 딕시트.
ⓒ Committee to Protect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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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유의 피를 맛봤다. 어떤 언론사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자유기고가로 일하면서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꼈고, 더 행복해졌다."

인도 뉴델리를 근거지로 삼고 일하는 독립언론인 네하 딕시트(Neha Dixit)는 2012년 말부터 특정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고 현장에서 취재한 기사를 심층보도해왔다. 기자 경력은 2007년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인도 시사주간 '테헬카(Tehelka)'와 24시간 방송 네트워크 '인디아 투데이(India Today)'에서 시작했다. 언론사가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구매력이 있는 도시 중산층의 관심사로 국한된다고 느낄 때쯤 자유기고가로 전환했다.

자유기고 언론인으로 처음 취재한 이야기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에서 벌어진 우익민족주의 운동이다. 현장 취재를 통해 극우 힌두 민족주의 단체들이 주민들에게 힌두국가건설 이념을 조직적으로 세뇌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취재한 내용은 인도 시사주간 '아웃룩(Outlook)' 2012년 겨울호에 보도됐다.

가장 최근 기사는 2019년 재임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밀어붙인 시민권개정법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한 것이다.

2019년 12월 11일 인도 상원을 통과한 시민권개정법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인도로 넘어와 불법이주자로 살고 있는 힌두교도, 시크교도, 불교도, 자인교도, 파르시교도, 기독교도 등에게 시민권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슬람교도는 대상에서 제외돼 법적 차별 논란과 반대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네하는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력과 이에 굴하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여성들의 역할을 취재해 '알자지라(Al Jazeera)' 등에 보도하고 있다.

언론사의 24시간 압박이 없고, 특정한 목적이나 의제 없이 어떤 현장이든 갈 수 있다는 점, 그곳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보도의 깊이나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자유가 그를 사로잡았다. 물론 월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전문직업인으로서 느끼는 만족감이 훨씬 크고 그래서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3~4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전한 소진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7년여 간 휴식 없이 국가폭력을 취재하면서 쌓인 정신적, 신체적 피로 탓이다.

힌두민족주의 국가 건설을 정치적 목표로 내세운 나렌드라 모디 총리(2014~2024)와 바라티야자나타당(Bharatiya Janata Party·인도인민당)이 집권한 이후 인도에서는 소를 도살하는 카스트에 대한 공격,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취재현장과 일상에서 그를 향한 강간협박과 살해협박도 6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2014년 모디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부터 지금까지 성폭력, 혐오범죄, 경찰총격, 종파간 폭력을 취재하고 보도해왔다. 이 일을 멈춘다면 그동안의 투쟁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 되는데. 우리 현장 기자들은 스스로 힘든데 왜 이 일을 하는지 계속 자문하지만 누구도 답을 못한다. 소진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가 적다. 가까운 이에게 말하더라도 '그럼 왜 하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7일 오후 홍콩 몽콕 경찰서 주변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최루탄에 대비해 방독면을 쓰고 있다.
 2019년 8월 7일 오후 홍콩 몽콕 경찰서 주변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최루탄에 대비해 방독면을 쓰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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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타이완에서 프리랜서로 취재 활동을 하는 에이미 입(Amy Ip)도 네하의 소진 경험과 비슷한 말을 했다. 2012년부터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온 독립프로듀서 겸 자유기고가인 에이미는 정신적 소진에 대해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고립감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홍콩의 TV 채널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다 퇴사한 후 에이미는 타이완으로 향했다. 타이완 섬의 선주민이지만 국민당 정부에 의해 쫓겨나고 밀려난 소수종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현상 안에 깔린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참여형 다큐멘터리' 제작이 그녀를 움직이는 마음의 지표다.

휴먼 다큐 제작은 대부분 자비를 들여서 하고 있다. 방송사에서 일하며 모아 놓은 돈, 제작 프로덕션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버는 돈을 끌어다 쓰지만 다큐 제작으로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부터 지금 진행 중인 최장기 반중국 시위까지는 국제 언론 취재 인력이 홍콩으로 몰려와 외신의 현지 취재를 대신하는 '픽서' 수입이 추가됐다.

"삶에서 그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 불확실함 때문에 정신적인 소진을 느낄 때가 많다. 자비를 들여 계획하고 촬영부터 편집과 연출까지 혼자 하는데, 촬영이 무산되거나 일정이 어그러져 메꿀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때 완전히 소진된다."

정신적 압박감에 이어 취재 과정에서 겪은 국가폭력 대리외상과 직접외상까지 더해졌다. 에이미는 지난해 3월 15일 시작된 범죄인인도법안 반대시위를 시작으로 1년간의 시위 취재 이후 일상적 공간에 다시 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사복 경찰이 평화로운 시위대열에 선 민간인과 취재진을 무차별 공격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목격해서다.

2019년 10월 28일 경찰 기자회견장에서 경찰의 언론인 공격 규탄 1인 시위를 한 이후에는 친정부 세력으로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협박도 받고 있다. 언론에 그의 시위가 보도된 후 경찰이 그의 집까지 몰래 들어와 총을 겨누고 발포하면서 트라우마 경험이 고착됐다.

그가 경험하고 있는 국가폭력 대리외상과 직접외상의 증상은 불면과 강간 공포다. 치료전문가가 연락을 취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치료는 시작하지 못했다. 홍콩의 일반 시민들이 경험한 집단적인 국가폭력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한 변화로(From Trauma To Transformation·創傷同學會)' 같은 비정부조직들이 생겨나고 있다.

"동료들끼리 최근 취재 현장에서 경험한 폭력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친정부 세력들이 '블랙 저널리스트'라고 낙인찍고 현장 기자들을 공격하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기자들의 안전을 위한 연합을 조직하고 있다. 여기에 트라우마 재활도 포함할 수 있길 바란다."

에이미는 폭력의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폭력의 피해자들을 취재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윤리적 갈등과 무력감에 대해 "우리(취재진)는 그곳에 있었지만 그곳에 없었다고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한 이탈리아 언론과 인터뷰한 인도네시아 탐사보도 전문 자유기고가 페브리아나 피르다우스.
 한 이탈리아 언론과 인터뷰한 인도네시아 탐사보도 전문 자유기고가 페브리아나 피르다우스.
ⓒ 페브리아나 피르다우스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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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시사주간 '뗌뽀(Tempo)', 인터넷 독립언론 '래플러(Rappler)'를 거쳐 2017년부터 탐사보도 전문 자유기고가로 일하고 있는 페브리아나 피르다우스(Febriana Firdaus)는 "현장 보도가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이고, 국가폭력이 반복되는 사슬을 끊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이런 입장은 인도네시아 1965~1966년 반공대학살 사건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중부 자와주 수라바야 출신인 그는 국가폭력 유가족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의 할아버지는 공산당 당원이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수하르토 당시 육군참모차장은 1965년 10월 1일 벌어진 장군 6명과 장교 1명의 납치·살해 사건(G30S)을 놓고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이 시도한 쿠데타라고 선전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육군은 공산당 지지가 강했던 자와, 아쩨, 발리를 중심으로 50만 명에서 300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자유기고가로 인도네시아령 파푸아에서 자행되는 군경의 인권 탄압, 정부와 종교조직의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1965년 반공대학살 심포지엄을 심층 취재해 온 페브리아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바로 1965년에도 이뤄졌어야 하는 일이다.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지만 지금은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 한 가족에게 일어난 조직적 비극을 멈추지 못하면, 다른 가족에게 같은 경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강한 소명의식 뒤에는 국가폭력 유가족으로서의 트라우마와 자유기고가로서의 소진의 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할아버지가 살해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이미지가 거의 매일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언론사 소속 기자로 일하면서는 동료에게 비밀로 했다. 2016년에 1965년 반공대학살 심포지엄을 직접 취재하면서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자유기고가고서 현장 취재가 트라우마 치유의 일환이다."

그는 기자의 취재 활동은 정치적 이념, 종교적 가치나 국가관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조명하는 '사회사업(social work)'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소진과 물리적 폭력의 위협은 전문적 치료자 지원 없이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와 이슬람 조직을 가해 주체로 지목하는 페브리아나의 취재가 연이어 보도되자 그는 군부 실세나 배후 세력,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속적인 살해위협과 협박을 받고 있다. 가족들이 취재를 멈추라고 종용하고 있어 그의 고립감은 심화되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둔 채 생활하면서도 매일 집으로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고 있다고 호소했다.

네하는 인도에서는 최근 2명의 기자가 자살했다며 직업적 재해라고 지적하고 이들이 경험하는 것을 공유하고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다.

"기자, 활동가, 변호사 등 폭력의 생존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재활을 돕는 사람들 모두에게 재활이 필요하다. 이들의 정신적 건강도 생존자들과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들이 바로 재활의 인프라와 고리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 소식지 <그라지라>의 2020년 봄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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