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는 방문하는 지역마다 흔히 '빌런(악당)'이라 불리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음식이나 손님을 대하는 불성실하고 책임감 없는 태도,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세, 변화에 소극적인 불통 마인드 등은 빌런으로 지목된 사장님들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골목식당> 역시 방송의 서사를 위하여 이러한 빌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사실이다.

군포역전시장에 등장한 치킨 바비큐-불막창집은 이른바 '위생 빌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악역을 탄생시켰다. 치막집 남녀 사장님은 닦지 않은 프라이팬을 그대로 방치했다가 요리를 하는가 하면, 주방에는 한겨울임에도 날파리가 날아다닐 정도로 비위생적인 환경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MC들은 경악했다. 역대 <골목식당> 방영 3년을 통틀어 위생상태만으로는 사상 최악의 가게라고 할만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종원조차 "알고서는 못 먹겠다"며 맛평가는 포기해야 했고 심지어 주방상태를 보다말고 "이대로는 장사하면 안 된다. 무서워서 더 보질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을 정도다. 결국 치막집은 백종원의 지시로 2주간 영업을 중단하고 업체까지 불러 대대적인 청소를 진행해야 했다. 치막집과 함께 출연한 족발집이나 떡맥집에 비하여 가장 늦은 3주 만에야 처음 레시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골목식당>에서 여러 형태의 빌런들이 등장한 바 있지만 대부분은 주로 메뉴 선정이나 영업방식 등을 놓고 백종원과 이견을 빚은 경우였다. 성실하지 못한 태도나 위생 상태를 지적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청소 수준을 넘어 전문가들을 불러 대대적인 방역까지 시행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던 사례는 보기 힘들다. 그나마 치막집이 <골목식당>의 역대 빌런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편집된 듯 보이는 것은, 백종원의 지적이나 제안에 대하여 이의를 걸지 않고 대부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8일 방송된 군포편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치막집과 관련된 분량의 대부분은 여전히 음식 맛이나 메뉴에 관련된 내용보다는 위생 문제에 집중됐다. 백종원은 치막집 사장님의 조리 방식에서부터 프라이팬 관리 요령-설겆이 습관 등에 대하여 세세히 지적했다. 사장님들은 백종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못을 지적해도 인정하지도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 일부 사장님들에 비하며 치막집처럼 최소한 '변화하려고 하는 의지'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편함이 남는 것은, 엄연히 한 가게의 사장님이자 자영업자로서 그간의 행적에 대해 '몰랐다'고 변명하는 게 합리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치막집은 <골목식당>에 섭외되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내부 청소를 하지 않았다. 현재의 치막집 사장님 부부가 인수한 기간만 1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님 부부는 생계를 위하여 하루하루 영업을 하는데 바빠서 청소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며 변명하기에 바빴다. 애꿎은 것은 결국 치막집의 비위생적인 조리로 만들어낸 바비큐나 막창을 그동안 '모르고 먹었을' 손님들 뿐이다.

심지어 지난 방송에서는 사장님이 백종원에게 "요리 한 번 할 때마다 일일이 설거지를 해야 하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백종원은 "매번 닦아야죠"라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MC 김성주도 <냉장고를 부탁해> 시절의 경험을 회상하며 당시 쉐프들이 주변에 도와줄 스태프들이 있음에도 요리 후에는 자신이 직접 바로바로 조리기구들을 설거지하고 정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요리를 하거나 음식으로 장사하는 이들에게 '위생'이라는 것은 요령이나 습관을 넘어선 기본의 문제다.

그런데 치막집의 행태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과연" 이게 꼭 누가 알려줘야만 알 수 있는 정도의 문제인가"라는 의구심이다. 양념 넣기 전 안 닦은 프라이팬으로 조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는 굳이 음식장사를 하는 자영업자가 아니라도 최소한의 위생관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의 영역에 가깝다.

위생에 그토록 둔감하던 치막집 사장님은 정작 메뉴나 레시피 문제가 거론되자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바비큐를 비롯한 기존 메뉴만으로도 벅찰 거라고 우려하는 백종원에게 '손님들 때문에' 프라이드 메뉴를 포기할 수 없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백종원에게 프라이드 치킨을 빨리 조리할 수 있는 레시피를 알려줄 것을 은근히 부탁하기도 했다. 백종원이 '고민해보자'고 즉답을 주지 않고 떠난 이후에는 사장님 부부끼리 '(메뉴 문제를 두고)우리 방식대로 가보자'고 이야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자신들에게 필요하고 이득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선택적 열정'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골목식당>에 출연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던 빌런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오히려 방송이 끝나고 난 이후다. <골목식당>에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솔루션을 받았다고 평가받은 가게들도 방송이 끝나고 몇 달후 애프터 촬영을 통하여 초심을 잃었거나 촬영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모습으로 실망을 안겨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요령이나 습관이 안 들어서 서툰 것과, 자발적인 문제인식과 책임감이 부족한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방송이 나간 직후 손님들이 찾아오고 영업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6개월이나 1년 뒤에도 지금의 위생상태와 조리습관 등을 계속 유지하고 있을지 우려스러운 이유다. 치막집 같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사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솔루션은, 레시피나 메뉴가 아니라 바로 손님을 생각하는 기본적인 매너와 초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자신의 돈을 지불하고 그들의 비위생적이고 무책임하게 조리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손님들의 몫이 된다. 사장님들의 개인 사정, 사장님들의 무지함이 결코 잘못된 장사의 핑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치막집 같은 가게다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도움을 받아야 할 자영업자'라는 최소한의 기준에 어울리는 섭외였는지 제작진도 다시 한 번쯤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골목식당 치막집 위생빌런 백종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