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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6.2 지방선거 투표를 이틀 앞둔 5월 3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함 안에서 선거공보 봉투가 개봉되지 않은 상태로 나뒹굴고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 투표를 이틀 앞둔 5월 3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함 안에서 선거공보 봉투가 개봉되지 않은 상태로 나뒹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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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총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게 있다. 국회로 갈 사람을 뽑는 건지 시·군·구청으로 갈 사람을 뽑는 건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어떻게 행정부를 견제하고 입법을 할 것인지를 공약하는 후보들보다는, 어디에 도로를 확장하고 어떠한 시설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하는 후보들이 더 두드러진다. 평소 텔레비전에서 국가적 현안에 관해 발언하던 지도자급 정치인들도 선거 때만 되면 여타 후보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들도 텔레비전에 나와 '우리 동네 어디로 지하철을 끌어오고 어디에 어떤 시설을 세우겠다'고 공약한다.

물론 자기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공언하는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런 공약대로 도로·지하철이나 대형 시설을 유치하면 지역 주민들이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혜택을 훨씬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은 일반 주민들이 아니라 대규모 부동산 소유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개발의 직접적 수혜자들은 바로 그들이므로, 후보자들의 공약은 실상은 그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방 관청과 지역 여론을 움직이는 이들에게 어필하는 공약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역개발 공약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국민대표인지 지역대표인지 알 수 없다는 비판이 이미 이승만 정권 때부터 제기됐다.

관권선거의 도구가 됐던 지역개발 공약
 

1958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 '국회의원은 국민대표이다'는 국회의원은 원칙상으로는 전국을 단위로 선출돼야 하지만 기술적 이유 때문에 지역별로 선출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의사대표제(意思代表制, 대의민주제 원리) 하에서의 국회의원 선거가 전국구를 통해서 선출되지 않고 인구 십만 단위의 소선거구를 통해서 선출된다는 것은 기술적인 제약의 소치"일 뿐이라고 기사는 말한다. 총선에서 지역개발 공약을 하는 것은 대의민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편의상 둘로 구분했다.

"예컨대, 유권자가 전근대적인 지연·혈연 의식에 사로잡혀 타(他)지방 출신의 입후보자를 배척한다든가, 또 입후보자가 선거공약이나 선거연설에 있어서 그 선거구의 지방적 이익을 강조하여 자기가 당선되면 그 지방의 이익을 위해서 무슨 시설을 마련해주겠다는 식으로, 마치 지방의회 대의원 입후보자와도 같은 유치한 주장을 내세운다든가,

재선을 꾀하는 국회의원이 자기가 과거 국가를 위해서 어떤 업적을 남겼다는 것보다도 그 선거구의 이익을 위해서 어떠어떠한 업적을 쌓았다고 자랑하여 국회의 의결과 국가예산을 가지고 만들어놓은 공공시설을 마치 자기 단독의사를 가지고 스스로의 호주머니를 털어 만들어놨거나 한 것처럼 자화자찬하여 돌아다닌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상기(上記)한 경향의 현상적인 발로라 하겠는데, 이는 가급적 유능한 국민대표를 가지고 대의정치를 운영하자는 이상적 요청에 비추어 심히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가 실현된 1997년 이후와 달리, 1958년 당시만 해도 그것이 매우 요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당선되면 중앙정부와 상의해서 지역을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공약은 주로 보수여당인 자유당 후보들한테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야당 후보도 그런 공약을 할 수는 있었지만, 유권자들의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역개발 공약은 관권선거의 도구가 되기 쉬웠다. 보수여당 후보가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거론하며 공약을 하거나 관공서가 그 공약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일 경우에는 관권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 같은 보수여당 후보들의 공약 남발을 한층 더 부추긴 게 있다. 1962년 이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힘입은 건설 경기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이 당시 건설업계 분위기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건설업' 항목은 이렇게 설명한다.

"제1·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건설업계도 활기에 넘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건설업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것으로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서울지하철 건설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에 의한 농지개간 및 경지정리사업, 도로·항만·전력·통신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의 건설, 각종 공장과 산업시설의 활발한 건설, 그리고 민간 부문에서도 호텔·빌딩 등에 대한 건설 투자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1960년대의 건설업은 호황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정책이 건설업 호황으로 이어지는 이 분위기를 보수여당인 공화당(민주공화당)은 놓치지 않았다. 경제개발 및 국토 건설의 붐을 공화당 후보들의 지역개발 공약과 연결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 후반부터 지역개발 공약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드러지는 양상이 선거에서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기현상'으로 바라볼 정도였다.

1971년 6월 2일자 <경향신문> 기사 '역대 선거 분위기와 공약'은 "최근에는 이른바 지역공약이란 것이 크게 대두되는 기현상을 빚었다"면서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이후의 1963년 6대 총선, 1967년 7대 총선, 1971년 8대 총선의 특징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5대까지는 정치적 공약 특히 개설적인 일반론이 대종을 이루었고, 6대 이후에는 경제발전 문제가 중요한 정책이 됐다. 특히 7, 8대에는 주로 여당에 의한 지역공약이 남발돼 기공식 붐을 일으켰다."

"6대 이후 이 선심 공약은 홍수를 이루다시피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꼭 지역개발 공약 때문만은 아니지만, 공화당은 이런 공약을 앞세워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공화당은 6대 총선에서 175석 중 110석을, 7대 총선에서 175석 중 129석을 차지했다.

야당의 반발로 선거법 고쳤지만... 도돌이표

이런 경험 뒤에 야당인 신민당은 선거법 협상의 기회를 활용해 지역개발 공약의 불법화를 추진했다. 정부가 발주하는 건설공사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여당 후보들이 이를 선거에 적극 활용하는 상황을 야당 후보들이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선거법 협상 테이블에서 공화당은 야당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했다. 이는 1969년 1월 23일 개정된 국회의원선거법에 제63조의 2가 신설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40조의 규정에 의한 벽보, 제43조의 규정에 의한 선거공보, 제47조의 규정에 의한 신문광고 및 제60조의 규정에 의한 방송시설의 이용에는 당해 지역구 안의 극히 한정된 구역에만 이익을 주는 사업의 공약을 게재 또는 방송할 수 없다."

선거벽보·선거공보·신문광고·방송을 통해 지역개발 공약을 하지 못하도록 선거법에 못을 박았던 것이다. 꼭 제63조의 2 때문만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이 규정 하에서 치러진 1971년 8대 총선에서 공화당은 이전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7대 총선에서 공화당이 175석 중 129석, 신민당이 45석, 대중당이 1석을 차지한 데 비해, 8대 총선에서는 공화당이 204석 중 113석, 신민당이 89석, 국민당이 1석, 민중당이 1석을 차지했다. 전체 의석이 29석 늘었는데도, 공화당 의석은 오히려 16석이나 줄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제63조의 2는 오래가지 못했다. 공화당 정권이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이다. 제9대 총선을 앞둔 1972년 12월 30일, 공화당 정권은 이 규정을 없애버렸다.

이때는 유신체제가 선포된 뒤였다. 이 틈을 타서 공화당은 야당의 요구에 밀려 부득이 설치했던 그 조항을 비상국무회의(비상각의)를 통해 폐지해버렸다. 국회에서 해야 할 법률개정을 '비상'이란 이름 하에 초헌법적 국무회의에서 처리했던 것이다.

6년 뒤 발행된 1978년 11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 '선관위 유권해석, 지역 숙원사업 선거공약 무방'은 제63조의 2를 두고 "(6년 전의) 비상각의에서 개정 통과될 때 이 조항이 삭제"됐다고 말한다.

제63조의 2가 폐지된 뒤 치러진 1973년 9대 총선에서 공화당은 다시 압승했다. 공화당 2중대인 유정회 의석을 포함해서 여권이 얻은 의석은 219석 중에서 146석이었다. 신민당은 8대 총선 때의 89석보다 훨씬 적은 52석으로 줄어들었다.

9대 국회의 임기는 6년이었다. 이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공화당은 제63조의 2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했다. 위 <경향신문> 기사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권해석을 통해 '지역개발 공약은 합법'이라는 황당한 결정을 이끌어냈다. 제63조의 2를 조용히 없애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선관위를 통해 아예 합법화해버렸던 것이다.

위 기사는 "중앙선관위는 지역구 후보들의 선거공약에 지역선거의 숙원사업에 관한 공약을 기재할 수도 있고 합동연설회 때 이를 연설 내용으로 밝혀도 무방하다고 유권해석했다"고 보도한다. 국회의원의 국민대표 기능과 배치되는 일이 선관위 결정을 통해 합법화됐던 것이다.

'나쁜 일을 금지하는 규정을 없애는 것'과 '나쁜 일을 허용하는 규정을 설치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후자는 명백히 나쁜 일이다. 몰락 1년 전의 박 정권이 선관위를 앞세워 이런 일까지 범했던 것이다. 선관위 결정이 나오자 공화당은 아주 노골적으로 지역개발 공약을 부추겼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에 따라 길전식 공화당 사무총장은 당 공천자들에게 이 취지를 설명하고 활용토록 함으로써, 집권당으로서의 지역 숙원사업 공약이 전국에서 활발히 제시될 것 같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지역개발 공약이 특히 두드러지고 정권 차원에서 이것이 권장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이, 국회의원 후보자의 지역개발 공약은 보수 여당의 관권선거에 악용되던 도구였다. 그래서 독재정권의 잔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 국민대표 기능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고양된 21세기까지도 그런 잔재가 여전히 살아 있으니, 선거문화가 시대 발전과 너무나 괴리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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