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3차 심사위원 간담회(왼쪽부터 심사위원 김병기, 이종찬 심사위원장, 박도, 김상웅 심사위원, 김민아 민화협 간사, 김진, 원희복 심사위원,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3차 심사위원 간담회(왼쪽부터 심사위원 김병기, 이종찬 심사위원장, 박도, 김상웅 심사위원, 김민아 민화협 간사, 김진, 원희복 심사위원,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 민화협(김태우)

관련사진보기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 둘 차례차례 분필로 그어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 받은 팔십 명이 찼다.

"나중에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아요. 떠들지들 말구."

선생의 명령에 늦게 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오늘은 왜 이럴까)하는 표정으로 선생의 눈치를 할끔할끔 보며 금 밖에 가서 쭈그리고 앉는다.

아이들에게 제비를 뽑힐 수도 없고, 하급생이라고 마구 몰아내는 것도 공평하지가 못할 듯해서, 영신은 생각다 못해 나중에 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 <상록수>의 한 장면
 
위는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이 청석골 예배당에 보통학교(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강습소를 차린 뒤, 주재소로 불려가 일본 경찰에게 예배당이 낡고 좁으니 80명만 받으라는 지시를 받고 돌아온 다음 날 취한 행동이었다.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후손이지만...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선발 서류심사를 하면서 문득 <상록수>의 그 장면을 떠올렸다.
  
지난 2월 3일부터 3월 20일까지 민화협에서 홍보 및 지원서를 접수한 결과, 총 151명의 내외국 학생이 신청을 했다. 이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의 일부다.
 
- 제 증조부께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셨습니다. (중략) 가난과 장애가 있는 누나를 평생 돌보아야 할 일 말고는 제게 물려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모두 한 살 터울의 3남매 가운데에 낀 둘째로 태어났지만, 지적장애 1급인 누나와 한 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맏이처럼 성장했습니다.

- 저는 독립유공자 후손이지만 이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습니다. 저는 크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면 3대가 힘들게 산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제 경우가 그렇구나 하며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인이 된다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면 3대가 융성해진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 세상에 완벽한 사회는 없듯이 모순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것이 모순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간다면 독립유공자분들께서 간절히 바라셨던  '진정한 미래'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중략) 일제강점기에 자기 목숨을 걸고 목이 터져라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순간을 생각하면 황홀하다 못해 울컥한 마음마저 듭니다.

- 저희 집안은 임진왜란 의병 활동부터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외세에 맞서 싸우신 선조들이 많으십니다. (중략) 현재는 어머니를 받아주는 변변찮은 일자리도 없는 상황에 대학 학비를 내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형편입니다.

- 저는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쇼부코브 일렉산드르라고 합니다. 최재형 저의 고조할아버지는 항일투쟁의 영웅으로 대한민국 건국장이 추서되셨습니다.

- 저는 다닐 김입니다. 저는 민긍호 한국 독립운동가 후손입니다.  저는 2000년 11월 24일 알마티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습니다.

- 저는 1998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사라피예프 에밀입니다. 저의  김경천 할아버지는 한국의 영웅이십니다. 그분은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이번 장학생 신청 명단을 살펴보니 최재형, 김경천, 민긍호, 계봉우, 조명희, 장건상, 방정환, 최운한, 유자명 등 국내외 위대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거의 망라되었다. 그분들의 후손에게 평점을 매기는 일은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민화협-롯데재단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심사위원(왼쪽부터 원희복, 김병기, 김진, 김홍걸, 이종찬, 김삼웅, 박도).
 민화협-롯데재단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심사위원(왼쪽부터 원희복, 김병기, 김진, 김홍걸, 이종찬, 김삼웅, 박도).
ⓒ 민화협

관련사진보기

     
다행히 지난 6일 3차 심사위원 간담회에서 다른 심사위원께서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셔서 다행스러웠다. 이날 간담회에서 논의된 점은 가능한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 장학생 신청자의 혜택을 늘이자, 민족화해의 정신에 따라 이념성을 초월하자, 이밖에 가정형편, 지역 등 지방대학생들도 균형성 있게 선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처음 책정한 인원보다 더 많이 혜택을 줄 방안을 롯데장학재단 측과 상의해 보자는 말씀도 있었다.

그러나 지원자 151명 전원에게 혜택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귀갓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머지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도와줄 독지가는 없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