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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정섬 표지석
 당정섬 표지석
ⓒ 유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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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일컬어 한민족의 '젖줄'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도 백제를 남쪽으로 밀어내고 고구려를 북쪽으로 쫓아내며 한강 유역을 차지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漢陽)이라는 지명도 '한수(漢水)의 북쪽(물은 북쪽이 양이고 산은 남쪽이 양이다. 그래서 한수의 북쪽이고 북한산의 남쪽에 자리 잡았으니 한양이라 부른 것이다)'이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김주영 선생의 대하소설 <객주(客主)>도 한강의 물길을 따라 형성된 장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한양으로 집중되는 물산의 주 운송수단인 뱃길이 한강의 물길을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강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만 안겨주지 않았다. 일제 침략기인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명명된 한강의 범람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로 인해서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이 발견되었으며, 경기도 하남시의 '당정섬'이 물에 잠기며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배천 조씨'들이 인근의 육지로 집단 이주하게 되었다.

그 후 해방된 조국에서 치러진 첫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한강 백사장에 20만의 대규모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던 해공(海公) 申翼熙(신익희) 선생의 유세도 이젠 전설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강은 물류의 유통이 물길에서 육지로 바뀌고 전력 생산과 홍수조절을 위한 다목적 댐이 건설되면서 수상 유통의 임무를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60~1970년대의 경제발전과 함께 한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70년대 말까지 한강 변의 백사장이 여름철 유원지로 각광을 받았다. 서울에서는 뚝섬유원지가 최대의 물놀이 장소였고, 인접한 곳인 하남시(당시엔 광주군 동부면)엔 팔당유원지가 있었다.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넓은 백사장과 푸른 강물은 피서객들의 낙원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한강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뚝섬의 백사장이 사라지고, 1986년부터 시작된 개발로 팔당의 당정섬도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하여 1995년엔 당정섬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사라진 당정섬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곳임을 알게 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1787년 4월 14일 한양에서 배를 타고 고향인 소내(苕川,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로 가다가 이곳 당정섬에서 가족들과 하룻밤을 머물며 쓴 시가 있다.

그의 시 '파당행(巴塘行)'에 붙인 주에 보면 "이때 부친을 모시고 소내로 가던 중 밤이 되어 당정촌(唐汀村)에 묵었다(時陪家君赴苕川, 夜宿唐汀村)"고 하였다. 그리고 당시에 있었던 유언비어로 시골 마을이 시끄러웠던 일을 적었다. 조금 길지만 시를 읽어 보자. 당시 사정이 급박하여 반란군에 대항하기 위해 현지 장정을 병사로 징발했던 일과 온 동네가 동요하던 광경이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저물녘 팔당 마을에 이르러 보니 暮抵巴塘村
관청의 아전 와서 병사들 뽑아가네. 府吏來點兵
팔당의 젊은 아낙네 문을 나와 통곡하며 巴塘少婦出門哭
닭 잡고 술 걸러 낭군을 전송하네. 殺雞釃酒送郞行

아침에 돛 올려 동쪽 협곡 오르니 朝日揚帆上東峽
양쪽 기슭에서 소와 말만 울어대네. 兩岸牛馬鳴相接
적병 온다지만 병사는 뵈지 않고 但道兵來兵不見
흔적 없이 사라져 바람 속 나비 같네. 去無定向如風蝶

물고기 놀라고 짐승 달아나는 건 본래 이 같은데 魚駭獸竄本如此
바람 불면 풀잎 흔들리니 장차 누굴 믿으랴. 風起草動將誰恃
내 마을 사람에게 놀라 소란피우지 말라 이르고 我令鄰里勿驚擾
한가로이 고깃배 띄워 소내로 향하네. 閒汎漁舟向苕水
 
파당(巴塘)은 지금 '팔당'이라고 부르는 지명의 당시 한자식 표기이다. 지금은 팔당댐이 건설되어서 일반적인 고유명사가 되었지만 당시 이곳은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의 협곡으로 강물이 세차게 흐르는 여울이었다. 당시에는 이곳을 두미협(斗尾峽)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저녁이 되어 배를 띄우지 못하고 하룻밤 유숙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당정섬은 조선시대 후기에 숙박시설을 갖춘 커다란 마을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당정섬은 위대한 자연의 복원력에 의해 지금 계속 살아나고 있다.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며 잡초가 무성하고 넓은 벌을 이루어 고라니 떼가 뛰놀고 봄이면 짝짓기 하는 꿩이 깃을 치고 하늘로 솟아오른다. 겨울이면 당정섬 일대의 푸른 강물에 흰색의 고니 떼와 물새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어 겨울 철새를 관찰하는 '고니학교'가 개설되어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의 좋은 학습장이 되고 있다. 지금은 시민공원이 잘 조성되어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여 꽃 대궐을 이루어 휴식과 운동을 즐기기 위한 하남시민들의 즐거운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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