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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한 왕벚꽃나무
 개화한 왕벚꽃나무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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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다녀온 지방 여행길은 평소와 다른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고속버스에 올랐는데 좌석이 텅 비어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첫 차라고는 해도 승객은 대여섯 명이 전부였다.

면사무소 근처 식당에서 만난 주민으로부터는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았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한 지역에서 왔는지가 궁금한 눈치였다. 지금껏 시골 마을을 여행하며 겪어보지 못한 경계의 분위기였다.

시골길에 마주친 어르신들, 밭을 가는 농부들조차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실내 기념관은 문을 굳게 잠근 채 임시휴관 공지만 쌀쌀맞게 맞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밭작물과 물오른 나뭇가지, 하얗게 피어난 매화꽃에 봄기운은 가득했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풍경이다. 

꼭 '멀리' 떠나야만 여행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대유행이 시작된 코로나19는 치료제와 백신이 나올 때까지 장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공부도 일도 관계도 모두 반강제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의 불안과 분노까지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코로나 우울증)'라는 신조어가 생기며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우려되는 게 이해가 간다. 몸을 지키는 방역뿐 아니라 마음 챙김도 중요해지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여행만 한 게 없다는 게 평소 생각이지만 지금은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코로나19로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나 역시 모든 여행을 멈춘 상태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 사회가 추구하던 여행을 되돌아본다. 그동안 여행을 협소한 틀에 가둬두고 대상화 하지 않았는지, 가능한 먼 곳으로 떠나는 것에 들떠 있던 건 아닌지, 효율과 편리성을 이유로 단체여행에 매달렸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여행을 그렇게 좁은 틀에 가둘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집 앞 산에 오르고, 공원을 산책하고 동네 미술관을 찾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고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멀지 않은 근교를 찾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멋진 일상탈출이고 여행이다. 일상의 가까운 공간에 관심을 두고 눈을 돌려보는 것, 생활밀착형 여행을 시도해 보는 것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4월은 봄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때다.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보듬어줄 여행지로 너무 멀지 않으며 봄꽃도 즐기고 역사유적도 답사하는 코스로 충남 서산 아라메길을 소개한다. 물론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자제하고, 소수 인원으로 동행하며, 식사예절 등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손씻기 같은 개인위생을 지키는 에티켓은 기본이겠다.
 
 서산 개심사 전경
 서산 개심사 전경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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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산이 아우러진 서산 아라메길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뫼'가 합쳐진 단어로 포근한 바다와 나지막한 산세가 어우러진 이름이다. 아라메길 여러 구간이 있지만 봄에는 서산마애삼존불부터 개심사까지가 자박자박 걸어보기 좋은 코스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은 국보 84호로 지정된 백제시대 불교예술의 걸작이다. 꽤 자주 가본 곳이지만 방문할 때마다 여래불상의 온화한 미소에 마음이 설렌다. 이렇게 아름다운 불상이 어떻게 외진 계곡 산비탈에 숨어있을까 궁금할 만하다.

서산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중국의 불교문화가 백제로 전해지는 통로에 태안반도가 위치했던 덕에 서산에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다. 긴 세월을 견뎌온 서산마애삼존불을 찾아가 우리에게 건네는 천년의 미소에 웃음으로 화답해 보는 것도 새로울 것이다.

삼존불을 내려와 용현골 계곡 따라 용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산속이란 느낌이 무색하게 널찍한 터가 나온다. 여기가 보원사지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까지 번창했던 천년고찰로 전해지는 보원사는 지금은 건물이 다 없어지고 넓은 절터에 석탑과 몇몇 구조물만 남아 있어 당대의 규모와 흔적을 가늠케 한다. 보원사지법인국사보승탑과 보원사지오층석탑, 석조와 당간지주 모두 국가 보물이다.

봄의 정취가 가득한 보원사지~개심사 숲길 

보원사지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입구에는 우람한 장승 두 개가 서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아라메길은 상왕산 개심사로 이어진다. 4월이면 연둣빛 새순이 삐죽삐죽 올라오고 분홍 진달래가 점점이 박히는 봄의 정취가 가득한 숲길이다. 오르막을 올라 도착하는 능선길 양쪽로는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향긋한 솔향기가 기분까지 상쾌하게 한다. 널찍한 쉼터를 만나 잠시를 다리를 쉬어주고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개심사가 나온다. 
 
 보원사지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입구에는 우람한 장승 두 개가 서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아라메길은 상왕산 개심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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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지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입구에는 우람한 장승 두 개가 서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아라메길은 상왕산 개심사로 이어진다? ?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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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는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자연미가 돋보이는 단아한 절집이다.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찾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지만, 특별히 4월은 화려한 봄꽃 잔치가 벌어진다. 놓치기 아까운 아름다움이다.

국내에 몇 그루 없는 청벚꽃나무에 벚꽃송이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그 옆으로 분홍색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연두색 신록과 알록달록한 꽃들도 어우러져 자리를 빛낸다. 해강 김규진이 쓴 상왕산 개심사 현판 글씨, 보물로 지정된 조선 전기의 단아한 대웅전, 자연목을 그대로 살려 지은 건축물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개심사를 내려오면 주차장 앞에는 서산의 목장지대와 호수가 펼쳐진다. 호숫가를 유유히 거닐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다. 개심사 왕벚꽃은 다른 벚꽃에 비해 많이 늦게 핀다. 꽃을 놓치지 않으려면 방문하기 전에 개화시기를 확인하는 게 좋다. 서산 아라메길의 옛 문화와 맑은 공기, 아름다운 봄빛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달래주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지인 님은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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