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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기자회견 이날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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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친일, 독재찬양, 반민주, 반노동 보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8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5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조선동아청산시민행동은 '동아일보는 생명을 다했다, 거짓과 배신을 끝낼 시간이다'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법원의 동아투위사건 관련 2015년 판결이 사법농단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다"며 "동아언론인 대량해직 사건은 박정희 유신독재 최악의 언론탄압이었고 민주주의 압살 사례였으므로 검찰이 사법농단 사건의 하나로 위 사례를 파헤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동아 사시(社是)는 거짓, 사주 김성수는 친일 부역으로 서훈 취소 ▲부역 반성 없이 재발간, 친일세력 등장과 분단조장에 앞장 ▲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 지지, 자유언론인들 배신과 대량 해직 ▲일제 식민지 시대이래 온존하는 기득 권력인 동아 ▲박정희 유신독재의 희생양 동아투위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에 또 희생양 등도 밝혔다.

이날 발언을 한 이부영 자유실천재단 이사장은 "동아투위가 45년 동안 동아일보로부터 해고를 당했다"며 "해고의 부당성과 진실 날조 이런 것에 항의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해 왔다, 동아투위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국가와 동아일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동아투위위원장은 "75년 3월 17일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하던 동아일보 기자, 동아방송 PD 및 및 아나운서, 기술인 등이 동아일보로부터 쫓겨난 지가 45년이 됐다"며 "오늘 동아일보 앞에 온 것은 창립 100년에 맞춰 거짓과 배신의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보수언론들은 끊임없이 민주노총에 대해 왜곡편파보도를 해 민주노총이 범죄자인 양 생각하게 했다"며 "그 중심에 채널A와 TV조선이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병관 전 지리산국립공원 연하천 소장은 "올해가 조선동아 100년이라는 소식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면서 "최소한 마중물이라도 되고자 지난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농성을 해왔다. 오늘이 99일째이고 내일이 100일째이다"며 '친일 반민족 동아일보 폐간하라'를 외쳤다.

이날 MBC가 폭로한 종편 채널A와 검찰의 범죄조작 공모 팻말과 '거짓과 배신의 동아일보-채널A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겁박'이라고 쓴 대형 팻말도 선보였다. 특히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동아일보는 생명을 다했다, 거짓과 배신을 끝낼 시간이다'라고 쓴 퍼포먼스를 했다.

한편 주최 측은 지난 1일 동아일보 100주년에 맞춰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주일 연기해 이날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는  채널A와  검찰의 유착 의혹 제기한 팻말이 등장했다.
▲ 팻말 기자회견에서는 채널A와 검찰의 유착 의혹 제기한 팻말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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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동아청산시민행동 기자회견 전문이다.

'동아일보는 생명을 다했다, 거짓과 배신을 끝낼 시간이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에 부쳐-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실천 투쟁을 벌이다 거리로 내쫓긴 언론인들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발족한 지도 45년이 되었다. 동아 창간 100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발족 45년이라면 이제 그 자체로 역사가 되었다.

우리는 동아일보가 지난 100년 동안 잘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민족이 외세의 압제로 수난을 겪고 있을 때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던 역사와, 시민이 군사독재의 억압 아래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독재자에게 찬양과 아부를 일삼은 행적에 대해서는 반성과 사죄를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공동체에 저지른 부끄러운 행적에 대해 추호의 뉘우침도 없이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주류언론을 자처하는 것이 정녕 털끝만큼도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동아 사시(社是)는 거짓, 사주 김성수 친일부역으로 서훈 취소

1.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함께 3.1독립운동 이후 무단통치 대신 문화정치를 내세운 일제의 기만적인 식민통치 정책으로 태어났다. 동아일보는 창간사에서 '조선민중의 표현기관, 민족주의, 문화주의'라는 3대 사시를 표명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친일논객으로 전향한 문필가 이광수가 쓴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의 다섯 차례에 걸친 연속 사설은 그들의 3대 사시가 거짓이었음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무장항쟁 등 독립운동의 무모함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일제의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치운동, 참정권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이광수의 논설은 국내외의 조선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민족지'를 간판으로 내세우는 동아일보의 진면목이 이랬다.

동아일보가 자신의 항일공적으로 가장 앞에 내세우는 손기정 선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기사의 일장기말소 사건 실상도 전혀 달랐다. 이 사건은 회사 측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평기자 3명이 비밀리에 감행한 사건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사주 김성수는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개탄했고, 사장 송진우는 "성냥개비로 고루거각을 태웠다"고 분개했으며, 사회부장과 기자 4명은 해고되어 언론계를 떠났다. 그들은 해방 이후에도 복직하지 못했다. 동아의 항일 운운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1937년 중일전쟁 개전 이후 일본 천왕 일가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동아의 찬양과 아부는 극에 달했다. 동아일보의 지면뿐 아니라 사주인 김성수 개인으로서도 친일부역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의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밝혀냈고, 그에 따라 그의 건국공로훈장 서훈은 취소됐다.

부역 반성없이 재발간, 친일세력 등장과 분단조장에 앞장

2. 1945년 해방을 맞은 동아일보의 중간사(重刊辭)는 그 어디에도 일제에 대한 부역, 민족해방운동의 부정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골적인 친일부역의 길을 달려왔음에도 반성과 사죄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일장기말소사건을 일으킨 항일 기자들이 복직을 기대할 여지도 없었다.

해방 이후 동아가 걸어간 길이 친일기득권자들의 본산으로서, 이승만의 분단정부 수립 옹호와 남북협상에 대한 매도였던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가짜뉴스를 보도하여 반탁-찬탁으로 민족분열을 조장하고 친일파의 정치세력화에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분단 테러집단인 서북청년단 사무실을 동아일보 사옥에 제공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아예 입을 다물 수 없어진다. 여운형과 김구의 암살로 상징되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의 파탄에는 분단으로 친일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려는 한민당-동아일보 집단의 집념이 묻어나고 있다. 이 신문이 우리 민족의 내일에 어떤 패악을 저지를지를 예고하고 있었다.

군사쿠데타-유신체제 지지, 자유언론인들 배신-대량해직

3. 동아일보는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군사혁명은 구국을 위해 가능한 유일한 길-이 엄숙한 시기에 온 국민이 혁명과업 완수를 위해 총진군해야 한다. 실로 위대한 건설에 일치단결하여 총진군하자"(5월 17일 자 사설)고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장면 정권 아래서 마음껏 민주-자유를 외치던 동아일보가 하루아침에 장면 정권을 부패 무능의 쓰레기 정권으로 매도했다.

동아는 또 1969년 8월 8일 자 통단 사설에서 1967년의 공화당 3선 개헌안부터 지지하면서 "적의 도발을 막고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데 있어 박정희 대통령의 계속 집권이 필요하다는 우국충정을 결코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지지했다. 그뿐 아니라 동아일보는 민청학련-인혁당 조작사건에 대해서 "폭력 데모로 노동정권 수립기도/청와대 점거계획"이라고 보도하고 사설로 "가공할 음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유신독재 편에 서 있음을 분명히 했다.
  
동아일보의 유신체제 지지는 1974년 10월 시작된 10.24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박정희 독재와 야합하여 탄압하리라는 것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동아일보 광고지면이 백지로 발행되자 전국의 수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격려광고로 지면을 메워주었다. 그러나 동아일보 사주 측은 박정희 독재정권과 야합, 1975년 3월 17일 일선 언론인들의 헌신적인 자유언론운동을 짓밟았다.

일제 식민지 시대 이래 온존하는 기득권력이 동아

4. 동아일보의 1975년 언론인 대량해직사태는 45년이 되었다. 민주화를 거역하고 군사독재에 야합한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건은 1936년 일장기말소사건 때 해고한 4명의 언론인을 해방을 맞이하고도 복직시키지 않았던 못된 행태의 판박이이다. 일제에 항거했다고 해직당했던 언론인들이나,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자유언론을 지키려다 거리로 쫓겨난 언론인들이나 일제와 군사독재에 야합한 동아일보 사주에게 내쫓긴 희생자들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 사주 측은 자신들이 항일운동을 했고 자유언론운동을 벌였다는 거짓과 배신을 일삼았으며 가증스럽게도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단 한 번의 사과나 반성도 없이 친일과 독재부역의 부끄러운 과거를 항일운동과 민주항쟁으로 세탁해왔다. 지난 60여 년 동안 진행된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전혀 변함없이 일제 식민지시대 이래 누려온 기득권을 만끽하는 몇 개 권력 가운데 한 곳이 동아일보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희생양 동아투위,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에 또 희생양

5. 지난 몇 년 사이에 동아일보는 또다시 역사 조작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동아일보는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언론인들이 대량 해직된 것이 사실이며, 국가와 동아일보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권고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2008년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14~15년의 대법원은 2015년에 판결로 1975년 3.17 동아의 언론인 대량해직이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 때문이 아니라 '경영악화'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동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경영악화'라는 동아일보사의 주장은 그들이 발행한 <1970年-1980年 東亞日報社史 卷4, 343 페이지, 損益計算書>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유언론운동이 진행되었던 1974년과 1975년에 흑자를 실현하고 있었다.(이 성명 말미 참조) 1975년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를 맞아 온 국민이 자유언론운동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고, 박정희 독재의 탄압으로 언론인들이 대거 해고당했다는 것이 전 세계 양식이 인정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양승태 대법원은 2014~15년 이를 모른 체하고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신영철 대법관, 민일영 대법관은 직전 대법원장 이용훈씨 휘하에서 함께 대법관 업무를 수행했다.

공교롭게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동아언론인 대량해직사건에 대한 반역사적 판결이 있기 얼마 전인 2014년에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를 기리는 인촌기념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무렵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는 박근혜 정권과 상고법원 설치문제를 놓고 뒷거래를 벌이고 있었다.

이에 우리는 대법원의 동아투위사건 관련 2015년 판결이 사법농단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면서, 동아언론인 대량해직 사건은 박정희 유신독재 최악의 언론탄압이었고 민주주의 압살 사례였으므로 검찰이 사법농단 사건의 하나로 위 사례를 파헤칠 것을 요구한다. 동아투위 사건에 대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밝혀지느냐 여부는 한국언론 최대의 권언법(權言法) 유착을 밝혀내는 역사적 과업이다. 박정희 독재의 죄과를 벗겨주는 사법농단 거래에 대한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동아일보여! 그대의 생명은 다했다. 거짓과 배신을 끝낼 시간이다.

2020년 4월 8일

동아·조선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

태그:#동아일보 100년 거짓과 배신 역사, #채널A-검찰 유착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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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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