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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식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엄마는 한 번도 식탁에 마주 앉아 동시에 같이 식사를 하신 기억이 없다. 늘 아버지와 우리들 먹는 것을 보고 느지막이 밥상에 앉으셨고 남은 것으로 홀로 끼니를 때우셨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는 매 끼니 밥과의 전쟁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어린 입맛에 맞게 간단하게 먹을 것 한두 가지로 밥을 먹여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이들이 크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찌개도 있어야 하고, 고기와 곁들일 채소도, 밑반찬도 구색에 맞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상을 차리는 것 같고 엄마의 역할을 그나마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TV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잔칫상처럼 차려진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거나, 요즘 같은 때 밥상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집보다 상당히 잘 챙겨서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 집은 늘 간단하게 차려 먹는다. 어제는 종일 집에 있느라 그마저도 준비하지 못했더니 상에 덩그러니 김치만 놓이게 되었다. 햄과 달걀프라이, 김과 함께 식사를 마치니 가족들을 부실하게 먹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입이 무섭다는 생각도 요즘 든다. 음식을 하는 족족 사라진다. 거의 매일 가까운 마트에서 자잘하게 장을 봐오고, 일주일에 한 번은 대형 마트에서 꽤 많이 장을 봐 온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도 어느새 냉장고가 텅 비는 매직을 매번 경험한다. 따로 마음먹고 냉장고 파먹기를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매일이 냉장고 파먹기다.

엄마는 쌀과 김치만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하셨다. 부자가 된 것 같다고도 하셨다. 요즘 나의 기분이 그렇다. 쌀도 금방, 김치도 금방, 밑반찬을 넉넉히 해 놓아도 금방 사라진다.

가족 모두 엄청난 대식가들도 아니다. 배만 차는 듯하면 수저를 놓는 가족들인데도 그렇다. 이전에는 오히려 양껏 먹지 않는다고 걱정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두 달 동안 외식을 전혀 하지 않고 매일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해도 해도 바닥이 드러나는 상황이 생긴다.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채소가게
▲ 채소가게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채소가게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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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이 신경 쓰이기도 해서 오늘은 아침 일찍 동네 채소 가게에 갔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싼 채소 가게다. 무 2개, 감자, 가지, 꽈리고추, 대파, 마늘, 콩나물을 장바구니에 담으니 만 오백 원.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직거래인지 도매시장에서 직접 가져와 저렴하게 판매하는지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하게 저렴하다. 가져간 장바구니에 가득, 따로 담아 준 비닐봉지에도 가득, 집까지 들고 오느라 고생을 좀 했다.

가져온 찬거리로 반찬을 마련했다. 오늘내일은 젓가락 갈 곳이 있을 듯하여 뿌듯하다. 무거운 것 들고 오느라 고생 좀 하고, 만드느라 오전 시간이 다 지나 버렸지만 마음은 한결 놓인다.

먹고 살기 어렵던 때, 외식이 없던 그 시절, 엄마가 매일 했던 수고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떤 마음으로 어려운 살림에 매끼를 준비하셨을까. 일곱 남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엄청났을까.

지금처럼 장에 나가면 척척 사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겠고, 돈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었을 테고, 도시에서 살았으니 밭에서 채소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더구나 편하게 집에서 살림만 하시던 분도 아니었고.

나는 아직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는 것으로 내 배가 부르지는 않다. 잘 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는 것에 그저 마음이 좀 놓이고, 먹는 것을 보다 보면 오히려 시장기가 폭발한다.

엄마라고 배가 부르셨을까. 입에 밥이 들어가도록 차릴 수 있어 그만 마음이 턱 놓이고, 그래서 당신이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아도 자식들 배를 곯게 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배고픔을 감춘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 생각을 하다 보니 엄마의 기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잊지 말라고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나 싶은 날이었다.

태그:#밥, #가족, #음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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